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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휴대전화 세계화시대의 자유찾기

등록 2007-04-05 19:27

 ‘휴대전화, 철학과 통화하다’
‘휴대전화, 철학과 통화하다’
뉴미디어가 삶 쥐고흔드는 시대
세계화의 강력한 파트너 구실
“매체는 사용자 따라 의미 달라져”
비판·감시도구 가능성 사유
책·인터뷰 / ‘휴대전화, 철학과 통화하다’ 펴낸 고현범 교수

담배를 많이 피우던 시절에, 지구를 관찰한 외계인이 인간이라는 생물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면 인간의 외형적 특징 가운데 하나로 내장기관에서 계속 연기를 내뿜고 있다는 걸 들 것이라는 농담이 있었다. 요즘 지구를 방문하는 외계인에게 그 시절의 ‘연기’처럼 인간의 태생적 신체의 일부로 오해받을 만한 것으로는 단연 휴대전화(핸드폰)일 것이다. 상시휴대가 가능한 자그마한 도구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도, 심지어 지구 반대편의 아득한 곳 사람들과도 실시간 통화한다는 건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상상 불가능 영역이었다. ‘뉴미디어시대의 총아’로 불리는 이 새로운 매체는 단순한 의사전달 수단, 도구 차원을 넘어 사회와 문화, 나아가 인간 자체를 바꿔 놓고 있다.

<휴대전화, 철학과 통화하다>(책세상)가 등장한 건 그래서 당연했다. 이 중대하고도 심각한 현상을 사유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면 철학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근대성과 합리성이란 주제에 천착하면서 헤겔과 벤야민을 공부해온 저자 고현범 교수가 휴대전화에 주목한 동기는 두가지다. 하나는 충북대·군산대 등에서 강의해온 그가 철학에 무관심하거나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좀 더 쉽게 끌어들이는 우회로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치 자기 몸의 일부처럼 일상화 보편화해, 지각의 조건 또는 의사소통의 조건이 된 휴대전화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과 삶 자체도 변화시키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했다. 미디어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순한 통로나 부차적인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내용을 규정하는 메시지라는 것이고 이게 “근본적인 매체철학적 통찰”이라고 고 교수는 설명한다. 글쓰기 도구는 단순히 도구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 과정에 가담한다고 한 니체의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뉴미디어 시대의 글쓰기에 뉴미디어는 부단히 개입하고 간섭한다. 이런 상황에서 뉴미디어에 관한 비판적 글쓰기란 가능한가. 만일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휴대전화, 철학과 통화하다>의 바탕에 깔린 기본적인 물음이다. 그것은 또한 “뉴미디어 시대의 자유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과도 상통한다.

고현범 교수
고현범 교수
맥루한에 따르면 매체발전은 말에서 문자로, 인쇄, 뉴미디어 순으로 이어졌다. 이런 매체 변화는 인간의 지각과 사유 구조를 바꿨고 행동양태를 변화시켰으며 사회와 문화를 규정했다. 소크라테스는 문자(알파벳)가 기억력을 퇴화시키고, 상호작용을 배제하며, 독자를 선택할 수 없고, 말할 때와 같은 쌍방의 일체감을 느낄 수 없어 진지한 태도를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고민은 알파벳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대의 매체변화가 몰고온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자크 데리다는 대중과 개인의 경계를 허무는 전화가 전체주의를 파괴하는 해체적 성격을 지닌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화를 철저히 사적인 대화기계로 본 독일 매체철학자 로에슬러는 전화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간의 경계를 허물지 못해 공공적인 가치에 복무할 수 없다며 데리다를 비판했다.

뉴미디어 확산은 현재 우리 사회의 화두인 세계화 물결과도 관련이 있다. 세계화라는 이데올로기는 뉴미디어가 조성하는 지구적 환경을 반영하고 있으며, 뉴미디어는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파트너다. 뉴미디어가 표방하는 지구적 네트워크는 국지적 경험과 기억이라는 구체적인 맥락을 필요로 한다. 양자가 언제나 평화롭게 공존하진 않는다. 경제·문화적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는 이유다. 한-미 FTA를 둘러싼 갈등이 이를 말해준다.


“매체를 사용하는 맥락에 따라 매체의 의미는 변하기 때문에 뉴미디어가 함축하고 있는 현재의 기술적·사회적 의미 또한 뉴미디어 사용자가 구성하는 맥락에 의존한다”는게 고 교수의 생각이다. 따라서 휴대전화를 비롯한 뉴미디어는 지구적 네트워크를 매개하면서도 동시에 세계화 이데올로기에 비판적인 맥락에서 사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고 교수는 “뉴미디어 매체철학은 이런 잠재력을 포착하고 서술 할 수 있어야”하며, 휴대전화를 사용함으로써 전세계적 네트워크에 편입된 사용자들은 “네트워크 사회의 이런 기제를 제대로 파악해서 주체가 될지, 아니면 단지 하나의 물리적 구성인자에 머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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