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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소설 같은 임상사례로 인간 존엄 깨우침

등록 2007-01-11 15:50수정 2007-01-11 16:52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베스트셀러 들여다보기/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이마고 출판사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소설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제목도 그렇거니와 단편 소설을 여러 편 묶어 놓은 것 같은 내용도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은 ‘신경의학’의 임상사례를 다룬 책이고, 그 분야에서는 고전적 지위를 얻은 책이기도 하다. 그리 대중적이지 않을 것 같은 이 책은 지난해 2월 출간돼 지금까지 1만5000부가 독자의 손에 들어갔다. 지난해 말 <한국방송> 책 소개 꼭지 ‘TV, 책을 말하다’에서 ‘올해의 책’ 10종 가운데 하나로 꼽힌 뒤 이 책을 찾는 독자의 발길이 더 분주해졌다. 의학 분야라는 약점을 딛고 성공한 경우인데 그 원인은 책 속에 들어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말 그대로 이야기의 힘에 있다. 소설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서사를 구성하는 지은이의 능력은 탁월하다. 신경 분야 전문의로서 자신의 임상 치료 경험에 기대 쓴 글인데도 꼭 지어낸 것처럼 재미있게 읽힌다. 지은이 자신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질병과 사람 양쪽에 모두 똑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론가이자 극작가이기도 하다. 나는 과학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에 모두 푹 빠져 있고, 그 둘을 단순히 질병이 아니라 인간을 에워싼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고찰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뇌신경이 손상돼 보통 사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특이한 사람들이다. 지은이가 임상 보고서를 이야기 형식으로 쓴 것은 다른 방식으로는 이들이 겪는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내려고 그들이 벌이는 투쟁을 생생히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인간이라는 주체, 곧 고뇌하고 고통받고 명과 맞서 싸우는 주체를 중심에 놓기 위해서는 병력을 한 단계 더 파고들어 하나의 서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무엇이?’뿐만 아니라 ‘누가?’를 알게 된다. 병과 씨름하고 의사와 마주하는 살아 있는 인간, 현실의 환자 개인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시각 인지 능력이 손상돼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는 남자’, 스무 살 이후의 모든 경험을 1분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길 잃은 뱃사람’, 자신의 움직임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게 된 여성, 말을 잃어버리고 자기안에 갇혀 있지만, 뛰어난 그림 소질을 지닌 ‘자폐증을 앓은 예술가’와 같은 환자들의 이야기는 기이한 것에 대한 호기심 충족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깨달음으로 독자를 이끈다. 감동과 발견이 이 책의 장점인 셈이다. 글들이 지닌 드라마적 특성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은 희곡으로도 각색됐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로버트 드 니로와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영화 <사랑의 기적>은 애정과 신뢰로 무장한 참된 의사의 모습을 감동 있게 전하는데, 그 의사가 지은이 올리버 색스의 모습이라고 한다.

원본에는 없지만 한국어판에만 들어간 삽화는 이 책이 지닌 특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이마고 출판사의 여문주 기획실장은 “편집이 거의 끝나갈 무렵, 책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줄 수 있는 삽화를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러스트레이터를 찾았다”고 밝혔다. 이미지에 강한 책을 만들어온 이마고 출판사다운 결정이었던 셈이다. 여문주 기획실장은 “삽화를 그린 박선영씨가 독특한 분위기의 선으로 책 내용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냈는데, 그게 독자에게서 긍정적 반응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무리 딱딱한 주제도 ‘사람 이야기’로 풀면 독자들이 찾는다는 걸 이 책은 입증하고 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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