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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운명 박찬 불가촉천민 가족사 감동

등록 2007-07-13 18:56

<신도 버린 사람들>
<신도 버린 사람들>
베스트셀러 읽기 / <신도 버린 사람들>

“베다를 들으면 귀에 납물을 부을 것이요,
베다를 암송하면 그 혀를 자를 것이며,
베다를 기억하면 몸뚱이를 둘로 가를 것이다.”

‘베다’라면 고대 브라만교의 경전인데, 그 성스러운 말씀을 듣고 읽고 기억했다는 이유로 이런 끔찍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인도 카스트제도의 최하층 바깥에 있는 ‘불가촉천민’이다. 힌두 경전 〈마누 법전〉은 불가촉천민에게 신의 가르침을 접할 기회조차 박탈했다. 인도는 1947년 독립과 함께 공식적으로는 카스트제도를 부정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전히 카스트제도가 작동하고 불가촉천민도 사회의 밑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불가촉천민이 인도 인구의 16%인 1억650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이 실질적으로 해방되지 않는다면, 인도는 평등과 자유의 국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신도 버린 사람들〉은 바로 이 불가촉천민 집안에서 태어나 수많은 카스트 장애를 뚫고 가장 촉망받는 경제학자로 성장한 나렌드라 자다브의 가족 이야기다. 지난 6월 출간된 이 책은 한 달 만에 2만부 가량이 팔렸다. 지은이가 출간 직후 한국을 다녀간 것이 홍보에 도움이 되기도 했겠지만, 심리적 거리감이 적지 않은 인도라는 땅을 배경으로 한, 불가촉천민의 이야기가 독자의 큰 호응을 얻은 것은 의외라고 할 만한 일이다. 책을 만든 김영사의 편집자 황은희씨는 “탄탄한 원고의 힘”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지은이는 불가촉천민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거짓 없이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그 속에 인도 카스트제도의 야만성과 억압성을 고발하고, 불가촉천민의 해방자였던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의 위대한 투쟁을 새겨넣었다. 황은희씨의 말을 빌리면, 이 책은 “정직하고도 굳건한 책”이며 “정말 감동적이고 가슴 뜨거운 이야기”이다.

이 책은 깊은 감동을 전하는 휴먼 스토리이자, 일종의 성공담이기도 하다. 삶의 밑바닥에서 일어나 인도 최고의 두뇌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정점에 선 자기실현형 인간의 이야기인 셈이다. 이 점이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고 황은희씨는 말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이런 사람도 있는데 하물며 나는 어떻게 살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신조차 내 꿈을 빼앗지 못했다’라는 카피처럼 사람들은 자신보다 훨씬 끔찍한 상황에서 그 악조건을 극복한 실존 인물을 통해서 희망을 얻는다.”

책 안에서 지은이는 담담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역사를 말한다. “그렇다. 나는 마하르 카스트 출신이다. 내 아버지는 간신히 문맹을 면했고, 변변찮은 막일로 가족을 먹여 살린 보잘것없는 노동자였다. 내 조상들은 불가촉천민이다. 그들은 침이 땅을 더럽히지 않도록 오지항아리를 목에 걸고 다녔고 발자국을 즉시 지울 수 있게 엉덩이에 비를 매달고 다녔다. 그리고 그들은 마을의 하인이 되어 이글거리는 태양 밑을 입에 거품을 물고 숨이 끊어지도록 달려서 관리들의 행차를 알려야 했다. 그래서 뭐 어떻다는 말인가? 나는 내 힘으로 존엄성을 입증하지 않았던가?” 지금 처지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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