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 이상섭 지음, 창비 펴냄. 9500원
바다에 목숨줄을 대고 살아가는 주인공들
풍요와 사랑의 원천이었던 바다는 이제 사람들을 내쫓아
그러나 상처와 눈물은 다시 바다에 의해 씻겨진다
풍요와 사랑의 원천이었던 바다는 이제 사람들을 내쫓아
그러나 상처와 눈물은 다시 바다에 의해 씻겨진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작가 이상섭(46·사진)씨가 두 번째 소설집 <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를 묶어냈다.
소설집이란 한 작가가 일정한 기간 동안 발표한 중편이나 단편을 한데 묶은 책을 이른다. 같은 작가에게서 나온 것인 만치 수록된 작품들이 주제나 형식상의 공통점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런 점이 모이면 한 작가의 ‘소설 세계’ 또는 ‘문학 세계’를 이루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보통은 같은 소설집 안에 묶인 작품들일지라도 서로 간에 특별한 유기적 관련성을 지니기 힘든 법이다. 동일한 인물들이 등장하거나 특정 주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연작소설집’을 논외로 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소설집 일반의 이런 속성을 감안해 보면, <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는 매우 통일성이 높은 소설집이다. 우선 여기 수록된 두 편의 중편과 다섯 단편은 모두가 바다와 그 주변을 무대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 바다가 작가의 고향이자 현재의 거주지인 부산과 경남 남해안 어름의 바다라는 사실은 등장인물들이 구사하는 진한 토박이말에서 알 수 있다.
수록된 작품 대부분에서 주인공들은 배를 몰고 나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거나 가두리 양식을 하지 않으면 시장 좌판에서 생선을 팔거나 한다. 모두가 어업 및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셈이다. 바다와 어시장이 생계 근거지로 구실하지 않는 두 단편 <자장가>와 <고추밭에 자빠지다>에서 바다는 신기루 같은 그리움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일종의 ‘카메오’일망정 바다는 어느 한 작품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다.
바다와 토박이말이라는 공간적 및 언어적 공통점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인간과 세계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라 할 수 있다. 표제작인 <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와 <바다는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두 수록작의 제목에 빗대어 말해 본다면, 이상섭씨의 소설들에서 바다는 상처와 눈물의 장소이지만 그 상처와 눈물은 다시 바다에 의해 아물리고 씻겨지곤 한다. 그러니까 바다는 병도 주고 약도 주는, 애증의 대상인 셈이다.
갈등은 바다자원 고갈에서 비롯
“몸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넉넉한 사랑을 베풀던 바다의 넓은 품은 이제 깨지고 뭉개지고 멍이 들었다.(…)바닷속이 마르니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기만 했다.”(<바다는 상처를 오래 남기지 않는다>)
“방도, 마당도, 골목도 다 모자랐지만 모자라지 않는 게 딱 하나 있었다. 바다였다. 창문을 열어도 바다였고 골목에서도 발밑까지 바다가 찰랑거렸다. 신발을 벗으면 바닷물이 고여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는 어디든 갈 수 있단다. 기차를 타면 서울도 갈 수 있고 배를 타면 일본이고 미국도 갈 수 있지.(…)저 바닷길을 통해 낯선 세계로 나갈 수도 있지만 낯선 것들이 들어오기도 한단다. 어떤 것요? 이를테면 나쁜 이기심, 폭력, 전쟁, 포르노 같은 것들이지. 그걸 괴물고래라 부를 수도 있겠지.”(<웨일맨, 나의 아버지>)
<바다는 상처를…>의 인용문에서 본래 풍요와 사랑의 원천이었던 바다는 이제 고갈되어 사람들을 내쫓고 있다. <웨일맨…>에서는 풍요와 가능성의 이름이었던 바다가 악과 폭력의 유입구로 타락하는 양상이 포착된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직접 고기를 잡거나 연안의 가두리 양식장에서 물고기를 기르는 이들, 그렇게 잡은 고기를 받아다가 좌판을 벌려 놓은 사람들, 손님들에게 회나 찌개를 파는 식당 사람들…. 직·간접적으로 바다에 목숨줄을 대고 살아가는 소설집 속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예전에 비해 바다의 생산성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물고기의 씨가 말랐다는 절박한 느낌.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에서 부각되는 갈등과 고민의 상당부분은 바로 생명과 부의 원천인 바다 자원의 고갈에서 비롯된다. 여기에다가 아이엠에프와 구조조정, 대졸 청년들의 취업난, 실직과 이혼에 따른 가족 해체, 조선족과 몽골인 등 외국인노동자들의 유입 같은 ‘바다 바깥’의 사태들이 결합되어 주인공들을 압박한다.
다소 안이한 결말 처리는 아쉬워
그럼에도, 표면적인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이 끝까지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는 점에 이상섭 소설의 핵심이 있다. 회복 불능인 간질환에 걸려, 아마도 먼저 숨을 거둔 어머니 곁에서, 소주에 독극물을 타서 마시고 자살을 꾀하는 <자장가>의 주인공을 제하면 대부분의 소설들은 미약하나마 긍정과 희망 쪽으로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마무리된다.
<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와 <바다는 상처를 오래 남기지 않는다>의 결말은 아주 흡사하다. 주인공 ‘그’의 아내가 다른 여자와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움을 벌이는 것을 ‘그’가 말리거나 다만 구경하는 것이 두 소설의 결말이다. <그곳에는…>에서는 주인공의 옛 애인이자 지금은 경쟁 상점의 주인인 여자가, <바다는…>에서는 시장 좌판 골목에 새롭게 나타나 주인공네의 상권을 침해하는 새댁이 각각 아내와 육탄전을 벌인다. 영업권을 둘러싼 알력에다 남자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여자의 암투까지 겹쳐 사태는 자못 심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아주 험악하거나 비극적인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경쟁과 갈등의 당사자들 가운데 근본적인 악당은 없으며, 모두가 나름의 고충과 애환을 지닌 약자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고 따뜻한 휴머니즘이라 할 수 있겠다.
<불어라 바람>이라는 작품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녀는 거울을 보듯 비슷한 말을 주고받는다: “하여튼 난 내 배를 탄 사람들은 다들 상처받지 않고 잘살았으면 해.”(149쪽) “하이튼, 내 배를 탄 사람은 다 행복해야 하는 기라요!”(155쪽) 앞의 배가 여자의 배(腹)로서 성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 반면 뒤의 배(船)는 주인공인 어부가 부리는 말 그대로의 배를 가리킨다는 차이는 있지만, 두 사람이 근본적으로 선의의 인간들이라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흡사 두 사람이 입을 모아 소설가의 바람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내 소설의 등장인물은 다 행복해야 한다!’
작가의 이런 태도는 일단 아름답고 긍정적이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든든하고 고맙기조차 하다. 그러나 여러 작품에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다소 안이한 결말 처리라는 아쉬움도 든다. 현실의 엄중·냉혹함에 대한 철저한 인식, 그런 현실을 상대로 한 좀 더 치열한 싸움을 회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따뜻한 휴머니즘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독후감이 남는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바다는 상처를…>의 인용문에서 본래 풍요와 사랑의 원천이었던 바다는 이제 고갈되어 사람들을 내쫓고 있다. <웨일맨…>에서는 풍요와 가능성의 이름이었던 바다가 악과 폭력의 유입구로 타락하는 양상이 포착된다.
저자 이상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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