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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소수자 심정 솔직담백 ‘커밍 아웃’

등록 2007-09-07 18:46수정 2007-09-07 19:51

<플라이 인 더 시티>
<플라이 인 더 시티>
한미화의 따뜻한 책읽기 /<플라이 인 더 시티> 신윤동욱 지음.생각의나무

〈플라이 인 더 시티〉에는 ‘급진적 다양주의자 신윤동욱의 솔직 담백 칼럼집’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부제를 읽으며 두 번 딸꾹질을 했다. 먼저 ‘급진적 다양주의자’에서 한 번. 신윤동욱씨는 2001년 언론에서는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여호와의 증인들의 실태와 가족사를 보도한 적이 있다. 이후로도 소수자 인권문제에 관한 기사를 여럿 썼으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일 듯하다. 다음은 신윤동욱이라는 이름에서 또 한 번. 일반화는 위험하지만 부모성 함께쓰기 운동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자다. 조한혜정, 이유명호, 오한숙희 등등. 한데 동방신기도 버럭범수도 아닌 30대 중반의 싱글 남자가 넉자 이름을 쓰고 있는 걸 두고 흔한 일이라 할 수는 없다.

신윤동욱씨의 말을 빌리자면 입사할 회사의 정치적 올바름을 시험하기 위해 입사원서에 부모성을 함께 쓰기 시작했다지만 믿거나 말거나다. 양심적 병역거부부터 부모성 함께쓰기까지 이만하면 신윤동욱씨는 차별에 맞서고 불의에 저항하는 휴머니스트의 면모를 두루 갖췄다. 하지만 책 속에서 깊이 공감한 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문제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30대 중반의 현재란 이렇지 않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책은 지은이의 말대로 서른 살 이후 쓴 일기장이자 다수의 의견이 곧 선인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자의 리포트에 가깝다.

갓 스무 살 시절에는 진보당원으로 늙어 죽을 것이라고 믿었던 청년이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회사형 히키고모리(은둔형 외톨이)로 살고 있을 것이라고 누군들 짐작이나 했으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투쟁 ‘운동’을 하던 청년은 이제 시위 현장이 아닌 헬스클럽으로 ‘운동’을 하러 다닌다. 겨우 10여년 만에 우리는 모두 치사한 중산층 아저씨와 아줌마가 되었다. 세월도 무심하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이내믹 코리아는 모든 것이 너무도 빨리 변해버리는 것을. 담배를 나눠 피던 동지들은 모두 비흡연자가 되어 흡연자를 외계인으로 취급하며,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애쓰다 보니 카드 결제금액이 연봉보다 많아진 것을. 신념도 잃고, 그리움도 잊고, 돌아가고 싶은 시절도 없어졌지만, 불현듯 생각나는 떠나간 연인처럼 아저씨에게도 성찰의 순간은 찾아온다. 홍대 앞 클럽에 갔다가 “저, 아저씨 나이가 많으셔서 입장이 어려운데요” 하고 퇴짜 맞는 순간, 단일민족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차별이 이뤄지는가를 실감한다. 우선 계급과 장애를 잣대로 내세운다. 다음은 여성을 차별한다. 그 다음에는 바로 나이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다이내믹 코리아는 그래서 때로 많이 불편하다. 한반도의 애국주의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광화문에서 촛불시위가 벌어진 탄핵 국면을 바라보며 ‘짱나는 세상, 발리가 그립다’라고 말하는 순간, 신윤동욱씨는 마이너리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불멸의 이순신〉보다 〈섹스 앤 더 시티〉가 재미나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바이브레이터〉 같은 일본 영화를 감명 깊다고 말하는 이는 신윤동욱씨만일까. 신윤동욱씨의 글에는 우리 사회의 숨겨진 1%와 그들의 욕망이 담겨 있다. 책을 읽고 나면 커밍아웃하고 싶어진다. 사실은요, 저도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과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 식당〉이 재미나고, 세상에서 축구경기가 가장 지루해요.

한미화 /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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