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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미스터리세상 속 미로 헤매는 소수자

등록 2007-05-18 18:39수정 2007-05-18 18:51

<왼손잡이 미스터 리> 권리 지음. 문학수첩 펴냄. 9800원
<왼손잡이 미스터 리> 권리 지음. 문학수첩 펴냄. 9800원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이어 기성질서 고발
오른손이 잘려 왼손잡이 된 탈북자와
어른 강요로 오른손잡이 된 아이가 본 세상
<왼손잡이 미스터 리>
권리 지음 / 문학수첩 펴냄. 9800원

<싸이코가 뜬다>로 2004년 제9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권리(28)씨가 두 번째 장편소설 <왼손잡이 미스터 리>를 내놓았다.

<왼손잡이 미스터 리>는 <싸이코가 뜬다>에 이어지는 작품이다. <싸이코가 뜬다>가 기성 질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아웃사이더적 인물을 통해 우리 사회의 획일성과 경직성에 메스를 가한 소설이라면, <왼손잡이 미스터 리> 역시 왼손잡이로 상징되는 사회적 소수자를 통해 지배 질서의 억압과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싸이코가 뜬다>에서 주인공 오난이가 ‘우리들의 오답사회’라는 가상 현실을 경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왼손잡이 미스터 리>의 등장인물들은 주인공 미로의 꿈 속 세상인 ‘플라스틱 지구’를 여행한다. 기왕의 소설들과 전혀 다른, 심지어 이질적인 느낌마저 주었던 <싸이코가 뜬다>가 우발적이거나 단발성의 습작품이 아니라 이 젊은 작가 나름의 고유한 ‘세계’의 표출이었다는 사실을 새 소설은 확인시켜 주는 셈이다.

<왼손잡이 미스터 리>의 주인공은 의사 출신의 탈북자 ‘리우리’와 그가 장기 투숙하고 있는 이태원의 여관 ‘미아장’의 아들 미로를 비롯한 가족들이다. ‘왼손잡이 미스터 리’란 일차적으로는 미로와 리우리가 함께 몰두하는 인터넷 롤플레잉 게임의 이름이지만, 탈북자라는 신분을 숨기고 있는데다 탈북 과정에서 오른손이 잘리는 바람에 왼손을 쓰게 된 리우리를 이르는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왼손잡이 미스터 리의 미스터리’에 관한 소설이다.

“빨간 밤이었다. 미스터 리는 집을 나섰다. 앞에는 강이 펼쳐져 있었다. 얼어붙은 강. 죽음의 강도 그보단 정이 깊으리라. 달빛은 은젓가락만큼 서늘했다. 그는 신발을 벗었다. 이가 떨려 왔다. 왼손가락을 벌려 갈라진 머리칼을 빗었다. 강을 건너려고 눈을 감았다. 뒤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들은 뒤에, 지랄 같은 강은 저 앞에 있었다. 그는 땅을 발밑으로 밀어내듯이 박차고 달렸다.”(7쪽)

소설의 도입부를 이루는 위의 문장들은 고교생 미로가 열중하고 있는 인터넷 게임 ‘왼손잡이 미스터 리’의 상황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주인공인 ‘리우리’가 북한을 탈출하던 정황의 상징적인 묘사로 읽을 수도 있다. 작가는 이처럼 의도적으로 현실과 비현실을 뒤섞으며, 현실을­재현하는 대신­표상하는 가상 현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왼손잡이 미스터 리>의 저자 권리.
<왼손잡이 미스터 리>의 저자 권리.
표면적으로 소설은 리우리와 같은 탈북자인 김철을 살해한 범인을 추적하는 추리적 방식으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리우리가 범인으로 몰리지만, 기자 이준의 추적으로 진범이 밝혀진다. 그를 위해 이준은 연길에서 베이징을 거쳐 라오스와 태국으로 이어지는 ‘기획 탈북’의 루트를 직접 체험하는데, 그 과정에서 탈북자들이 겪는 끔찍한 고난이 생생하게 드러남은 물론 탈북을 둘러싼 음모와 이권다툼 역시 가차없이 까발려진다. 소설의 다른 한 축은 왼손잡이로 태어났으나 어른들의 강압에 의해 오른손잡이로 바뀐 미로의 방황과 반항에 할애된다. 미로의 할아버지인 ‘우익’은 이름 그대로 “빨갱이 타도!”를 외치는 반공주의자이고, 어머니 ‘은유’는 철학을 전공한 논술 강사로서 할아버지의 반공주의와 사사건건 부딪친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왼손잡이 버릇에 관대하지 못하다는 점에서는 우익 시아버지와 리버럴한 며느리가 통한다. 미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아직 초등학생인 여동생 ‘미아’다. 오빠가 억지로 오른손잡이가 된 데 대한 동정과 항의로서 미아는 오른손잡이로 태어난 자신을 혹독히 단련시켜 왼손잡이로 바꾸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다음은 소설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대목이다.


“세상은 언제나 질서와 무질서가 팽팽히 대립하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 가장 작은 세계 중 하나인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아주 단순한 원리였다. 세상의 법칙을 지지하느냐 마느냐가 구분 기준이었다. (…)하지만 미로에게 있어서 미스터 리는 완벽한 ‘익명의 카오스모폴리탄’이었다.”(240~241쪽)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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