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와 학자>
코널리·바흐친·비트겐슈타인 등
실존인물 등장시켜 혁명 토론
영 저명 문학비평가의 ‘있어 보이는 소설’
실존인물 등장시켜 혁명 토론
영 저명 문학비평가의 ‘있어 보이는 소설’
<성자와 학자>
이글턴 지음·차미례 옮김/한울·1만3000원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64·사진)이 1987년에 낸 소설 〈성자와 학자〉(원제 Saints and Scholars)가 차미례씨의 번역으로 나왔다. 테리 이글턴은 〈문학이론 입문〉 〈마르크스주의와 문학비평〉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영국의 문학비평가다. 〈성자와 학자〉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영웅인 제임스 코널리(1868~1916)와 오스트리아 출신 분석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친구이자 러시아 미학자 미하일 바흐친의 형인 주정뱅이 지식인 니콜라이 바흐친과 같은 실존인물들을 등장시킨 작품이다. 소설 제목은 “성자들과 학자들, 순교자와 미치광이의 땅 아일랜드”(47쪽)라는 구절에서 왔다. 실존인물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 흥미로운 소설은 물론 허구에 입각해 있다. 앞서 언급한 주요 인물들이 1916년의 어느 날 아일랜드 서해안의 한 오두막집에 모여든다는 설정은 순전히 ‘작가’ 이글턴의 상상의 소산이다. 소설은 영국군에 체포된 코널리가 처형실로 끌려가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작가는 병사들의 총구에서 떠난 “총알들을 공중에 멈추어놓고”(28쪽) 코널리를 탈출시킴으로써 그가 비트겐슈타인 등과 조우할 수 있도록 한다. 〈매트릭스〉적 발상이다. 코널리의 심장을 향하던 총알을 정지시킨 작가는 이번에는 케임브리지대에 재직하고 있던 비트겐슈타인을 불러내어 그가 자신의 스승이자 동료 교수인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과 논쟁을 벌이던 중에 발작적으로 아일랜드행을 결심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의 아일랜드행에는 바흐친이 동행한다. 이렇게 해서 세 중심 인물들이 소설 후반부의 무대인 아일랜드 해안의 오두막에 모일 수 있게 된다.
세 지식인이 만났으니 토론이 없을 수 없다. 이들은 특히 코널리가 주도하는 혁명과 무장투쟁을 놓고 치열한 논전을 펼친다. “인류의 삶을 총체적으로 파괴한다는 것은 환상”(177쪽)이라고 비트겐슈타인이 말하자 “총체적 파괴가 하나의 환상이라면, 순수한 지속이란 것도 마찬가지”(177쪽)라고 코널리가 대꾸한다. 다시 “그 변혁에 대해서는 누가 대가를 치를까요? 선생님이 아니라 민중입니다”(179쪽)라고 비트겐슈타인이 공박하자 “당신은 마치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었던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179쪽)라고 코널리가 받는다. 이것 말고도 민족주의와 노동운동, 철학과 현실의 관계 등에 대해 세 사람은 흥미로운 논쟁을 벌인다.
“비엔나는 문화라는 이름의 에로틱한 꿈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프로이트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육체에 대한 속박이라고 선언했다”(66쪽)라든가 “더블린은 어떤 언어로 말을 할 것인지 확신이 없어서 헛기침을 하며 말을 머뭇거리거나 더듬었으며,
한 가지 말은 녹이 슬어 서툴렀고 또 다른 말에서는 굴욕감을 느꼈다”(86쪽)와 같은 지문들 역시 독자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소설 말미에는 레오폴트 블룸이라는 인물도 등장해서 코널리를 살해하려는 영국군 장교와 대결을 펼치는데, 정황상 그는 아일랜드 출신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의 주인공으로 짐작된다.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역시 기호학자이자 페미니스트 문학비평가인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무사들〉과 함께 읽어 볼 만한, ‘있어 보이는’ 소설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이글턴 지음·차미례 옮김/한울·1만3000원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64·사진)이 1987년에 낸 소설 〈성자와 학자〉(원제 Saints and Scholars)가 차미례씨의 번역으로 나왔다. 테리 이글턴은 〈문학이론 입문〉 〈마르크스주의와 문학비평〉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영국의 문학비평가다. 〈성자와 학자〉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영웅인 제임스 코널리(1868~1916)와 오스트리아 출신 분석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친구이자 러시아 미학자 미하일 바흐친의 형인 주정뱅이 지식인 니콜라이 바흐친과 같은 실존인물들을 등장시킨 작품이다. 소설 제목은 “성자들과 학자들, 순교자와 미치광이의 땅 아일랜드”(47쪽)라는 구절에서 왔다. 실존인물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 흥미로운 소설은 물론 허구에 입각해 있다. 앞서 언급한 주요 인물들이 1916년의 어느 날 아일랜드 서해안의 한 오두막집에 모여든다는 설정은 순전히 ‘작가’ 이글턴의 상상의 소산이다. 소설은 영국군에 체포된 코널리가 처형실로 끌려가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작가는 병사들의 총구에서 떠난 “총알들을 공중에 멈추어놓고”(28쪽) 코널리를 탈출시킴으로써 그가 비트겐슈타인 등과 조우할 수 있도록 한다. 〈매트릭스〉적 발상이다. 코널리의 심장을 향하던 총알을 정지시킨 작가는 이번에는 케임브리지대에 재직하고 있던 비트겐슈타인을 불러내어 그가 자신의 스승이자 동료 교수인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과 논쟁을 벌이던 중에 발작적으로 아일랜드행을 결심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의 아일랜드행에는 바흐친이 동행한다. 이렇게 해서 세 중심 인물들이 소설 후반부의 무대인 아일랜드 해안의 오두막에 모일 수 있게 된다.
소설가 주인공 제임스 코널리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영웅이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한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테리 이클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