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일/도서평론가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
「마음이 흐린 날엔 그림책을 펴세요」
야나기다 구니오 지음. 한명희 옮김. 수희재 펴냄 나의 첫 그림책은 과일, 동물, 자동차 등을 주제별로 각 권에 담은 열 권짜리 정보 그림책이다. 아마도 일본 그림책의 복사판이었을 이 그림책에는 제법 야물게 만든 비닐가죽 가방이 있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책을 곱게 보는 편이어서 띠 동갑 이종사촌에게 그림책을 물려주었다. 그것은 내 유년의 처음이자 마지막 그림책이기도 하다. <마음이 흐린 날엔 그림책을 펴세요>는 일본의 논픽션 작가 야나기다 구니오의 ‘늦바람’ 그림책 편력을 엮었다. 야나기다는 어른이야말로 그림책을 봐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림책이란 어린아이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림책이란 영혼의 언어이며 영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소설이나 시도 그렇지만, 그림책의 내용도 나이를 먹을수록 맛이 깊어진다. 그림책의 가능성은 넓고도 깊다.” 또 그는 인생에서 그림책을 읽을 시기가 세 번 찾아온다고 덧붙인다. 아이였을 때, 아이를 기를 때, 그리고 인생의 후반기다. 그림책과의 세 번째 만남에선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림책을 읽어야 한다. 그의 속내는 평생 그림책을 벗 삼으라는 얘기다. 지금 나는 그림책과 친숙해질 두 번째 시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들고 있으나,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보다는 업무상 필요에 따라 그림책을 접하는 게 고작이다. 그것도 허겁지겁 읽곤 하는데,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그림책 역시 그랬다. 야생사진작가의 산문집 두 권과 함께 그의 사진그림책을 살펴보면서 사진과 언어의 절묘한 조화를 만끽할 겨를은 없었다. 흔히 그림책은 그림이 좌우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야나기다는 글(말)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그림책의 언어란 그림과 멋지게 공명했을 때 마치 극장 영화의 스테레오 사운드와 같은 울림으로 확대된다. 그림책의 언어는 특별한 확장성을 갖고 있다.” 그림책관련 포럼에서 어린이책전문가에게 거센 비판을 받을 정도로 야나기다가 그림책을 보는 시각은 독자적이다. 그는 다양성을 존중한다. 서구 “문화에 대한 편중을 시정하기 위해, 제3세계를 무대로 한 그림책 만들기와 제3세계 그림책의 번역이 꼭 필요하다.” 곁가지 셋. 1. 2004년을 기준으로 설립 5년 남짓한 노토가와 읍도서관의 소장도서는 14만여 권이고, 이 중 어린이책은 2만5천권이다. 그런데 노토가와의 인구는 2만3천명에 불과하다. 2만여 권의 어린이책을 갖춘 부평기적의도서관이 위치한 인천 부평구의 인구는 57만 명이나 된다. 물론 부평에는 공공도서관이 2곳 더 있지만 말이다.
2, ‘내가 아파봐야 남의 설움을 안다.’ 오에 겐자부로와 스티븐 제이 굴드는 장애인 자녀를 둔 것이 두 사람의 진보적 견해와 무관하지 않다면,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의 고든 리빙스턴과 야나기다 구니오는 자식의 자살로 말미암아 삶을 깊게 성찰한다. 3. 책 앞부분의 편집실수도 아쉽지만 번역문의 어색한 문장을 좀더 매끄럽게 다듬었다면, 이 책이 주는 감동은 갑절이 되었을 것이다. “박수는 점점 더 커졌다. 아이들의 눈은 달성감으로 빛나고 있었다”에서 ‘달성감’은 ‘성취감’이나 ‘일을 해냈다는 기쁨’이라고 하는 게 맞다. 그리고 단지 희망사항 하나. 그림에 재주가 있어 보이는 유치원 다니는 딸애가 커서 그림책 작가가 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 부모 뜻대로 안 된다’는 말이 만고의 진리임을 벌써부터 체감하고 있지만. 최성일/도서평론가
야나기다 구니오 지음. 한명희 옮김. 수희재 펴냄 나의 첫 그림책은 과일, 동물, 자동차 등을 주제별로 각 권에 담은 열 권짜리 정보 그림책이다. 아마도 일본 그림책의 복사판이었을 이 그림책에는 제법 야물게 만든 비닐가죽 가방이 있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책을 곱게 보는 편이어서 띠 동갑 이종사촌에게 그림책을 물려주었다. 그것은 내 유년의 처음이자 마지막 그림책이기도 하다. <마음이 흐린 날엔 그림책을 펴세요>는 일본의 논픽션 작가 야나기다 구니오의 ‘늦바람’ 그림책 편력을 엮었다. 야나기다는 어른이야말로 그림책을 봐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림책이란 어린아이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림책이란 영혼의 언어이며 영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소설이나 시도 그렇지만, 그림책의 내용도 나이를 먹을수록 맛이 깊어진다. 그림책의 가능성은 넓고도 깊다.” 또 그는 인생에서 그림책을 읽을 시기가 세 번 찾아온다고 덧붙인다. 아이였을 때, 아이를 기를 때, 그리고 인생의 후반기다. 그림책과의 세 번째 만남에선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림책을 읽어야 한다. 그의 속내는 평생 그림책을 벗 삼으라는 얘기다. 지금 나는 그림책과 친숙해질 두 번째 시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들고 있으나,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보다는 업무상 필요에 따라 그림책을 접하는 게 고작이다. 그것도 허겁지겁 읽곤 하는데,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그림책 역시 그랬다. 야생사진작가의 산문집 두 권과 함께 그의 사진그림책을 살펴보면서 사진과 언어의 절묘한 조화를 만끽할 겨를은 없었다. 흔히 그림책은 그림이 좌우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야나기다는 글(말)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그림책의 언어란 그림과 멋지게 공명했을 때 마치 극장 영화의 스테레오 사운드와 같은 울림으로 확대된다. 그림책의 언어는 특별한 확장성을 갖고 있다.” 그림책관련 포럼에서 어린이책전문가에게 거센 비판을 받을 정도로 야나기다가 그림책을 보는 시각은 독자적이다. 그는 다양성을 존중한다. 서구 “문화에 대한 편중을 시정하기 위해, 제3세계를 무대로 한 그림책 만들기와 제3세계 그림책의 번역이 꼭 필요하다.” 곁가지 셋. 1. 2004년을 기준으로 설립 5년 남짓한 노토가와 읍도서관의 소장도서는 14만여 권이고, 이 중 어린이책은 2만5천권이다. 그런데 노토가와의 인구는 2만3천명에 불과하다. 2만여 권의 어린이책을 갖춘 부평기적의도서관이 위치한 인천 부평구의 인구는 57만 명이나 된다. 물론 부평에는 공공도서관이 2곳 더 있지만 말이다.
2, ‘내가 아파봐야 남의 설움을 안다.’ 오에 겐자부로와 스티븐 제이 굴드는 장애인 자녀를 둔 것이 두 사람의 진보적 견해와 무관하지 않다면,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의 고든 리빙스턴과 야나기다 구니오는 자식의 자살로 말미암아 삶을 깊게 성찰한다. 3. 책 앞부분의 편집실수도 아쉽지만 번역문의 어색한 문장을 좀더 매끄럽게 다듬었다면, 이 책이 주는 감동은 갑절이 되었을 것이다. “박수는 점점 더 커졌다. 아이들의 눈은 달성감으로 빛나고 있었다”에서 ‘달성감’은 ‘성취감’이나 ‘일을 해냈다는 기쁨’이라고 하는 게 맞다. 그리고 단지 희망사항 하나. 그림에 재주가 있어 보이는 유치원 다니는 딸애가 커서 그림책 작가가 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 부모 뜻대로 안 된다’는 말이 만고의 진리임을 벌써부터 체감하고 있지만. 최성일/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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