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중문학’ 두 주자 소설집 내
공선옥씨 ‘유랑가족’
중국동포·노래방 도우미·철거민…
특유의 ‘가난한 모성’새로운 변모 ‘민중문학’의 대표주자 두 사람이 나란히 소설집을 내놓았다. 공선옥(42)씨는 연작소설집 <유랑가족>(실천문학사)을, 정도상(45)씨는 단편집 <모란시장 여자>(창비)를 각각 선보인 것이다. <유랑가족>은 다섯 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졌다. 연변에서 온 동포들, 시골 노인들과 아이들, 노래방 도우미 아줌마, 수몰 예정지의 철거민 등 다양한 인물들이 하나의 연작에 묶였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각각인 이 인물들을 한데 묶는 고리는 이들을 취재하는 프리랜서 사진작가 ‘한’이다. 기업체 사보 등에서도 갈수록 어둡고 우울한 사진보다는 밝고 따뜻한 사진만을 요구하는 세태에 ‘한’은 유독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집착한다. 그의 집착은 단지 피사체에 대한 직업적인 차원의 관심을 넘어, 유일한 혈육이었던 할머니를 여읜 초등학교 여자아이를 제 집으로 데려가 키우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근본적이고 ‘과격하게’ 나타난다. ‘한’의 그런 태도는 기실 등장인물들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대변하는 것인데, 가난하고 힘 없는 이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라는 말로 그 태도를 요약할 수 있다. 공선옥씨는 등단 이후 줄기차게 ‘가난한 모성’을 다루어 왔다. 그 모성은 이번 소설집에서 ‘한’의 동선을 좇아 전라도와 경상도의 시골에서부터 남해 섬과 서울 가리봉의 중국 동포 거리 등으로 확산되는 면모를 보인다. 작가 자신의 취재 발품을 짐작하게 하거니와, 그동안 개인사를 소설의 소재로 즐겨 끌어들여 온 작가의 이런 변모는 환영할 만하다. 연작 가운데 가장 따뜻하고 낙관적인 분위기로 전개되던 <남쪽 바다 푸른 나라>의 갑작스러운 반전에서 보듯, 그 모성은 현실의 어둠에 맞서기에는 매우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바로 거기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애써 웅변하는 듯하다. %%990002%%정도상씨 ‘모란시장 여자’
건강원 여주인의 삭막한 내면 부각
다른 한 측면 분단의 아픔 녹여 <모란시장 여자>에는 정도상씨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쓴 단편 여섯이 묶였다. 이 가운데 표제작에 해당하는 <개 잡는 여자>는 발표 당시부터 주목받았던 수작이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건강원의 젊은 여주인을 주인공 삼아, “아침마다 열댓 마리씩 개를 잡아야 하는 인생”의 황폐함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있다. 개 목에 올가미를 걸고 잡아당겨 죽이고, 되살아난 개의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내리치며, 털을 긁어내고 내장을 들어내는 등의 과정이 꼼꼼하게 묘사되면서 그 여자의 사막 같은 내면을 강렬하게 부각시킨다. <개 잡는 여자>를 이루는 다른 한 축은 아내와 사별한 뒤, 북에 두고 온 첫 번째 아내의 젊을적 사진을 하루종일 들여다보고 앉았는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딸의 금고에서 조금씩 빼낸 돈으로 금강산 관광을 신청하는 아버지의 사연은 분단문제에 관한 정도상씨의 관심을 새삼 보여준다. 이런 면모는 소설집 속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흔히 목격된다. 간첩 출신 장기수 아들에게 보내는 구순 노모의 편지 형식을 띤 <부용산>, 역시 장기수 출신 침술사가 나오는 <구름의 서쪽>, 월북했다가 간첩으로 잠깐 다녀간 남편을 평생토록 그리다가 임종을 맞는 어머니를 주인공 삼은 <그토록 긴 세월을> 등이 그러하다. 반면 병역비리와 탈옥수, 카드 빚에 의한 자살 같은 사회적 사건들을 다룬 <오늘도 무사히>와 <달빛의 끝> 같은 작품은 세태의 표면적인 재현에 머물고 만 듯한 아쉬움을 준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중국동포·노래방 도우미·철거민…
특유의 ‘가난한 모성’새로운 변모 ‘민중문학’의 대표주자 두 사람이 나란히 소설집을 내놓았다. 공선옥(42)씨는 연작소설집 <유랑가족>(실천문학사)을, 정도상(45)씨는 단편집 <모란시장 여자>(창비)를 각각 선보인 것이다. <유랑가족>은 다섯 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졌다. 연변에서 온 동포들, 시골 노인들과 아이들, 노래방 도우미 아줌마, 수몰 예정지의 철거민 등 다양한 인물들이 하나의 연작에 묶였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각각인 이 인물들을 한데 묶는 고리는 이들을 취재하는 프리랜서 사진작가 ‘한’이다. 기업체 사보 등에서도 갈수록 어둡고 우울한 사진보다는 밝고 따뜻한 사진만을 요구하는 세태에 ‘한’은 유독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집착한다. 그의 집착은 단지 피사체에 대한 직업적인 차원의 관심을 넘어, 유일한 혈육이었던 할머니를 여읜 초등학교 여자아이를 제 집으로 데려가 키우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근본적이고 ‘과격하게’ 나타난다. ‘한’의 그런 태도는 기실 등장인물들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대변하는 것인데, 가난하고 힘 없는 이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라는 말로 그 태도를 요약할 수 있다. 공선옥씨는 등단 이후 줄기차게 ‘가난한 모성’을 다루어 왔다. 그 모성은 이번 소설집에서 ‘한’의 동선을 좇아 전라도와 경상도의 시골에서부터 남해 섬과 서울 가리봉의 중국 동포 거리 등으로 확산되는 면모를 보인다. 작가 자신의 취재 발품을 짐작하게 하거니와, 그동안 개인사를 소설의 소재로 즐겨 끌어들여 온 작가의 이런 변모는 환영할 만하다. 연작 가운데 가장 따뜻하고 낙관적인 분위기로 전개되던 <남쪽 바다 푸른 나라>의 갑작스러운 반전에서 보듯, 그 모성은 현실의 어둠에 맞서기에는 매우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바로 거기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애써 웅변하는 듯하다. %%990002%%정도상씨 ‘모란시장 여자’
건강원 여주인의 삭막한 내면 부각
다른 한 측면 분단의 아픔 녹여 <모란시장 여자>에는 정도상씨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쓴 단편 여섯이 묶였다. 이 가운데 표제작에 해당하는 <개 잡는 여자>는 발표 당시부터 주목받았던 수작이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건강원의 젊은 여주인을 주인공 삼아, “아침마다 열댓 마리씩 개를 잡아야 하는 인생”의 황폐함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있다. 개 목에 올가미를 걸고 잡아당겨 죽이고, 되살아난 개의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내리치며, 털을 긁어내고 내장을 들어내는 등의 과정이 꼼꼼하게 묘사되면서 그 여자의 사막 같은 내면을 강렬하게 부각시킨다. <개 잡는 여자>를 이루는 다른 한 축은 아내와 사별한 뒤, 북에 두고 온 첫 번째 아내의 젊을적 사진을 하루종일 들여다보고 앉았는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딸의 금고에서 조금씩 빼낸 돈으로 금강산 관광을 신청하는 아버지의 사연은 분단문제에 관한 정도상씨의 관심을 새삼 보여준다. 이런 면모는 소설집 속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흔히 목격된다. 간첩 출신 장기수 아들에게 보내는 구순 노모의 편지 형식을 띤 <부용산>, 역시 장기수 출신 침술사가 나오는 <구름의 서쪽>, 월북했다가 간첩으로 잠깐 다녀간 남편을 평생토록 그리다가 임종을 맞는 어머니를 주인공 삼은 <그토록 긴 세월을> 등이 그러하다. 반면 병역비리와 탈옥수, 카드 빚에 의한 자살 같은 사회적 사건들을 다룬 <오늘도 무사히>와 <달빛의 끝> 같은 작품은 세태의 표면적인 재현에 머물고 만 듯한 아쉬움을 준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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