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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생과 사의 경계, 무덤 앞에서 쓴 시

등록 2007-08-03 20:37

<공중 묘지>
<공중 묘지>
<공중 묘지> 성윤석 지음/민음사·7000원

극장에서 무덤으로. 성윤석(41)씨의 시 세계의 운동을 일단 이렇게 요약해 두자. 서른 고개를 갓 넘은 11년 전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라는 인상적인 제목의 첫 시집을 상재했던 그가 사십줄에 접어든 지금 <공중 묘지>라는 제목의 두 번째 시집을 내놓았다.

“걷다가 어느새 당도한 옛 극장터./ 아직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휘파람 부는/ 저 소년의 유령./ 옛 극장터 앞에서 잠시 누군가를/ 기다려 보다/ 만화 속 풍경처럼 나는/ 다시 걸어간다.”(<2000년 서울, 겨울­극장터> 부분)

“나는 지난 가을에 발견한/ 산마를 캐기 위해/ 무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어요./ 그 아래 들에는 일찍 죽은/ 아버지도 보이고/ 서른일곱에 죽은/ 아우도 보였지요.”(<죽은 자들의 아파트에 눈이 내릴 때> 부분)

시인의 동네에 극장이 많았고 그가 그곳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던 것은 지나가 버린 소년기의 일이었다. 지금 그는 “무덤 아래로” 내려간다. “극장을 나오며 지었을 웃음소리와도 이젠 무연”(<공중 묘지 1>)인 그곳으로.

<공중 묘지>는 제목만이 아니라 전체가 무덤에 바쳐진 시집이다. 그리고 그 무덤은 비유적이거나 상징적인 무덤이 아니라 시인이 3년째 출근하고 있는 용미리 서울시립묘지를 가리킨다. 한국문학사에서 이처럼 집중적으로 무덤을 다룬 선례로는 이문구가 1970년대 초에 쓴 장편소설 <장한몽>이 있었다. 시인은 왜 이토록 무덤에 집착하는 것일까. 단지 그곳이 자신의 일터라서?

“네가 죽음을 들여다보면/ 죽음도 너를 들여다보지.”(<넘버 포> 부분)


죽음을 들여다보면 거꾸로 생의 진상이 뚜렷해진다. 죽음은 생의 귀결이자 시원이며, 생의 다른 이름이 바로 죽음이다. “발밑이 순간순간 끝 모를 곳으로 꺼져 버리는/ 혼란투성이의 생.”(<알박기>)이란 죽음과 다르지 않은 것 아니겠는가. 여기 자신이 이미 죽은 줄도 모르고 살아 있었던 어리석은 자의 초상이 있다.

“그때 나는 세상을 떠난 줄도 모르고 밥을 먹고/ 버스를 기다리고 여자의 입술을 훔친 건/ 아니었을까.”(<공중 묘지 3> 부분)

그래서일 것이다. 뚜껑을 열어 본즉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무덤의 주인을 두고 시인이 이렇게 쓰는 것은.

“그는 어느 물결/ 어느 순간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콱!/ 모든 걸 잊었으리.”(<개장(改葬)> 부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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