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
물리학·철학·기독교·증산도 전진하다 천도교 만나 해갈
“돈과 권력 밀쳐낼 새 삶의 방식 전지구적 문제도 풀 수 있죠”
“돈과 권력 밀쳐낼 새 삶의 방식 전지구적 문제도 풀 수 있죠”
책·인터뷰 /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쓴
김용휘 군산대 연구교수 원래 우주적 진리 같은 형이상학에 관심이 있었다. 중고생 시절부터 세계와 우주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1987년 물리학과엘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영 아니었다. 한국대학의 물리학은 그런 걸 다루는 이론물리학이 아니라 응용을 위한 실험 등이 위주여서 답답했다. 당시 사회분위기도 뒤숭숭했다. 공부는 안되고 방황했다. 처음엔 기독교였는데 증산교 쪽으로 갔다가 다시 대순진리회 쪽으로 가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2~3년 수련 같은 걸 했다. 동양철학으로 방향을 바꿔 대학원에 갔는데, 그곳도 유학 중심으로 세계나 우주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책에선 진리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한 학기 마치고는 교수한테 말도 않고 그냥 학교를 나와버렸다.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느날 경포대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중에 마치 바깥에서 내게 하는 얘기처럼 “지리산으로 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지리산 노고단 산장에 갔더니 십수년간 삼신을 모시고 기수련을 하며 산생활을 한 사람이 있었고, 그를 따라가 몇개월 보냈다. 그때까지 나는 세상에 불평하고 문제의식만 가득한 염세주의자였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다. 그 사람이 신이 내렸다며 내게 자신을 도와 큰 일을 하라는 하늘의 얘기를 전했으나, 그게 무슨 의미인지, 만약 그렇게 해야 한다면 내게 그럴 능력이 있는지 곰곰 생각한 끝에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도대체 뭘 했던가. 뭐든 할 수 있도록 나를 연마하고 닦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공부해 실력과 인격을 키우자고 작심하고 대학원을 바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석사논문 쓸 무렵 선배가 바람쇠러 가자며 화악산에 데리고 갔다. 거기서 천도교 수행자를 만나 동학을 알았고 드디어 갈증을 풀었다. 되겠다, 닦아가면 원했던 걸 얻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책세상)을 쓴 김용휘(39)씨. 수수한 차림이지만 느긋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다. “진정한 믿음은 교회를 열심히 나가고 안 나가고의 문제는 아니다. 앎의 차원이나 신념의 차원 역시 아니라고 본다. 진정한 믿음은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해서 진리와 생명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자기 삶의 중심적 가치로 수용해서 살아가는 마음의 태도라고 본다.” 이런 믿음을 지닌 사람은 돈이나 명예, 권력 등의 사회적 성공보다 생명가치, 영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실천하며 진정한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 것이다. 성공이나 출세를 꿈꾸지 않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세속적인 삶에 초연하다면 삶이 얼마나 청빈하고 온화하겠는가. 결국 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땄지만 “대학 교수하려고 공부한 게 아니다”는 김씨는 동갑내기 아내와 함께 수련하며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다.
이처럼 ‘동학’의 ‘학’은 방법론 같은 것으로, 단순한 지식체계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자세를 추구하는 실천적 수행방법이다.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도의 전체, 존재의 실상에 다가갈 수 있나. 또 그것이 어떻게 인식에 그치지 않고 인격의 전이와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고 확대될 수 있나. 그는 동양적 직관과 영성, 서양적 추론과 이성을 아우를 수 있는 방법론이라는 ‘불연기연(不然其然)’이란 말로 설명했다. “변증법과도 다른 차원인데, 통전(通全)적으로 세계를 봄으로써 실상에 다가가는, 새로운 인식론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책은 동학을 둘러싼 몇가지 논란들에 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19세기 말 사상이 오늘 우리나라 상황에도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 당시 동학은 서양이 밀려오고 민생은 파탄났던 안팎의 절박한 위기에 대한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대응방안으로 등장했다. 오늘날에도 평화와 생명이라는 전지구적 문제와 19세기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워진 주변정세 등 바깥문제와 양극화 등 우리 내부문제 대처에 유효하다.”
동학의 개벽사상은 선천문명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내지 않고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니, 결국 자본의 논리가 모든 걸 좌우하는 최상위 가치가 돼 있는 오늘날의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얘기다. 모든 존재의 궁국적 기반은 하나의 한울이다. 나를 만든 바깥의 지극한 기운을 깨닫고 발아시키고 키워가면 내 마음이 꽃밭이 되고 숲이 돼 벌 나비와 동물들이 몰려오며 타인과 풀 한포기라도 저절로 공경하게 된다. 그런 경지가 ‘마음의 한울’이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김용휘 군산대 연구교수 원래 우주적 진리 같은 형이상학에 관심이 있었다. 중고생 시절부터 세계와 우주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1987년 물리학과엘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영 아니었다. 한국대학의 물리학은 그런 걸 다루는 이론물리학이 아니라 응용을 위한 실험 등이 위주여서 답답했다. 당시 사회분위기도 뒤숭숭했다. 공부는 안되고 방황했다. 처음엔 기독교였는데 증산교 쪽으로 갔다가 다시 대순진리회 쪽으로 가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2~3년 수련 같은 걸 했다. 동양철학으로 방향을 바꿔 대학원에 갔는데, 그곳도 유학 중심으로 세계나 우주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책에선 진리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한 학기 마치고는 교수한테 말도 않고 그냥 학교를 나와버렸다.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느날 경포대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중에 마치 바깥에서 내게 하는 얘기처럼 “지리산으로 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지리산 노고단 산장에 갔더니 십수년간 삼신을 모시고 기수련을 하며 산생활을 한 사람이 있었고, 그를 따라가 몇개월 보냈다. 그때까지 나는 세상에 불평하고 문제의식만 가득한 염세주의자였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다. 그 사람이 신이 내렸다며 내게 자신을 도와 큰 일을 하라는 하늘의 얘기를 전했으나, 그게 무슨 의미인지, 만약 그렇게 해야 한다면 내게 그럴 능력이 있는지 곰곰 생각한 끝에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도대체 뭘 했던가. 뭐든 할 수 있도록 나를 연마하고 닦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공부해 실력과 인격을 키우자고 작심하고 대학원을 바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석사논문 쓸 무렵 선배가 바람쇠러 가자며 화악산에 데리고 갔다. 거기서 천도교 수행자를 만나 동학을 알았고 드디어 갈증을 풀었다. 되겠다, 닦아가면 원했던 걸 얻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책세상)을 쓴 김용휘(39)씨. 수수한 차림이지만 느긋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다. “진정한 믿음은 교회를 열심히 나가고 안 나가고의 문제는 아니다. 앎의 차원이나 신념의 차원 역시 아니라고 본다. 진정한 믿음은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해서 진리와 생명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자기 삶의 중심적 가치로 수용해서 살아가는 마음의 태도라고 본다.” 이런 믿음을 지닌 사람은 돈이나 명예, 권력 등의 사회적 성공보다 생명가치, 영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실천하며 진정한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 것이다. 성공이나 출세를 꿈꾸지 않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세속적인 삶에 초연하다면 삶이 얼마나 청빈하고 온화하겠는가. 결국 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땄지만 “대학 교수하려고 공부한 게 아니다”는 김씨는 동갑내기 아내와 함께 수련하며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다.
김용휘 국립군산대 연구교수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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