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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일상까지 사유한 지멜 통째로 담아냈다”

등록 2007-08-24 20:48

‘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 풍경 11가지’
‘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 풍경 11가지’
근대세계 잡다한 현상 에세이로 푼 사회학자
죽은 뒤 60년 뒤에야 재평가 ‘화려한 부활’
기초정보~이론세계 주제별로 정리한 입문서

인터뷰 / ‘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 풍경 11가지’ 낸 김덕영 교수

사회학자 김덕영(49) 독일 카셀대 교수는 게오르크 지멜(1858~1918)에 관한 한 독보적인 연구자다. 지멜이 거의 ‘사회학적 에피소드’ 수준으로 다뤄지는 국내 학계의 상황에 견주어 볼 때 그의 공부의 깊이와 넓이는 두드러진다. 지멜의 고국인 독일 현지에서도 그의 연구 논문은 독창성을 인정받는다고 한다. 연세대 사회학과를 나와 일찍 독일로 유학한 그는 1993년 막스 베버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8년 지멜과 베버를 비교 연구한 논문으로 ‘하빌리타치온’(독일 대학의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그의 하빌리타치온 논문은 독일 유력 출판사 ‘레스케&부드리히’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그의 지적 활동은 활발하다. 단행본 〈짐멜이냐 베버냐〉를 출간했고 지멜 선집 3권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가 이번에는 지멜의 지적 세계 전반을 찬찬히 안내하는 저서 〈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 풍경 11가지〉(도서출판 길 펴냄·3만3000원)을 펴냈다. 200자 원고지 3000장에 육박하는 두툼한 책이다. 독일에 머물고 있는 그를 전자우편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지멜에 관해 이런저런 글을 썼지만 이번에야말로 여한없이 마음껏 써봤다는 기분이 든다”고 출간 소감을 밝혔다.

“한국에서 지멜은 〈돈의 철학〉 지은이로만 유통되고 있을 뿐, 그 이름값에 비해 연구는 턱없이 부족하다. 기초적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지멜에 관한 가장 기본이 되는 정보에서부터 추상 수준이 높은 이론세계까지 통째로 알려주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멜 사상의 밑그림을 가능한 한 넓게 그려보려고 했다. 지멜로 들어가는 데 길잡이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쓴 이유를 그는 그렇게 요약했다.

지멜은 베버와 더불어 현대 사회학의 창시자로 등재돼 있지만, 두 사람의 행로는 판이했다. 베버가 서른에 프라부르크대학 정교수로 취임해 명성을 높였던 것과 달리, 지멜은 죽기 4년 전인 쉰여섯에야 지방 도시의 정교수가 됐다. 그 시대 독일 지식계의 권위주의·반유대주의가 이 유대인 지식인의 발목을 잡았다. 지식계 내부의 질투심도 이 유능한 학자의 발길에 태클을 걸었다. 지멜은 당대의 학문세계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말년의 일기에 지멜은 이렇게 썼다. “나는 내가 지적 상속자 없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 불운한 학자가 재발견된 것은 그가 죽고 두 세대가 지난 1980년대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지식계를 강타하면서, 포스트모던한 방식으로 모더니티(근대성)의 문제를 연구한 사람이 지멜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지멜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멜이 당대에 주목받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관심의 광범위함이었다. 그의 관심사는 너무나 많아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다. 종교·도덕·영혼·개인·사회와 같은 전통적 주제는 말할 것도 없고, 유행·사랑·매춘·가난 같은 작은 주제도 지멜의 연구 목록에 들어 있었다. 심지어 액자·편지·비밀·모험·거짓말 같은 사소한 현상도 그의 철학적 사유의 안테나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도무지 학문적 주제가 될 수 없는 것들을 그는 처음으로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언뜻 사소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작은 것들도 그에게는 인간과 사회와 문화에 접근하는 데 더없이 좋은 소재”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지멜은 일상을 발견한 학자였다. 바로 여기에 “지멜의 지성사적 의미와 위대함”이 있다.

그는 잡다한 현상들을 에세이식 글로써 잡아냈는데, 이 글쓰기 형식도 당대 학계의 거부감을 일으켰다. 그러나 에세이 형식이야말로 그의 연구주제에 상응하는 글쓰기 방식이었다. 전통사회의 단단한 지반이 무너져 파편화한 것이 근대세계의 일상이라면, 그 세계를 포착하는 방식도 거기에 어울려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멜의 사상은 점묘화법으로 대상을 묘사한 인상파 화가의 그림과 같은 모습이 됐다. ‘모더니티의 현상학자’ 지멜은 “모더니티의 무수한 체험을 스케치하고 스냅 사진을 찍어 아주 커다란 그림을 그린 진정한 모더니티의 풍경화가였다.”


 김덕영 교수. 사진 도서출판 길 제공
김덕영 교수. 사진 도서출판 길 제공
김 교수는 이번 저작에서 지멜의 이런 특성을 특성대로 살리면서 동시에 지멜의 사상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방식을 구사했다. 주제별로 나눠 나름의 완결성 있는 그림을 그린 뒤 그것을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모더니티 풍경 11가지’인 것은 그 때문이다. 김 교수는 돈·사회·문화·개인·가치·과학·종교·예술·노동과 같은 주제를 11편의 풍경화로 재배치했다. 그 풍경화들을 그릴 때 김 교수는 지멜의 저술만 물감으로 쓰지 않고 베버나 니체 같은 다른 색깔의 물감도 함께 씀으로써 그림에 다채로움을 더했다.

책의 서문에서 김 교수는 국내 사회학계, 더 넓게는 학계 일반의 연구 풍토에 대한 환멸에 가까운 실망감도 표출했는데, 그 진지함이 주목을 요한다. 비판의 화살이 날아가는 곳은 ‘경박한 우리 학문의 현실’이다. 한편에서는 서구의 ‘유행담론’을 얼른 들여와 써먹고 유행이 지나면 금방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지식 철새’가 난무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식 수입상’을 비판하며 언제까지 ‘지적 노예’로 살 것이냐고 호통 치며 ‘우리 것’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다. 김 교수는 두 경우 다 옳은 길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일시적인 호기심이나 유행으로 남의 이론을 바라보거나 무조건 이를 배척하는 사람은 언제나 남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남을 제대로 알아야 남의 지배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인간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은 진리다.” 그는 우리 학계의 수준상 서구 학문을 배울 수밖에 없다면, 변덕스런 유행에 휘말리지 않고 진득하게 공부해 그들의 영혼을, 다시 말해 근대적 사회과학의 인식틀 전체를 통째로 훔치는 ‘간 큰 도둑’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점은 ‘지적 성실성’이다. 김 교수는 지멜의 주저 〈돈의 철학〉 번역에 힘을 쏟고 있다며, “누군가 지멜 연구의 뒤를 이어준다면 자신은 다른 영역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글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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