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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보와 양자의 만남 곧 세상이 뒤집힌다

등록 2007-01-25 19:07

 <과학의 새로운 언어, 정보>한스 크리스티천 폰 베이어 지음·전대호 옮김,승산 펴냄·1만8000원
<과학의 새로운 언어, 정보>한스 크리스티천 폰 베이어 지음·전대호 옮김,승산 펴냄·1만8000원
앞으로 3년치 정보가 과거 30만년치보다 많은 지적 전환기
모든 것을 탐구하다 부닥치는 ‘궁극적 실재’인 정보와
가장 기초적 계의 주역인 양자 다루는 ‘양자물리학’ 만나
이르면 2020년대에 인류의 또다른 지적 전환 절정 이룰 것
지금 인류가 쏟아내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기계가 앞으로 3년 동안 생산할 정보는 과거 30만 년 동안 생산한 정보보다 더 많을 거라고 한다. 지식의 산출도 과거 어느 때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정보와 지식의 이런 축적은 결국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의 변화로 이어져 전체 지구촌 모습도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정보와 지식이 폭발한 시기는 사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때와 일치한다. 곧, 지금은 지적 전환기이자 역사의 전환기다.

여기서 두 가지가 궁금해진다. 하나는 지금 우리가 지적 전환기의 어느 시점에 있는가이다. 시작은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지동설을 주장한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고, 아이작 뉴턴(1642-1727)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를 출판한 1687년으로 잡을 수도 있다. 아니면 최대한 늦춰 인간 게놈지도를 완성한 21세기 초로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지적 전환기의 마지막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제 본격적 시작 단계에 접어든 것일까.

다른 하나는 지금의 지적 전환기를 꿰뚫는 핵심 개념이 무엇인가이다. 1만 년 전 신석기혁명 때는 농경 기술이 핵심이었고, 근대 서양을 세계사의 주역으로 올려놓은 과학적 사고의 핵심은 뉴턴 역학과 에너지 개념의 발전이었다. 지금은, 나아가 앞으로는 무엇이 그런 역할을 할 것인까.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의 <과학의 새로운 언어, 정보>와 안톤 차일링거의 <아인슈타인의 베일-양자물리학의 새로운 세계> 두 책은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지은이는 둘 다 물리학자다. 사실 물리학은 근대 이후 인류의 지적 발전을 선도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코페르니쿠스와 뉴턴은 인류가 오랫동안 봐온 세계의 모습을 다시 그렸고, 20세기 들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내놓은 상대성이론과 막스 플랑크(1858~1947)·닐스 보어(1885~1962)·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01~76)·에르빈 슈뢰딩거 (1887~1961) 등이 틀을 잡은 양자론은 다시 한번 세계 인식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두 책은 이런 물리학 전통의 위에 서서 미래를 내다본다.

세계 인식 패러다임 바꾼 양자론

핵심 개념은 ‘정보’와 ‘양자물리학’이다. 두 사람은 모두 정보 실재론의 입장에 서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을 탐구해 들어가면 결국 정보에 부닥치게 되는데, 이것이 ‘~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정보 자체가 바로 궁극적 실재라는 뜻이다. 양자물리학은 그런 세계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수단이다. 베이어는 이제까지 있었던 ‘정보 과학’을 다양하게 검토하면서 양자물리학으로 논의를 심화시키는 반면, 차일링거는 양자물리학의 원리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아인슈타인의 베일>안톤 차일링거 지음·전대호 옮김·승산 펴냄·1만5천원
<아인슈타인의 베일>안톤 차일링거 지음·전대호 옮김·승산 펴냄·1만5천원

지적 전환기의 시작은 19세기 말~20세기 초다. 20세기 초에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이 등장했고, 그 직전 열역학과 전자기학이 완성됐다. 클로드 새넌(1916~2001)이 창시한 정보이론, 게놈 연구와 함께 활발해진 생물정보학 등도 정보 과학의 큰 흐름에 동참한다. 지금은 정점에 이르기 직전 단계에 있다. 양자물리학은 가장 강력한 엔진이다. 이르면 2020년대에 그 절정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근대 과학혁명이 현대 사회를 만드는 기틀이 됐듯이, 정보 과학의 완성 역시 세계의 모습을 크게 바꿔나갈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정보(information)는 아직도 개념이 분명하지 않은 용어다. 어원적으로는 형상(form)이 없는 존재에 형상을 주입(infusion)하는 것을 뜻한다. 형상은 플라톤(BC 429~347)의 용어 에이도스(eidos)에 대한 번역인데, 관념(idea)이나 이상(idea) 같은 단어들의 어원이다. 세계는 관계들의 복잡한 연결망이므로 형상은 관계를 나타내고, 정보는 한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형상을 전달(소통)한다. 곧, 정보는 형상의 주입이자 관계의 소통이다.

양자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하기 위해 가동되고 있는 기구인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가르가멜 체임버. “정보는 우주의 근원 재료”라고 믿는 지은이들은 양자가 곧 정보이므로 머지 않아 물리학 전체, 나아가 세계 전체가 정보의 언어로 이해되고 진술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양자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하기 위해 가동되고 있는 기구인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가르가멜 체임버. “정보는 우주의 근원 재료”라고 믿는 지은이들은 양자가 곧 정보이므로 머지 않아 물리학 전체, 나아가 세계 전체가 정보의 언어로 이해되고 진술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보에 철학 ·존재론적 의미 부여

차일링거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정보에 철학적·존재론적 의미를 부여한다. 첫째 명제는 “자연법칙들은 실재와 정보를 구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아무 정보도 가질 수 없는 실재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또한 참으로 실재적인 것은 관찰 결과인데, 관찰 결과는 궁극적으로 질문에 대한 대답의 형태로 정식화할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첫째 명제를 인정하면 둘째 명제와 셋째 명제도 받아들이게 된다. “정보는 우주의 근원 재료이다.” 그리고 “가장 기초적인 계는 한 비트의 정보에 대응한다.” 가장 기초적인 계의 주역인 양자가 바로 양자물리학이 다루는 세계다. 이 세계는 생물의 세계이기도 하다. 모든 생물은 정보에 근거해서 끊임없이 결정해야 하는데, 그 정보는 궁극적으로 질문에 대한 ‘예-아니오 대답’(1비트)이다. 모든 것은 논리적 진술로, 비트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곧 정보의 양자화로부터 세계의 양자화가 귀결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마지막 명제가 도출된다. “실재와 정보는 동일하다.”

양자는 원래 빛이 띠 모양이 아니라 아주 작은 덩어리(양)로 옮겨다닌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플랑크가 제시한 개념이다. 양자는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불확정성 원리의 지배를 받는 모순된 존재다. 이런 양자 세계의 근본원리는 ‘우연’과 ‘중첩’과 ‘얽힘’이다. 그런데 전자와 중성자 같은 소립자는 물론이고 더 큰 물질들도 양자적 성질을 갖고 있음이 드러났다. 양자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세계를 파악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양자는 곧 정보이므로 물리학 전체, 나아가 세계는 정보의 언어로 이해되고 진술될 것이다. 저자들은 그 시기가 멀지 않다고 말한다.

양자물리학은 이론을 넘어서 현실로 진출하고 있다. 양자컴퓨터가 한 보기다. 지금의 컴퓨터는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메모리의 원자 하나당 비트 하나 수준의 정보처리 능력을 넘어설 수 없다. 일부에서는 2020년대가 되면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이 한계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대안이다. 물리적 실재의 원리를 밝힌 근대 과학이 우상들을 타파하고 이성의 시대를 열었듯이, 정보를 실재로 놓은 지금의 지적 전환은 정보의 불확실성이 주는 한계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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