학교·공동주택 ‘개조’에 심혈
경제성보다 생활을 담은 차세대 도시 설계
여성 건축가들이 나서야
경제성보다 생활을 담은 차세대 도시 설계
여성 건축가들이 나서야
인터뷰 / <차이와 차별:건축의 존재와 희망>쓴 김혜정 교수
“21세기는 획일성보다는 개성을, 양적인 만족보다는 생활의 질을 추구합니다. 건축물도 마찬가지죠. 건축이 사용자를 압도하기보다 거주자의 다양한 문화를 반영해야 하죠. 그 점에서 여성 건축가의 섬세함이 필수조건입니다.”
<차이와 차별: 건축의 존재와 희망>(공간사)을 지은 김혜정 명지대 교수(건축학)는 21세기의 좋은 건축은 사용할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잘 반영한 공간을 가진 구조물이라 보고, 이를 구현하는 데는 여성의 섬세한 감각은 물론 타고난 모성감각, 원활한 네트워킹 능력이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설계과정에서 경제성, 효율성, 건축주의 사업성을 중시하거나, 건축의 조형성을 앞세워 수많은 팔푼이 건물을 낳고 있다고 있다고 비판한다.
건축은 생활을 담는 그릇. 아파트단지나 공공건물, 도시공간 등 사용자의 절반이 여성인데, 설계자의 대부분이 남성이고 그들은 남성성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불합리하다. 유모차를 끌고가는 여성한테 지하도나 울퉁불퉁한 보도는 무척 불편하다. 여성이 열기에 힘이 부치는 문, 공원의 어두운 조명 등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요즘은 건축학과 학생의 절반이 여성입니다. 설계사무소 경력 5년차 이하의 경우 1/4 정도가 여성입니다. 지금껏 100년 이상 남성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변화입니다. 여성건설인협회에서는 ‘여성이 살기 좋은 도시’의 이론을 세우기 위한 세미나를 여섯번째 열었지요.”
김 교수가 심혈을 쏟는 분야는 학교와 공동주택. 그가 ‘열린학교’를 지향해 기본계획을 세운 등촌고등학교는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 최우수학교로 지정됐다. 이동수업이 원활하도록 교실을 배치하고 전통적인 마을길처럼 굽은 복도 구석구석에 공용·대화공간을 만들었다. 담을 트고 체육관, 컴퓨터실 등을 개방해 학교가 마을의 중심이 되도록 하고 마을어른들과 학생들이 ‘서로 함께’ 배우도록 했다.
또 단위세대 편의 위주로 설계된 1기 신도시(일산, 분당) 아파트와 달리 2기 신도시(김포, 동탄, 판교, 파주)는 주차장 지하화, 어린이놀이터 분산배치 등 단지와 내부공간 모두 ‘환경·인간 친화’를 구현하는데 한몫 거들었다. “3기 신도시에는 도시공간에 감성을 불어넣는 작업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물론 여성들이 설계에 활발히 참여해야죠.”
그는 건물이든 도시든, 인간·자연 친화적인 이상도시의 예를 국내에서는 찾기 힘들다며, 삭막한 도시 환경을 치유하고 시민의 일상을 위한 섬세한 배려가 있는 차세대 도시환경을 만들기 위해 여성 건축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건축을 시작하는 여성들에게 역할모델로서 다섯 명의 선구적인 여성건축가를 책에서 소개했다. 구조의 완벽성과 절제된 고전건축의 조형성을 추구해 1989년 대지진을 견딘 페어몬트호텔 등 800여 점의 건축을 설계한 줄리아 모건(1872~1957), 차가운 근대성과 인간적 따뜻함을 건축으로 구현한 에이린 그레이(1878~1976), 최적의 공간에 가구와 기기를 배치해 주부의 가사노동을 절감시킨 ‘프랑크푸르트 부엌’을 고안한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1897~2000), 주부노동의 동선을 고려하고 전통 목조주택의 조립식 공법을 개발해낸 룩스 구이어(1894~1955), 학부때 워싱턴디시의 베트남 참전 기념비로 데뷔한 천재 건축가 마야 린(1958~ ) 등. “서울은 스케일이 커 네트워킹이 어렵습니다. 주거와 교육, 업무, 생산이 분리되고, 어린이와 노인 등 세대간 생활이 단절돼 있어요. 문화시설도 일부러 시간을 들여 찾아가야 할 만큼 일상과 떨어져 있어요. 보행중심의 독자적인 부도심 지역이 형성되어야 하고, 그것들이 다시 대중교통망인 지하철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서 단기계획으로 그치고 그나마 일관성이 흔들린다는 거죠.” 일부 시설과 인구를 분산시키고 문화와 지식기반 산업체제로 바꾸면 서울은 쾌적한 공간으로 탈바꿈이 가능하다는 견해다. 하지만 신도시가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기존의 지방도시들이 서울을 닮고 싶어해 자체 매력을 잃어가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생활과 유리된 축제를 연다고 되겠습니까?”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혜정 명지대 교수
그는 건물이든 도시든, 인간·자연 친화적인 이상도시의 예를 국내에서는 찾기 힘들다며, 삭막한 도시 환경을 치유하고 시민의 일상을 위한 섬세한 배려가 있는 차세대 도시환경을 만들기 위해 여성 건축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건축을 시작하는 여성들에게 역할모델로서 다섯 명의 선구적인 여성건축가를 책에서 소개했다. 구조의 완벽성과 절제된 고전건축의 조형성을 추구해 1989년 대지진을 견딘 페어몬트호텔 등 800여 점의 건축을 설계한 줄리아 모건(1872~1957), 차가운 근대성과 인간적 따뜻함을 건축으로 구현한 에이린 그레이(1878~1976), 최적의 공간에 가구와 기기를 배치해 주부의 가사노동을 절감시킨 ‘프랑크푸르트 부엌’을 고안한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1897~2000), 주부노동의 동선을 고려하고 전통 목조주택의 조립식 공법을 개발해낸 룩스 구이어(1894~1955), 학부때 워싱턴디시의 베트남 참전 기념비로 데뷔한 천재 건축가 마야 린(1958~ ) 등. “서울은 스케일이 커 네트워킹이 어렵습니다. 주거와 교육, 업무, 생산이 분리되고, 어린이와 노인 등 세대간 생활이 단절돼 있어요. 문화시설도 일부러 시간을 들여 찾아가야 할 만큼 일상과 떨어져 있어요. 보행중심의 독자적인 부도심 지역이 형성되어야 하고, 그것들이 다시 대중교통망인 지하철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서 단기계획으로 그치고 그나마 일관성이 흔들린다는 거죠.” 일부 시설과 인구를 분산시키고 문화와 지식기반 산업체제로 바꾸면 서울은 쾌적한 공간으로 탈바꿈이 가능하다는 견해다. 하지만 신도시가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기존의 지방도시들이 서울을 닮고 싶어해 자체 매력을 잃어가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생활과 유리된 축제를 연다고 되겠습니까?”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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