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의 서울> 김재관·장두식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1만5000원
1960년대 이후 서울의 변모에 대한 문학적 대응 추적
시·소설 등 텍스트 통해 서울의 구체적 일상을 복원
우울하면서 활기찬 ‘물적 유토피아이면서 질적 디스토피아’
시·소설 등 텍스트 통해 서울의 구체적 일상을 복원
우울하면서 활기찬 ‘물적 유토피아이면서 질적 디스토피아’
문학작품 속에 그려진 서울의 모습을 다룬 선행 작업으로는 두 권짜리 단행본 <서울을 품은 사람들>(문학의집·서울 펴냄)이 있었다. 수필가 전숙희, 시인 황금찬, 소설가 김용성, 평론가 김우종씨 등 원로 및 중견 문인 156명이 필자로 참여한 이 책은 대체로 일제강점기에서부터 1950, 60년대까지의 서울에 대한 문학적 증언이라 할 법했다.
새롭게 나온 <문학 속의 서울>이 그 책과 자매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1960년대 이후 서울의 변모와 그에 대한 문학적 대응을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김재관씨와 장두식씨가 공저한 이 책은 서울문화재단이 기획한 ‘서울문화예술총서’의 두 번째 권으로 나왔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지난 600여 년간 한국 사회의 변동을 꼼꼼하게 기록한 역사 텍스트이기도 하다. 역사 텍스트에는 공식적인 기록과 일상적인 이야기가 공존하지만, 서울의 역사는 공식적인 기록물로서만 존재해왔다. 우리가 문학 텍스트에 형상화된 서울을 읽는 이유는, 마법에 걸린 문학을 통해서 공식성에 가려진 서울의 일상, 삭제된 서울의 구체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프롤로그)
인용한 대목에 담긴 취지는 두 가지. 하나는 서울이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는 것, 또 하나는 공식 기록이 감추고 있는 구체적 진실을 문학 텍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의 서울(과 대한민국)의 변모를 관찰하는 눈에 가장 뚜렷하게 다가오는 것은 역시 눈부신 개발과 발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정치적 부자유와 경제적 불평등을 담보로 한 성취이기도 했다. 지은이들이 서울을 일러 “물적 유토피아이면서 질적 디스토피아”(프롤로그)라 규정하는 까닭이다.
“간다/울지 마라 간다/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간다/울지 마라 간다/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팍팍한 서울 길/몸 팔러 간다”(김지하 <서울 길> 부분)
시인 신동엽의 ‘서울 사랑’
서울의 개발과 발전은 농촌 출신 사람들의 쇄도를 수반했다. 서울이 발전하면서 그들을 끌어들였는가 하면 그들이 서울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서울의 발전이 가속화하기도 했다. 누대에 걸쳐 살아 온 고향과 터전을 버리고 서울로 향하는 이들의 심중에는 설레는 꿈과 함께 앞으로 기다리고 있을 고난과 모욕에 대한 두려움과 체념 또한 엄연히 자리하고 있었음이다. 그렇지만 서울은 고향의 순수와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의 도시이기도 했으니, 시인의 서울에 대한 사랑 고백이 아예 생뚱맞지만은 않은 연유이다.
“그러나 나는 서울을 사랑한다/지금쯤 어디에선가 고향을 잃은/누군가의 누나가 19세기적인 사랑을 생각하면서//그 포도송이 같은 눈동자로 고무신 공장에/다니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신동엽 <서울> 부분)
사당동 산동네를 배경으로 한 정도상의 단편 <서울, 그 어느 쓸쓸한 사랑>에서도 일용직 건설 노동자, 파출부, 봉제공장 노동자, 버스 안내양 등 힘들고 보수 낮은 일에 종사하는 산동네 주민들(이들은 거개가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찾아든 ‘실향민’들이다)은 마을 공동 수도 격인 약수터와 친목계를 매개 삼아 농촌 공동체의 노나메기 정신을 실천에 옮긴다.
그렇지만 대도시 서울의 본질은 역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 그리고 그것이 상징하는 단절과 비인간화에 있다고 해야 옳으리라. 최인호의 단편 <타인의 방>과 조세희의 <민들레는 없다>는 아파트로 대표되는 인간 관계의 사막화를 음울하게 묘사한다.
“잠실은 모래로 만들어진 동네이다. 모래 땅에 모래 아파트들이 가득 들어서 있다.(…)잠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시멘트와 철근이다. 시멘트와 철근을 빼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모래만 남아 흩날리게 될 것이다. 모래는 모래끼리 아무리 뭉치려고 해도 뭉치지 못한다. 슬픈 일이다.”(<민들레는 없다> 부분)
박영한·최수철은 ‘층간소음’ 소재로
박영한의 소설 <지상의 방 한 칸>과 최수철의 <소리에 대한 몽상>은 나란히 아파트 층간 소음을 소재로 삼았지만, 그 접근 방식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지상의 방 한 칸>에서 주인공인 소설가는 소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조용히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방 한 칸을 찾아 서울 변두리와 근교를 샅샅이 훑고 다닌다. 그러나 이런저런 까닭으로 번번이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얻은 김포 어름의 집조차 가구공장이 들어서면서 소음의 공격을 받을 참이다. 결국 그는 소음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소설이 인간의 소음을 담는 한, 소설가는 인간의 소음을 긍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소리에 대한 몽상>에는 처음부터 층간 소음에 우호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위층에 사는 ‘칼귀’ 사내가 그인데, 결국은 그의 감화를 받은 주인공 역시 층간 소음의 긍정적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고독한 단독자가 아니라 아래위층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깨달음이 그것이다.
층간 소음을 고통스러워하거나 거꾸로 그것을 즐기는 서울 시민들은 지하철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펼쳐 든 스포츠 신문을 곁눈질하거나 민방위 훈련의 사이렌 소리에 쫓겨 걸음을 재촉하거나 한다(강석경 <맨발의 황제>). “허기지고 지친/우리 공돌이 공순이들이/싸구려 상품을 샘나게 찍어두며/300원어치 순대 한 접시로 허기를 달래고/이리 기웃 저리 기웃/구경만 하다가/허탈하게 귀갓길로/발길을 돌”(박노해 <가리봉 시장>)리는 가리봉 시장과 “졸부들의 끝없는 욕망과 타락의 전시장, 아니 똥통 같이 왜곡된 한국 자본주의가 미덕(?)처럼 내세우는 환락의 별칭적 대명사”(이순원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압구정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곳이 또한 서울이다. 이처럼 카멜레온 같고 괴물 같은 서울에 대해 지은이들이 끝내 사랑을 놓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서울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1960년 이후의 ‘문학 속의 서울’은 우울하지만 매우 활기차다. 그 활기는 서울의 양적, 질적 성장 때문이 아니다. 정치적, 경제적 상황의 추상적인 정황보다도, 그 상황 속에서 직접 서울의 땅을 부지런히 걸어 다니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서울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의 형상 때문이다.”(에필로그)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960년대 이후 서울의 변모를 문학작품을 통해 살펴본 <문학 속의 서울>이 출간되었다. 사진은 복원된 청계천 광통교 아래 구름다리를 건너는 시민들의 모습.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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