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의 기원1·2>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펴냄, 각 권 2만2000원·2만5000원
섬세한 여성 철학자를 희대의 정치사상가로 만든
‘나치즘’의 작동원리 분석한 한나 아렌트의 첫 저작
‘나치즘’의 작동원리 분석한 한나 아렌트의 첫 저작
아돌프 히틀러가 없었다면 한나 아렌트(아래 사진)는 아카데믹한 철학자로 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이었다. 1906년 독일 하노버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렌트는 14살 때 벌써 이마누엘 칸트의 <수수이성비판>을 읽었다. 그는 타고난 철학자였다. 나치의 집권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1933년 그는 게슈타포에 체포돼 독일을 떠나라는 협박을 받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2차세계대전은 이 망명 지식인을 다시 한번 궁지로 몰아넣었다. 1941년 아렌트는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를 떠나 미국 뉴욕으로 몸을 피했다. 1943년 그는 일생 일대의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나치가 유럽 유대인을 조직적으로 집단학살한다는 소식이었다. 전대미문의 홀로코스트는 이 섬세한 여성 철학자를 정치에 대한 숙고로 몰아넣었다. 충격과 당혹 속에서 그는 1945년 펜을 들었고 1949년 원고에 마침표를 찍었다. 1951년에 출간된 아렌트의 첫 저작 <전체주의의 기원>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이 책은 아찔한 사태 앞에 선 인간의 이론적 대응이자 실존적 투쟁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는 지적 싸움이다. 동시대 많은 지식인들이 ‘어떻게 문명국가에서 이런 끔찍한 야만이 그토록 집요하게 실행될 수 있는가?’라고 넋 나간 듯 부르짖은 그 현상을 아렌트는 전체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보려 한다. 책의 제목이 알려주듯, 그는 전체주의 자체를 해명하기에 앞서 그 전제 조건을 탐색한다. 1부와 2부를 구성하는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를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조건으로 지목하고 그 형성 과정을 파헤친다. 말하자면,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는 나치즘의 두 가지 작동 원리와 일치한다. 안으로는 반유대주의를 작동시켜 내부의 모든 적을 유대인에게 투사해 배제하고 밖으로는 제국주의적 욕망을 발산시켜 거대한 영토 확장과 세계 지배를 꾀한다. 나치즘은 이 두 원리 위에 구축된 전례 없는 체제였다.
3부에서 아렌트는 이 책의 목표인 ‘전체주의 해명’을 시도한다. 전체주의의 최종 형태는 ‘절대악’이다. 그것이 절대악인 것은 인간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악이기 때문이다. “절대악은 (단순히) 사악한 동기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그래서 분노로도 복수할 수 없고. 사랑으로도 참을 수 없으며 우정으로도 용서할 수 없다.” 전체주의는 ‘총체적 지배 체제’다. ‘자유의 완전한 폐지’를 전체주의는 욕망한다. 아렌트에게 인간의 본질은 ‘자유’에 있기 때문에 때문에 전체주의의 승리는 곧 인간성의 파괴와 다르지 않다. 전체주의 국가의 모범적 시민은 “파블로프의 개”이고 “가장 기초적인 반작용으로 축소된 인간 표본”이다. 그들은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반응할 뿐이다.
그러나 전체주의 체제의 시민이 단순한 꼭두각시인 것만은 아니다. 전체주의를 떠받치는 것은 대중의 적극적 운동이다. 그 운동 위에서 전체주의는 작동한다. 전체주의 운동을 구성하는 대중은 “조직되지 않고 구조화되지 않은 대중, 절망적이고 증오로 가득 찬 대중”이다. 이 대중을 묶어 세우는 것이 지도자이며, 지도자를 지도자로 만들어주는 것이 대중이다. “지도자 없는 대중은 한갓 무리에 지나지 않으며, 대중이 없다면 지도자는 아무런 존재도 아니다.” 전체주의는 이 대중 운동에서 힘을 얻어 절대권력을 장악한 정권이 완전하고도 총체적인 지배를 지향한다. 그 한 결과가 홀로코스트라고 아렌트는 말한다. 아렌트는 이 전체주의에 독일 나치즘뿐만 아니라 소련의 스탈린 체제도 포함시켰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서로 서로 자극을 받았고 영향을 주었다.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배반당하기는 했지만 스탈린은 히틀러를 좋아했고 그의 성공을 바랐다. ‘지도자 숭배’를 포함해 둘 사이에는 일치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두 체제를 일반화해 전체주의로 묶을 수 있느냐는 의문은 이후 이 책을 학문적 논란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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