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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득 돌아보니 가슴 먹먹한 회한

등록 2007-06-08 20:53수정 2007-06-08 21:01

<우렁각시는 알까?>
<우렁각시는 알까?>
음험한 세상 속 현대인의 우울한 초상들
정년퇴직 앞두고 10년만에 소설집으로
“이젠 전업작가 되어 장편 쓰고 싶다”
<우렁각시는 알까?> 이동하 지음/현대문학·9000원

작가 이동하(65·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씨가 〈문 앞에서〉 이후 10년 만에 일곱 번째 소설집 〈우렁각시는 알까?〉를 펴냈다. 고단한 일상과 세계의 음험한 폭력성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우울한 초상이 담겼다.

〈앙앙불락〉에서 현대는 “언제 발밑이 폭삭 내려앉을지 모를 세상” “어디서 누구에게 심장을 물어뜯길지 알 수 없는 세상”(59쪽)이다.

“예측 불가능한 함정들이 도처에 널려 있”(60쪽)는 이 세계의 극단적인 피해자를 그린 소설이 〈누가 그를 기억하랴〉다. 주인공인 중년의 가장은 그 아내에게 “땡볕 아래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묵묵히 올라가고 있는 뒷모습”(189쪽)으로 떠올려지는데, 지방에서 근무하다 모처럼 집에 다니러 온 그는 부실공사 후유증으로 무너진 아파트의 철근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담배 한 대〉의 여자 역시 “느닷없이 당한 재앙”(153쪽)의 희생자로 삶을 마감한다. 세상을 향해 복수하는 심정으로 악착같이 일해 돈을 번 그는 타고 다니는 외제차 때문에 ‘막가파’ 무리에 납치되어 생매장당하고 마는 것이다. 〈가엾은 영혼들〉은 택시 운전사의 눈에 비친 세상 풍경을 담았는데, 그가 보기에 세상 사람들은 하나같이 쓸쓸하고 초라한 혼을 그림자처럼 거느리고 있다.

〈누가 그를 기억하랴〉에서 주인공은 “피난민촌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매양 허기가 느껴지곤 한다.”(196쪽) 〈남루한 꿈〉의 중산층 사내는 아내한테서 “당신 마음 속에는 지독한 가난뱅이가 살고 있”(102쪽)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궁상맞은 꿈을 꾸어 버릇한다. 그는 어린 시절 더러운 천변의 판자촌에서 도시살이를 처음 시작했는데, 그가 분석하건대 그의 마음속 가난뱅이는 “그 어렵던 시절에 만성적인 굶주림과 지병 속에서 속절없이 죽어간 아버지 바로 그분”(102쪽)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동하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이동하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고려 속요의 제목을 차용한 〈사모곡〉은 작가의 대표작인 〈장난감 도시〉의 뒷이야기로 읽힌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사내는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어머니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몸뻬바지와 안남미와 구공탄으로 상징되는 삶”(121쪽)을 영위하다가, 뱃속에 아이를 가진 채 굶주림과 질병에 스러진 어머니는 〈장난감 도시〉의 바로 그 어머니다. 이 소설에서, 대형 마트의 넘쳐나는 물건들이 과시하는 풍요와 여유의 삶을 어머니에게 단 한 번만이라도 보여주고 싶다는 안타까운 열망이 가슴의 물리적인 통증으로 전이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 통증은 아마도 〈남루한 꿈〉에서,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그의 안에서 똬리를 틀고 줄기차게 저항을 키워온, 그래서 이제는 거의 발작 직전의 단계에 이르고 만 그런 비명”(104쪽)과도 통하는 통증일 게다.
유년기의 결핍과 상처에서 벗어나고자 앞만 보고 내달려온 세대가 문득 숨을 고르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회한과 슬픔이 이동하 소설집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내년 2월 정년퇴직하는 작가는 “40년 동안 밥벌이에 매달리느라 소설에 전력투구하지 못한 결핍감을 지니고 있다”며 “학교를 그만두면 비로소 ‘전업작가’가 되는 셈이니 새 장편을 몇 편 쓰고 싶다”고 말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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