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의 종횡사해
연애 드라마의 원형이 <춘향전>과 <콩쥐팥쥐>라면, 불륜 드라마의 원형은 <인현왕후전>이다. 조신하고 어진 본처와 매력적이지만 모진 시앗이라는 설정은 결국 본처의 제자리 찾기와 시앗의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는 동안 남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위상도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 인기리에 방영되는 <내 남자의 여자>도 기본 틀은 다르지 않다. 준표(김상중)는 재벌 2세 대학 교수다. 그는 현모양처 지수(배종옥)보다 도발적인 화영(김희애)에게 끌린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윤리적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준표와 화영은 서로에게 삶의 활력을 제공하는 존재론적 대상이고, 지수 또한 남편의 배신을 계기로 인생의 새 장을 열어간다. 부각되는 것은 주인공들의 심리와 생활양식이지 윤리가 아니다. 불륜이 다양한 삶을 그려내기 위한 무대장치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포스트모던하다. 그럼으로써 가부장제의 파탄을 드러낸다. 가부장으로서 완벽한 조건에 있는 준표는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걷어차버리고, 남편을 중심으로 살아온 지수는 본의 아니게 각성의 기회를 얻는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불륜에 새로운 모습을 부여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를 윤리적 위기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부장제의 모순이 만들어내는 더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출산율 저하가 그것이다.
성생물학의 기본 공리에 따르면, 고등 동물의 수컷은 되도록 많은 후손을 퍼뜨리려 하고 양육의 부담을 진 암컷은 건강하고 능력 있는 수컷을 선별해 2세를 가지려 한다. 그래서 양쪽 사이에 치열한 탐색전과 속임수, 협력과 갈등, 사랑과 배신이 난무하고, 그 모든 것의 결과로 임신과 출산이 결정된다고 <정자전쟁>(로빈 베이커 지음, 이학사 펴냄)은 설명한다. 인간 사회에선 여기에 더해 혼인·양육 제도와 윤리가 큰 영향을 끼친다.
지난 수천년간 가부장적 1부1처제는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가부장제는 남성에게는 바람기를 억제해 배우자와 규칙적이고 오랜 성관계를 갖게 하고, 여성에게는 힘이 들더라도 동일한 배우자의 여러 아이를 낳아 기르도록 강제한다. 유능한 배우자를 골라 잘 키울 수 있을 만큼의 2세만을 가지려는 여성의 원천적 욕구는 일찍부터 억눌린다. 그래서 어느 사회나 여성의 권익이 신장되고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 출산율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선 사회변동 속도까지 너무 빨라 새로운 제도와 윤리가 들어설 여유조차 없었다.
출산율 회복 성공 사례로 꼽히는 프랑스의 경우 혼인외 출산이 전체의 절반 가량 되는 반면 우리나라는 1~2%대에 머문다. 한국 사회가 더 윤리적이어서가 아니라 효용이 다한 가부장제를 대체할 새로운 제도와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은 탓이다. 젊은 여성들이 보기에 결혼은 여전히 속박이며 양육의 부담 또한 너무 크다. 그래서 결혼과 출산에는 쉽지 않은 결단이 필요하다.
가부장제는 파트너 사이의 평등한 관계에 기초한 새로운 혼인·출산·양육 문화와 윤리로 빨리 대체돼야 한다. 그 때까지 출산율은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포스트모던 불륜 드라마도 이어질 것이다. 사족으로 덧붙이면, 불륜은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는 게 성생물학의 정설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가부장제는 파트너 사이의 평등한 관계에 기초한 새로운 혼인·출산·양육 문화와 윤리로 빨리 대체돼야 한다. 그 때까지 출산율은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포스트모던 불륜 드라마도 이어질 것이다. 사족으로 덧붙이면, 불륜은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는 게 성생물학의 정설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