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아프리카산 입담이란 이런거야

등록 2007-04-12 16:28수정 2007-04-12 16:36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알랭 마방쿠 지음.이세진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9000원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알랭 마방쿠 지음.이세진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9000원
콩고출신 알랭 마방쿠 해학소설 두권 국내 첫소개
주제와 소재 다르지만 두 소설 모두 화자는 ‘깨진 술잔’
다른 문장 부호 없이 쉼표만 써 흥겨운 리듬감
그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아프리카 소설은 크게 두 종류였다. 하나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나딘 고디머와 존 쿳시 같은 백인계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설가들. 이들은 다수 흑인들의 땅에 사는 소수 백인 지배계급으로서의 비판적이며 복합적인 자의식을 소설에 담았다. 다른 하나는 치누아 아체베, 은구기 와 시옹오, 월 소잉카 같은 흑인 출신 작가들의 소설로, 이들은 그 자신 부당하게 억압받고 착취 당하는 흑인들의 분노와 슬픔을 선명한 언어로 분출했다.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콩고 출신 작가 알랭 마방쿠(41)의 소설들은 이 양자와 다르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야말로 아프리카적이라 할 면모를 보여준다. 마방쿠는 콩고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대학을 마쳤으며 지금은 미국 유시엘에이(UCLA)에서 프랑스문학과 비교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불어권 작가다. 2005년에 발표한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는 프랑스의 유력 문학상인 페미나상과 르노도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던 그의 출세작이다. 이듬해 출간한 <가시도치의 회고록>으로 마방쿠는 마침내 르노도상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널리 인정받았다. 이 두 작품이 전문번역가 이세진씨의 번역으로 한꺼번에 출간되었다.

<가시도치의 회고록> 알랭 마방쿠 지음. 이세진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9000원
<가시도치의 회고록> 알랭 마방쿠 지음. 이세진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9000원
<아프리카 술집…>과 <가시도치…>는 둘 다 ‘깨진 술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가 집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두 소설은 일종의 연작에 해당한다. 작가는 이 두 편에 이어지는 연작의 마지막 3편 역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연작이라고는 하지만 두 작품은 소재와 주제가 전혀 다르다. <아프리카 술집…>에는 집필자인 ‘깨진 술잔’ 자신이 등장해서 ‘외상은 어림없지’라는 이름의 허름한 술집에 모여드는 군상의 이모저모를 들려주는 반면, <가시도치…>에서 ‘깨진 술잔’은 일종의 전지적 작가의 자리로 물러나며, 등장인물과 이야기도 전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집필자가 같다는 점 이외에 두 작품 사이의 공통점이라면 마침표와 느낌표, 물음표와 같은 문장 종결부호를 쓰지 않고 쉼표로만 시종한다는 형식적 특징 정도를 들 수 있다.

작가는 미국서 프랑스문학 가르쳐

<아프리카 술집…>은 아프리카 음악의 흥겨운 리듬을 연상시키는 소설이다. 화자인 ‘깨진 술잔’은 ‘외상은 어림없지’라는 해학적인 이름의 술집을 제 집 드나들 듯하는 단골 술꾼. 술집 주인인 ‘고집쟁이 달팽이’는 어느 날 그에게 노트 한 권을 주면서 술집의 역사와 다른 단골 술꾼들의 사연을 적어 보라고 권유한다. 소설 뒷부분에 가서야 드러나거니와 ‘깨진 술잔’은 초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교사였지만 술이 과해서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쫓겨난 전력을 가지고 있다.

‘깨진 술잔’ 자신의 인생도 고약하게 꼬였지만, 그가 기록하는 술집의 다른 단골들의 사연 역시 답답하고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성적인 매력이 없는 부인을 탓하며 사창가를 출입해 버릇하다가 집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갔다가 남색인 감방 동료들에게 항문을 착취당해 두툼한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사나이, 프랑스에서 인쇄공으로 성공하고 매력적인 백인 여성과 결혼까지 했다가 결국 그 부인이 자신의 전처 소생 아들과 눈이 맞는 바람에 이혼 당하고 정신병원을 거쳐 아프리카로 송환당한 사내, 그리고 “족히 십 분은 쉬지도 않고 힘차게 오줌 줄기를 쏟아”(93쪽) 내는 여걸 ‘로비네트’와 오줌 오래 누기 내기를 해서 결국 이기는 왜소한 체구의 사내, <호밀밭의…(…in the rye)> 어쩌고 하는 제목의 영어책을 들고 다니며 스스로를 ‘홀든’이라 소개하는 사춘기 소년 풍의 기묘한 사내 등.

자칭 ‘홀든’이라는 사내가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를 흉내내고 있음은 명백하다. 그는 ‘깨진 술잔’을 비롯해 술집의 모든 손님들에게 ‘추운 나라에 겨울이 오면 가엾은 오리들이 어떻게 되는지 나에게 말해 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데, 그것은 바로 뉴욕 센트럴 파크에 사는 오리들의 운명에 관해 홀든이 택시 기사에게 했던 질문이다.

사진 랜덤 하우스 제공.
사진 랜덤 하우스 제공.
작품속 수많은 문학작품 발견 재미

<호밀밭의 파수꾼>을 비롯해 수많은 문학작품을 직·간접적으로 인용한다는 점이야말로 <아프리카 술집…>의 또 다른 특징이다. 술집의 탄생 설화를 들려주는 앞부분에서는 에밀 졸라의 유명한 공개장 ‘나는 고발한다’가 언급되며, 이밖에도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흰 가면>,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 마여 앤젤루의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 움베르토 에코의 <연어와 여행하는 법>, 그리고 우리에게는 비교적 생소한 아프리카 작가의 소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작품들이 등장해 눈 밝은 독자들의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

마방쿠의 등장은 ‘아프리카산 입담꾼의 탄생’이라 이를 만하다. “그놈은 돈도 많아요, 돈이 어찌나 많은지 미국이 백 년쯤 통상 금지를 선언해도 이 동네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랍니다”(43쪽), “백인 여자들은 엉덩이가 어찌나 납작한지 셔츠 다림질을 하는 다리미판으로 써도 되겠더라고요”(67쪽)와 같은 과장은 아프리카적 생명력을 문장 차원에서 보여주는 듯하다. 다음은 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자’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서술한 부분이다.

나무에게 들려주는 ‘…회고록’ 토속적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주의자’가 어머니, 누이, 이모, 고모의 은밀한 그곳을 모욕하는 것보다 더 심한 욕이다(…)자본주의자는 불룩한 배때기를 두들기며, 쿠바산 시가를 피우고, 메르세데스 벤츠를 모는 대머리이다, 그는 이기적이랄 만큼 돈이 많고, 뒷거래와 그 밖의 모든 수상쩍은 일에 손을 대며, 남성에 대한 남성의 착취, 여성에 대한 여성의 착취, 여성에 대한 남성의 착취, 남성에 대한 여성의 착취를 실현한다, 심지어 가끔은 동물에 의한 인간의 착취까지 실현하는데(…)”(35쪽)

<가시도치의 회고록>은 인간의 사악한 분신으로 살며 99건의 살인을 저지른 가시도치(호저)가 자신의 42년 생애를 바오바브 나무에게 들려주는 형식의 소설이다. 작가 특유의 입심에 아프리카 토속 신화에 바탕을 두고 오늘의 현실을 환상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랜덤하우스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