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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코드 맞추고 귀 기울이라, 소통의 소리에

등록 2007-07-06 18:10수정 2007-07-06 19:12

<소통의 기술>
<소통의 기술>
먼저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추고
소리꾼 되기 전에 귀명창이 되라
정신과 전문의의 ‘공감’ 길라잡이
<소통의 기술>
하지현 지음/미래나무·1만2000원

언제부턴가 아내는 어둠속에 휴대폰이 울릴 때 상기된 표정으로 발신자를 확인하고선 텔레비전의 볼륨을 키운 뒤 베란다로 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통보하듯 말한다. 그것도 초등생 아들을 남겨둔 채. 직감적으로 〈델마와 루이스〉가 아니라 ‘델마와 브래드 피트’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세월의 더께만큼 패어버린 소통의 부재가 마침내 파경으로 치닫고 있다는 위기감에 처갓집의 힘을 빌려 간신히 아내를 주저앉힌다. 그 뒤 우울증이 도져가던 아내는 갑자기 남편을 납치하듯 금은방으로 끌고가 싸구려 반지를 사 달라고 강요한다.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씨에게 이 부부가 상담을 한다면 어떤 진단이 나올까? 그가 쓴 〈소통의 기술〉은 감정이 쌓여 임계점에 이르면 찰랑거리던 저수지에 한 개의 돌만 던져도 물이 넘쳐올라 둑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관계를 파경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한다. 부부관계는 서로 적당히 포기함으로써 지탱되는 것이 아니며 그대로 두면 결국 둑이 무너진다는 얘기다.

프랑스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뇌졸중으로 온몸이 마비됐다. 그는 침대에 누워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눈꺼풀로 비서에게 신호를 보내 의미를 전달했다고 한다. 무려 100만번 이상 눈꺼풀을 움직인 끝에 자서전 〈잠수복과 나비〉를 완성해 세상과 소통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의 소통욕구가 얼마나 본능적이고 강렬한 것인가를 통감하는 대목이다. 그가 소통의 끈을 놓았을 때 세상은 “보비가 자신을 옥죄고 있던 ‘잠수복’을 벗고 한마리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고 추도했다.

그림/김영훈 기자
그림/김영훈 기자
이 책은 한국인의 공감코드를 ‘소통의 기술’로 주목한다. △둘만이 통하는 짜릿한 신호코드(code) △여러 개의 음표가 조화해 심금을 울리는 음악코드(chord) △마침내 모두 하나로 연결되는 전기코드(cord). 이 코드들을 꽂으면 소통의 불이 환하게 켜진다는 것이다.

소통의 근원은 탯줄(cord)이다. 그 탯줄이 끊어져 엄마의 자궁에서 쫓겨난 순간부터 아이는 최초의 근원으로 회귀하려고 한다.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코트는 정서발달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안아주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진정으로 통하려면 기꺼이 나의 무릎을 낮춰야 한다. 키가 큰 여자가 자기보다 작은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무릎을 굽히며 안아주는 휴대폰 광고. 통신회사답게 눈높이 통화로 감성적 소구효과를 노렸을까? 역할 바꾸기는 어색하기보다는 쌍방 커뮤니케이션의 묘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지은이는 소리꾼이 되기 전에 귀명창이 되려는 마음가짐도 훌륭한 소통의 기술이라고 말한다. 2 대 8의 파레토 법칙은 소통의 법칙이기도 하다.


〈웃찾사〉나 〈개콘〉을 처음 본 사람은 왜 관객들이 웃는지 모른다. 그러나 몇 주 보다 보면 폭소를 터뜨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웃음을 터뜨려야 할 결정적 대사로 치달을 때 관객들은 그 시점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똑같이 반응한다. 이것이 ‘공명’의 원리다. 물론 같은 주파수를 찾아내려면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는 미세한 튜닝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어떤 책은 풍부한 상상력을 공자 말씀으로 막아버리지만 이 책은 맹자 말씀도 무한한 상상력으로 펼쳐낸다.

공자: 배려와 칭찬에 인색하지 말라.

상상: 간디는 기차가 출발하면서 신발 한짝이 플랫폼으로 떨어져버리자 급히 남은 한짝을 떨어진 곳으로 던진다. 놀란 사람들이 묻자 “신발 한짝은 아무에게도 쓸모가 없지만 두짝이 되면 누구에게나 쓸모가 있죠.”

경제학적으로도 남은 한짝을 던지는 것은 손실의 증가가 아니라 배려를 통한 사회후생의 증가가 된다.

다른 책들은 소통의 변화구로 타자를 유인하지만 이 책은 직구로 승부한다. 그렇다면 독자들도 교타자여선 안 된다. 직구와 소통하려면 번트 댈 생각을 하지 말고 풀스윙을 해야 하니까.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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