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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참말로 우라질 세상

등록 2006-12-14 21:31

 <참말로 좋은 날>성석제 지음, 문학동네 펴냄. 9500원
<참말로 좋은 날>성석제 지음, 문학동네 펴냄. 9500원
엄마는 자살하고 아빠는 인테넷에 빠지고 딸은 가출하고…
가난이 부른 가족의 해체와 끔찍한 파국
풍자와 해학보다 현실 고발에 방점 둔 성석제 소설집
성석제(46)씨가 새 소설집 <참말로 좋은 날>을 묶어 냈다. 단편 여섯과 중편 하나가 실렸다.

소설집의 제목은 책에 수록된 <환한 하루의 어느 한때>라는 단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왔다. “아이고마, 오날 날씨 참말로 좋을세.” 서울 사는 딸네 집에 가려고 버스에 탄 할머니가 내뱉은 말이다. 이 말을 할 때 할머니의 눈이 약간 찡그려져 있었다는 대목에 주목하자. 사실 지금 할머니의 기분은 별로 좋지가 않다. 딸네 집에 가져다 주고자 애지중지 들고 탔던 김치 통을 그예 검표원 청년이 빼앗아 짐칸에 실어 버린 것이다. 혹시라도 김치 통을 잃어버리거나 김치가 상하지나 않을까 불안한 가운데, 다른 승객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겸연쩍게 내뱉은 말이 바로 인용한 대사다.

할머니를 둘러싼 이런 작은 소동을 지켜보는 주인공 사내에게도 이 날은 그다지 ‘좋은 날’은 아니다. 알몸으로 상경해서 고생한 끝에 자수성가한 그는 새로 뽑은 최고급 승용차도 자랑할 겸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던 것인데, 우여곡절 끝에 사고를 내서 제 차 남의 차 할 것 없이 망가뜨리고는 스타일을 구긴 채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하려는 참이다. 소설은 ‘영빈관’이 ‘인빈간’으로, ‘사직단’이 ‘사지땅’으로, ‘늦출이’가 ‘넙춘이’로, 그리고 ‘침천정’이 ‘심청전’으로 바뀌는 지역 말투의 요술을 매개 삼아 결코 좋거나 환할 리가 없는 귀향의 풍경을 직조한다.

희극적 거리 대신 날카로운 메스

<고귀한 신세>라는 단편은 콩트적 발상으로 아이러니의 효과를 거둔 작품이다. ‘조화로운 삶­일상으로 만들어가는 행복, 고귀한 나’라는 주제로 대학병원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두루 챙기며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쥔 채,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리라 다짐했던 그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해 죽고 만다는 결말은 허무하고 섬뜩하다.

“박희제는 자신이 원하던 시간에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도착한 곳은 강연 장소인 강당이 아니라 응급실이었다. 숨이 멎은 그에게 인공호흡기가 들씌워졌다.”

강연 시간에 늦을까봐 노심초사했던 주인공이 제 시간에, 그러나 더 이상은 강연을 할 수 없는 시체로서 현장에 도착했다는 진술에서는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사태를 희극적 후광으로 덧씌우려는 작가 쪽의 전략이 짚인다.

그러나 소설집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에서 작가는 대상이 되는 인물 및 사건과 더 이상 희극적 거리를 두려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여보, 여보, 여보,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라니까.” 소설집 전체의 삼분의 일 분량을 차지하는 유일한 중편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에서 주인공의 아내가 주인공에게 하는 말이다. 이 말이 등장하는 소설의 초반부까지만 해도 결말이 예비하고 있는 끔찍한 파국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온순하다. 조용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누가 통지서 따위로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성석제표 웃음’ 사라져

그러나 세상은 그가 조용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통지서’를 들이미는 것이다. “그가 지상에 거주해오면서 무엇인가를 빼앗길 때 언제나 먼저 오던 신호”로 치장한 통지서의 요지인즉 그가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전세 연립주택이 경매에 붙여지게 되었다는 것, 결국 그의 가족은 돈 한 푼 못 받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다는 것이다. 집 주인이 세입자인 그를 속인 채 담보 대출을 받아 벌어진 이 사태에 맞서고자 그는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보지만 예정된 결말을 피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보고 어디로 가란 말이에요.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우리가 도대체 뭘 잘못했습니까. 왜 집을 빼앗습니까. 왜 나가라고 합니까. 우리보고 어디로 가라고 그럽니까. 식구들을 왜 찢어놓습니까. 누가 찢어놓습니까. 아니, 우리가, 내가, 아니…”

원망과 분노로 채 마무리짓지 못한 항변의 말 앞에서 작가의 저 유명한 유머 감각은 설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수도와 전화가 끊기고 보일러도 떨어진 집이 싫어 중학생 딸은 가출하고, 설상가상으로 귀는 멀어 가는데 수술할 돈은 마련할 길이 없는 아내를 나 몰라라 팽개친 채 가장은 인터넷의 가상현실에나 매달릴 따름이다. 이중 삼중의 시련으로 육박해 오는 상황에 맞서 안간힘으로 버티던 아내는 마지막 순간 4층 베란다 너머로 몸을 날린다. 소월의 시 <산유화>의 한 구절을 연상시키는 소설 제목은 혹시 베란다에서 떨어져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아내의 형상을 가리키는 것일까.

저자 성석제(46)씨
저자 성석제(46)씨
가난이 부른 가족의 해체와 끔찍한 파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라는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다.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 무능한 이 작품의 가장은 인터넷 게임에만 몰두하는 재수생 아들과 숫제 육박전을 벌이다가는 병으로 아들의 머리를 쳐서 정신을 잃게 만든다. 그 와중에 집 안에 불이 나고 불 속에 갇혔던 딸이 가까스로 구출되지만, 한번 와해된 가정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제 모습으로 돌아가기란 무망한 노릇이다.

작가 자신의 변화 자문하기도

유교적 충효의 덕목에 충실하게 상소를 올렸다가 왕의 진노를 사서 혹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죽어 간 선비의 이야기를 담은 <집필자는 나오라>, 그리고 사내들의 일상적인 술자리가 어이없는 감정 다툼과 폭언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추적한 <악어는 말했다>에서도 폭력의 그악스러움에 대한 고발이 두드러질 뿐 풍자와 해학으로 그것을 넘어서는 여유는 보기가 힘들어졌다. ‘성석제표 웃음’이 사라진 것이다. 그것이 이즈음의 각박한 인정과 살벌한 세태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바뀐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썼다. “바뀌는 게 당연한가. 그럴지도 모른다”고 그는 덧붙였다. ‘작가의 말’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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