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주의와 그 이후> 이광래 지음/열린책들·1만8000원
프 탈근대 철학 전도사 이광래 교수
대표급 철학자 주장과 한계 되짚어
“서양 명품”에 들떴던 학계·자신 비판
대표급 철학자 주장과 한계 되짚어
“서양 명품”에 들떴던 학계·자신 비판
<해체주의와 그 이후> 이광래 지음/열린책들·1만8000원
이광래 강원대 철학과 교수는 프랑스 ‘탈근대 철학’을 한국에 소개한 최초의 학자군에 속한다. 1989년 펴낸 <미셸 푸코:광기의 역사에서 성의 역사까지>는 프랑스 탈근대 철학의 한 대표적 지식인을 비교적 충실하게 소개한 책이었다. 이 책을 기점으로 삼아 프랑스 현대 철학은 포스트구조주의(탈구조주의) 또는 해체주의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졌고, 여러 지적 사도들을 불러모았다. 프랑스 철학의 유행은 1980년대 마르크스-레닌주의 유행의 반작용이기도 했다. 역사의 목적지를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진두지휘하는 스크럼의 진군은 많은 이들에게 폭력적·억압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또 1980년대 말 현실사회주의 실험의 파산은 이런 느낌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1990년대 이후 내내 탈근대철학이 호응을 얻은 것은 이런 사정에서 기인하는 바 컸다. 이광래 교수는 이 새로운 흐름에 물꼬를 튼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작 그 자신은 탈근대 철학이 맹위를 떨칠 무렵 이 흐름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 철학운동에 대한 신념이 흔들렸던 것이다.
<해체주의와 그 이후>는 지난 십여 년 동안 그가 거리를 두었던 프랑스 철학에 대한 전반적 진단과 나름의 결론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운동을 이끌었던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장 보드리야르, 줄리아 크리스테바 같은 대표급 철학자들의 핵심 주장을 소개하고 그 주장들의 한계를 짚은 뒤 새로운 철학의 가능성을 검토한다.
익히 알려진 대로 프랑스 탈근대 철학의 현대적 기원은 프리드리히 니체다. 이 책에서도 지은이는 니체 철학이 후대 철학에 끼친 영향을 먼저 살피고 있다. 니체의 영향은 역사를 만들고 진리를 실현해가는 주체에 대한 믿음, 이성에 대한 믿음을 흔들었다는 데 있다. 스탈린주의와 자본주의에 모두 반대하는 1968년의 급진적 학생운동을 전후해 니체의 사상이 재발견됐고 재탄생했다. 지은이의 표현을 따르면, 푸코는 니체라는 휴화산에서 마그마를 분출시킨 사람이었다. 이성중심주의·주체중심주의 같은 근대적 믿을을 해체하는 일에서 푸코는 선구자 노릇을 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언제나 반드시 당연하다’고 간주되는 것, ‘모든 경우에 적합하다’고 간주되는 것을 파괴하는 지식인이고 싶다. 그런 지식인은 현재의 타성이나 강제의 한복판에서 다양한 돌파구를 끝까지 찾는다.”
푸코에 이어 ‘해체’를 자신의 사명으로 삼아 최전선에서 실행한 사람이 데리다다. 데리다는 “철학의 머리를 절단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철학적 관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양 철학의 오래된 토대를 무너뜨리고 구조를 철거하려고 했다. 들뢰즈는 이성적 주체가 아닌 ‘분열증적 주체’가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욕망의 생산적 흐름이 억압적 사회질서를 해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해체철학은 승리한 철학인가? 지은이는 크리스테바가 1990년에 쓴 자전적 철학소설 <사무라이들>을 사례로 들어 해체철학이 노쇠와 쇠퇴 속에서 스스로 주저앉았다고 이야기한다. 크리스테바가 이 소설에서 동시대 철학자들을 등장시켜 ‘해체주의자들의 종언’을 사실상 선언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해체철학 또는 프랑스 탈근대철학의 유행에 대한 지은이의 평가는 신랄하다. “프랑스 철학의 대변인 같았고 전도사와도 같았던” 지은이 자신에 대한 자책감도 ‘과격하게’ 드러낸다. 지난 시절의 프랑스 철학 탐닉이 “서양 명품(푸코)에 우쭐해하고 유행(데리다)에 들떠 있던 그 허심한 객기”, “새롭고 낯선 맛에 반해 그것을 짝사랑하고 그것을 흉내내며 뽐내던 치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가혹한 자기비판과 함께 그는 이런 말도 한다. “철학은 시대에서 나오며, 시대를 반영하는 동시에 시대를 수정한다.” 그렇다면 해체철학에도 나름의 시대적 사명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도 이 점을 긍정하지만, 해체주의가 너무 멀리 나갔다고 보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20세기 프랑스 탈근대 철학을 대표하는 푸코, 크리스테바, 데리다(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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