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광 김대중 학술상’ 수상차 방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후광 김대중 학술상’ 수상차 방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브루스 커밍스 미 시카고대 교수는 1980년대 한국 전쟁의 기원 연구로 국내 진보적 한국사 연구에 큰 영향을 끼친 한국 근·현대사 전문가이다.
그는 1981년 펴낸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1〉에서 한국전의 기원을 남침이나 북침이 아니라,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으로 증폭된 한반도 내부 갈등에서 찾았다. 미국의 개입으로 38선 이남에서 좌익이 몰락하면서 남과 북의 단독정부가 수립됐으며 이런 국내 정세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내전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미국 정부의 방대한 미공개 자료를 토대로 한 그의 이런 연구 결과는 80년대 이후 국내외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왔다.
미국, 한국·이라크 내부사정 모른채 도발해 곤경
차기 미 대선서 민주당 후보 당선 가능성 높아
‘2·13 합의’에서 북핵 동결과정이 선행됐어야 전남대가 제정한 ‘후광 김대중 학술상’의 첫번째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찾은 커밍스 교수를 지난 18일 국제학술대회 ‘5·18과 민주주의 그리고 한반도 평화’가 열리고 있던 전남대 용봉문화관에서 만났다. 그는 미국이 한국뿐 아니라 이라크에서도 해당국의 내부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전쟁을 일으켜 여러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전쟁’에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그는 또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자국이 중국과 맞서는 데 북한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부시 정부 이후 한-미 관계 전망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나 일본의 우경화는 어떤 변수가 될까? =1998~2000년 미 클린턴 행정부 당시 당과 정부의 매우 똑똑한 인사들이 당시 김대중 정부와 함께 대한반도 정책의 논리와 정책을 새로 짜는 작업을 했다. 북-미 관계 정상화와 주한미군 유지 등의 정책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차기 대선에서 민주당이 당선되면 이 방향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는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은 북한이 미국의 외교적인 친구나 동맹국 혹은 최소한 중립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냉전은 끝났고, 일본의 리더십은 좋아지기보다는 더 나빠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두개의 한국에 동맹국이 될 수 있다.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북한이 중국에 맞서는 전선에서 자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이해할 것이다. -북한은 핵을 폐기할까? =1994년 합의 때는 북한이 핵을 동결시키기로 한 뒤 프로세스의 마지막에 영변의 핵 시설을 폐기하기로 했다. 나는 이번 2·13 합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동결이 선행되어야 했다. 북한은 시설의 일부를 하나씩 하나씩 폐기할 것이다. 협상은 계속해서 연기될 것이다. 94년에는 (합의 이후) 북한이 플루토늄을 ‘만질’ 수 없었으나 지금은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2·13 합의에 대해 긍정적이다. 부시의 한반도 정책의 완전한 방향전환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과 직접 접촉했고, 잘못된 행동(핵실험)에 보상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깼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불러온 한반도 내부 갈등의 증폭을 주요한 요인으로 꼽았는데? =나는 미국이 한국전의 유일한 책임자라고 하지 않았다. 옛소련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내가 책을 쓸 당시는 모두 옛소련만을 비난했다. 전쟁 발발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문서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연구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정직한 연구자라면 자료 검토를 통해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즉 미국은 당시 친일파들이 한국 군부나 경찰의 상층부를 장악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한국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전쟁은 막을 수 없었나?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쟁 전) 북한의 김일성이나 일본군 대령 출신인 남한의 김석원(한국전 때 공수사단장 등 역임)은 서로를 제거하고자 했다. 친일파 그룹들에게 있어 유일한 해결책은 전쟁이었다. 불행히도 미국은 이런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일본이 만주에 괴뢰정부를 세운 1932년 한국인들은 만주에서 서로 나뉘어 총부리를 겨누고 서로를 죽였다. 김일성의 사고틀은 이때의 경험에서 형성됐다. 일본은 한반도에 풀기 힘든 너무나 많은 문제를 만들었다. 아마 전쟁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이라크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해 이 나라를 침략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내전과 맞닥뜨리면서 당황해하고 있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의 사회적 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일제 식민 지배 당시 철도를 놓는 등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주장을 펼쳐 왔는데, 이는 일본의 식민 지배가 한국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의미인가?
=내 주장은 일본이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게 아니라, 개발과 저개발의 방식으로 한국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개발이란 근대화를 의미한다. 이론의 여지 없는 성공스토리다. 모두가 잘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에서 저개발과 개발을 동시에 수행했다. 수백만명의 농민을 전쟁터나 광산으로 끌고 갔다. 농민들은 농지와 살던 집을 빼앗겼다. 이것은 저개발의 예이다. 일본이 도입한 근대식 철도나 통신시설, 그리고 근대적 금융시스템은 개발의 예이다. 개발·저개발의 방식이 아니라 그저 수탈만 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의 프랑스와 대조적이다. 물론 영국도 식민지인 인도에 철도를 놓았고 직물공장을 지었다. 하지만 인구 1인당 철도 길이 등 개발의 정도를 비교할 때, 한국에 비해 미미했다.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수탈을 위한 것 아닌가?
=모든 것은 비교해서 봐야 한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일본은 또 다른 식민지들을 가졌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김성수와 같은 자본가를 갖지 못했다. 만주국의 일본 관리였던 최규하 같은 이도 없었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현 시기 과도한 민족주의가 사회적 양극화나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정당한 사회 갈등의 의제화를 막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6월항쟁 이후)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에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매우 강하고 건강한 노동운동이 존재해 왔다. 미국은 노동자당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오직 기업가당인 공화당과 기업가-노동자당인 민주당이 있을 뿐이다.(웃음) 한국의 경우 반공 정서와 북한의 존재로 인해 노동자당이 뭔가를 하기 대단히 어려울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포스트모던 사회에 살고 있다. 영국의 노동당도 ‘제3의 길’을 가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다. 남미를 제외하고 노동자당이 강한 국가를 발견하기 힘들다. 나도 최 교수의 주장처럼, 한국이 계급적으로 나뉘어진 사회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민족주의가 계급의 차이를 흐릿하게 하고, 통일운동이 계급적 차이에 대한 관심을 사그라들게 한다는 그의 관점에 주목하고 있다.
광주/글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차기 미 대선서 민주당 후보 당선 가능성 높아
‘2·13 합의’에서 북핵 동결과정이 선행됐어야 전남대가 제정한 ‘후광 김대중 학술상’의 첫번째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찾은 커밍스 교수를 지난 18일 국제학술대회 ‘5·18과 민주주의 그리고 한반도 평화’가 열리고 있던 전남대 용봉문화관에서 만났다. 그는 미국이 한국뿐 아니라 이라크에서도 해당국의 내부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전쟁을 일으켜 여러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전쟁’에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그는 또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자국이 중국과 맞서는 데 북한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부시 정부 이후 한-미 관계 전망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나 일본의 우경화는 어떤 변수가 될까? =1998~2000년 미 클린턴 행정부 당시 당과 정부의 매우 똑똑한 인사들이 당시 김대중 정부와 함께 대한반도 정책의 논리와 정책을 새로 짜는 작업을 했다. 북-미 관계 정상화와 주한미군 유지 등의 정책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차기 대선에서 민주당이 당선되면 이 방향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는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은 북한이 미국의 외교적인 친구나 동맹국 혹은 최소한 중립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냉전은 끝났고, 일본의 리더십은 좋아지기보다는 더 나빠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두개의 한국에 동맹국이 될 수 있다.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북한이 중국에 맞서는 전선에서 자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이해할 것이다. -북한은 핵을 폐기할까? =1994년 합의 때는 북한이 핵을 동결시키기로 한 뒤 프로세스의 마지막에 영변의 핵 시설을 폐기하기로 했다. 나는 이번 2·13 합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동결이 선행되어야 했다. 북한은 시설의 일부를 하나씩 하나씩 폐기할 것이다. 협상은 계속해서 연기될 것이다. 94년에는 (합의 이후) 북한이 플루토늄을 ‘만질’ 수 없었으나 지금은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2·13 합의에 대해 긍정적이다. 부시의 한반도 정책의 완전한 방향전환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과 직접 접촉했고, 잘못된 행동(핵실험)에 보상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깼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불러온 한반도 내부 갈등의 증폭을 주요한 요인으로 꼽았는데? =나는 미국이 한국전의 유일한 책임자라고 하지 않았다. 옛소련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내가 책을 쓸 당시는 모두 옛소련만을 비난했다. 전쟁 발발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문서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연구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정직한 연구자라면 자료 검토를 통해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즉 미국은 당시 친일파들이 한국 군부나 경찰의 상층부를 장악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한국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전쟁은 막을 수 없었나?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쟁 전) 북한의 김일성이나 일본군 대령 출신인 남한의 김석원(한국전 때 공수사단장 등 역임)은 서로를 제거하고자 했다. 친일파 그룹들에게 있어 유일한 해결책은 전쟁이었다. 불행히도 미국은 이런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일본이 만주에 괴뢰정부를 세운 1932년 한국인들은 만주에서 서로 나뉘어 총부리를 겨누고 서로를 죽였다. 김일성의 사고틀은 이때의 경험에서 형성됐다. 일본은 한반도에 풀기 힘든 너무나 많은 문제를 만들었다. 아마 전쟁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이라크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해 이 나라를 침략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내전과 맞닥뜨리면서 당황해하고 있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의 사회적 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후광 김대중 학술상’ 수상차 방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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