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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장자는 노자와 완전 상반’ 전통견해 엎어치기

등록 2007-08-17 19:52수정 2007-08-17 19:56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고전 재해석 시리즈 ‘중국사상’ 첫 번째
‘장자 아나키즘’을 ‘노자 국가주의’와 분리
들뢰즈 눈으로 ‘타자·차이의 철학’ 읽어내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강신주 지음/그린비·1만4900원

그린비 출판사의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의 하나로 중국철학 연구자 강신주씨의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이 나왔다. ‘고전 다시 쓰기’를 실험하고 있는 이 시리즈는 그동안 주로 칸트·마르크스·니체·베르그송 같은 서구 사상가의 저작을 새롭게 해석했다. 중국 고전 사상 재해석 시도로는 이 책이 첫 번째다. 오래된 양피지에 쓰인 텍스트들을 음미해 그 위에 해석자의 견해를 겹쳐 쓰는 것 같은 이 시리즈의 특징을 강신주씨의 글에서도 맛볼 수 있다.

수없이 다양하게 읽히고 변주되는 것이 고전 텍스트들의 운명이듯이, 〈장자〉(사진) 또한 연구자마다 다른 눈으로 보고 다른 말로 푸는 운명을 겪고 있다. 강신주씨의 〈장자〉 읽기는 그중에서도 도발성이 강해 ‘다르게 읽기’의 과격한 사례에 속한다. 이 책에는 비트겐슈타인·레비나스·스피노자·들뢰즈의 이름이 수시로 등장한다. 특히 스피노자 철학의 현대적 재해석인 들뢰즈 철학은 이 책의 논리를 세우는 척추 구실을 한다. 바꿔 말하면, 이 책은 들뢰즈의 눈으로 읽은 〈장자〉라고 할 수 있다.

논의를 펼치기에 앞서 지은이는 흔히 ‘노장사상’이라고 한 묶음으로 제시돼온 〈노자〉와 〈장자〉를 엄격하게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그런 구분은 이 책에서 입론의 토대이자 핵심 구실을 한다. 그동안 〈장자〉는 노자 철학의 확장이거나 보충이라고 이해돼 왔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런 전통적 견해에 단호히 반대한다. 〈장자〉와 〈노자〉는 동일한 사유의 변형이기는커녕 대척 지점에 놓인 상반된 저작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요컨대 〈노자〉가 국가주의를 옹호하는 텍스트라면, 〈장자〉는 국가를 거부하는 아나키즘 텍스트라는 것이다.

장자
장자
지은이의 〈노자〉의 국가주의를 입증하는 사례로 〈노자〉 11장을 인용한다. “학문을 하는 자는 날마다 더하고, 도를 하는 자는 날마다 덜어낸다. 덜고 덜어내어 마침내 무위(無爲)에 이르게 된다. 무위하면 하지 못할 것이 없다. 장차 천하를 취하려고 한다면 항상 무사(無事)로써 해야 한다.” 이 구절에서 드러나는 대로 노자의 ‘무위’는 천하를 획득하려는 자가 쓰는 전략적 기술에 가깝다. 국가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철학자로 노자를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에 장자는 국가를 부정하는 사람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초나라가 장자를 재상으로 모시려 하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나를 더럽히지 말라. 나는 국가를 가진 자의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더러운 도랑 속에서 즐겁게 헤엄치면서 놀겠다.”

그렇다면 장자의 사유는 그의 텍스트 안에서 어떻게 펼쳐지는가. 지은이는 〈장자〉가 서구의 어떤 철학자보다 먼저 ‘차이의 철학’, ‘타자의 철학’을 펼쳤다고 말한다. 〈장자〉의 첫머리 ‘소요유’에 등장하는 ‘대붕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북쪽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물고기의 이름은 ‘곤’이다. 곤의 둘레 치수는 몇 천 리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컸다. 그것이 변해 새가 되는데, 그 새의 이름이 붕이다. 붕이 가슴에 바람을 가득 넣고 날 때, 그의 양 날개는 하늘에 걸린 구름 같았다.”

지은이는 이 대붕 이야기를 일상의 틀을 초월하는 비약으로, 인식론적 도약으로 이해한다. 자기 자신을 가두어두고 있던 시스템을 훌쩍 뛰어넘어 아득한 높이에서 거리를 두고 자기 세계를 조망하려는 의지의 행위가 대붕의 비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낯섦’이 튀어나온다. 친숙했던,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여겼던 자기 세계가 그 아찔한 높이에서 보면 낯선 세계로 느껴진다. 낯섦의 경험은 자기 안에서 차이를, 다름을 보는 일이다.


그러나 좀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를 낯설게 인식하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타자와 만나야 한다. 그 만남의 경험 속에서 타자를 타자로서 인식함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거리를 두고 인식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타자와의 만남 혹은 마주침이다. 지은이는 〈장자〉의 철학이 이 타자와의 마주침에 대한 진지한 사유라고 말한다. 타자와의 만남이 단순히 다름의 외면적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지평의 열림으로 나아가려면, 내가 타자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나를 가둔 시스템의 작동을 중시시키고 타자를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내가 내 안에 갇혀 있어서는 타자와 내적으로 만날 수 없다. 먼저 나의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힘든 훈련과 수양을 요한다. 〈장자〉는 ‘망각’ 또는 ‘비움’이라는 말로 그 수양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이어, 그렇게 비운 마음으로 타자와 연대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이 말하자면 ‘소통’이다. 종교·국가·자본 따위 어떤 초월적 가치에도 휩쓸리거나 포섭되지 않은 채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타자와 더불어 삶을 향유하는 것이 〈장자〉가 보여주는 ‘삶의 철학’이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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