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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캐나다 이민 상품 대박날 만도 하지

등록 2007-01-04 19:49수정 2007-01-05 02:21

<느리게 가는 버스> 성우제 지음, 강 펴냄. 1만원
<느리게 가는 버스> 성우제 지음, 강 펴냄. 1만원
청각장애 아들 “방법 없다” 무뚝뚝한 의사에 상처
13년간 일했던 시사잡지사 관두고 캐나다로 훌쩍
환자와 가족 성심껏 배려하는 의료진에 큰 감동
4년여 경험·성찰 담고 ‘묻지마 이민’ 허점도 지적
성우제(44)씨는 2002년 5월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만 13년 동안 기자로 일했던 잡지 <시사저널>에 사표를 낸 뒤였다. 그 이듬해 한국의 텔레비전 홈쇼핑에는 ‘캐나다 이민 상품’이 나와 수백억원 어치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성씨가 홈쇼핑의 이민 상품 ‘대박’을 미리 예견하고서 발빠르게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그가 캐나다로 이민 갈 결심을 하게 된 때는 2001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 출장길에 토론토를 방문한 그는 “대단히 놀라운 풍경”을 만나게 된다.

“버스기사가 정류장에 차를 세우더니, 어느 승객의 손을 잡고 함께 내리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길을 가로질러 갔다. 그 승객이 혼자 안전하게 길을 찾아갈 수 있을 때까지 기사가 안내를 했다. 승객은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시각장애인이었다./바쁜 출근 시간에 버스기사가 차를 세우고 시각장애인을 돕는 그 광경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었다. 일반 승객들이었다. 장애인 한 사람을 위해 출근길 버스가 몇 분 동안이나 멈춰 서 있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22~23쪽)

이런 광경을 보았다고 모두가 이민을 결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성씨에게는 나름대로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청각장애인 아들 시경의 존재가 그것이었다. ‘캐나다에서 바라본 세상’이라는 부제를 거느린 <느리게 가는 버스>는 아들 시경의 치료를 중심으로 성씨가 캐나다 이민 생활 4년여의 경험과 성찰을 담은 에세이다.

캐나다의 버스 기사와 승객들이 그를 캐나다 쪽으로 끌어당겼다면, 장애 아들의 치료를 위해 찾았던 한국의 대학병원 의사는 그의 등을 한국 바깥으로 떠밀었다. 채 두 살도 되지 않은 아이의 청력에 이상이 있음을 진단한 의사는 눈물 바람을 하며 방법을 묻는 성씨 부부에게 “방법이 없다. 보청기를 끼면 조금은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짧고도 무뚝뚝하게 답할 따름이었다.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학교의 존재를 가르쳐준 것도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라 보청기업자였다.

몸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토론토교통위원회(TTC)에서 운영하는 특수버스. 전화로 요청하면 버스가 와서 장애인 승객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 강 제공
몸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토론토교통위원회(TTC)에서 운영하는 특수버스. 전화로 요청하면 버스가 와서 장애인 승객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 강 제공
장애인 기다려주는 버스 승객들

한국의 병원에서 겪은 환멸과 분노는 이민 후 캐나다 토론토 병원에서 경험한 아들의 수술 과정과 대비되어 서술된다. 한쪽은 “절망에 절망을 거듭”한 것으로, 다른 한쪽은 “감동에 감동으로 가슴이 뜨거웠던 날”로 요약된다. 지은이 성씨는 입원 이전부터 수술과 퇴원 이후까지 수술의 전 과정을 매우 상세히 써 놓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들은 인공와우(=손상된 달팽이관 기능을 대신할 전기적 장치) 수술을 거쳐 청력을 완전히 회복했다. 수술비는 무료였다. 수술을 전후한 상담 과정에서 병원측은 환자 가족을 위해 따로 한국어 통역자를 썼는데, 그 비용도 모두 병원이 부담했다. 수술 이후 보청기 대신 지급받게 된 인공와우용 기계 역시 무료였다. 성씨가 수술과 관련해 병원에 낸 총비용은 이틀 동안의 주차비 17달러가 전부였다.

지은이를 감동시킨 것이 캐나다 병원의 뛰어난 의료 기술과 사회보장은 아니었다. 병원측은 입원과 수술을 전후한 전 과정에서 철저히 환자와 그 가족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환자와 가족들이 불안해하거나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수술 전에도 수술 및 회복 과정과 예상되는 결과를 몇 차례에 걸쳐 설명했고, 수술이 끝나자마자 의사와 보호자 대기실 담당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와 수술 결과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환자 가족의 모든 궁금증에 성실히 답했다. 퇴원 이후 고마운 마음에 스카프와 장갑 등을 선물했더니, 의사와 특수교사 등은 진심 어린 감사의 카드를 보내왔다.


위에서 내려다본 어린이병원 내부. 병원이라기보다는 놀이동산같은 느낌을 준다. 강 제공
위에서 내려다본 어린이병원 내부. 병원이라기보다는 놀이동산같은 느낌을 준다. 강 제공
환자·가족 통역비용도 병원 부담

“나와 아내를 감동시킨 것은 의술이 아니다. 의술이라면 한국의 수준이 캐나다에 뒤질 것이 없다. 사람을 존중하고, 특히 장애인이나 환자와 같은 약자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배려하는 전문가들의 마음과 태도, 바로 이것을 느끼고 배우라는 것이다.”(45쪽)

장애인과 환자를 대하는 캐나다 의료진과 시민들의 자세를 목격한 그에게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반대 시위를 하는 한국인들에 관한 뉴스는 거꾸로 “한국 사회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한국=지옥, 캐나다=천국’의 등식을 세우는 것은 위험하다. 지은이는 자신의 경험은 특수한 사례일 뿐 일반화해서는 곤란하다며 캐나다가 결코 이민자의 천국이 아님을 누누이 강조한다. 한국의 화이트칼라 출신 이민자들이 이민 와서 할 만한 일이 거의 없으며, 일단 이민을 왔다가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사례들이 늘고 있음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아울러, 어학연수 명목으로 들어오는 일시적인 이주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비싼 돈 들여서 미국이나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오느니, 인도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유럽 미술관을 순례하는 쪽이 훨씬 생산적이며 언어 습득에도 유리하다는 조언이다.

책에는 이밖에도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과 한국 축구에 대해 악의적인 왜곡 보도를 하던 캐나다의 보수 신문을 상대로 교민들이 항의와 불매 운동을 벌인 끝에 ‘항복 문서’를 받아낸 사건, <시사저널> 시절 편집국장으로 모셨던 소설가 김훈씨에 대한 회고, 지은이 스스로 ‘마니아’를 자처하는 커피에 관한 이모저모 등이 담겼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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