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가 최선웅씨
남북통일 소설 ‘2015’ 펴낸 통일운동가 최선웅씨
통일운동가 최선웅(65·사진)씨가 소설 〈2015년〉(아침)을 출간했다. 지난해 8월 북한 민족출판사와 평양에서 출판하기로 계약한 기존 4권에 이은 완성판인 이번 책에서 그는 2008년 6월 남북 양쪽의 반통일법률 폐기를 시작으로 2015년 6월 ‘고려민주공화국’ 창건까지의 구체적 통일일정을 제시했다. 저작권에 관한 국제조약인 베른협약에 따라 북한에서 인세를 받고 출판한 첫 사례로 주목받은 당시 계약의 이행을 위해 그는 현재 남쪽 정부와 협의중이다.
“자신이 있다면 어느쪽이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남북정상회담 때 이 책을 꼭 북쪽에 전달해주었으면 좋겠다.” 20여년의 감옥생활을 포함해 50여년간 통일운동 한 길로만 달려온 그는 책에서 “남의 자유와 북의 평등을 창조적으로 조화시킬 제3의 길”을 ‘아리랑주의’라 명명하고, 통일 뒤의 고려민주공화국과 중국, 몽골, 러시아극동지역이 ‘동아시아연방’을 결성한 뒤 2030년께 지구연방을 창설한다는 원대한 꿈을 펼쳤다.
‘반통일법 동시 폐기~고려민주공화국 창건’
보안법 위반 20여년 옥고로 집안 풍비박산
“실현 여부는 민중의 선택…희망이 보인다” “실현 여부야 민중의 선택에 달린 것이지만, 일단 구체적인 통일구상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이젠 통일일정을 제시할 때가 됐다.” 1942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나서 5살 때 부모와 함께 월남한 최씨는 피난지 부산에서 학비가 없어 중학교 2학년 때 퇴학당하고 자갈치 시장에서 리어카를 끌다가 59년 영남상업학교 주간 2년생으로 편입했다. 60년 직선제 학생회장이 됐고 4.19혁명 시위에 가담했다. 최씨는 동아대 법정대학을 1년만에 중퇴하고 통일운동 결사체 사회민주주의통일청년연합 대표 자격으로 일본에 밀항한 뒤 평양으로 가서 통일문화부(지금의 통일전선부) 김중린 부장을 만났다. 7개월을 머문 뒤 다시 일본을 거쳐 68년에 귀국,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1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자신도 희생자가 될 뻔했던 대전교도소 특별사(좌익수 사방)의 잔혹했던 전향공작을 폭로하는 책을 썼다가 86년에 또 붙잡혀 들어가 다시 10여년을 살았다. “3남2녀 중 장남이었는데, 나와 보니 부모님과 누님, 남동생이 세상을 떠났고, 남은 동생들은 연좌제로 너무 고생한 나머지 나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최씨는 넝마주이 움막생활을 하며 항상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극빈에 시달렸다. “감방이 오히려 더 편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죽는 날까지 이 짐을 지고 가는 수밖에 없다. 아플 틈도 없다. 통일을 꼭 내 손으로 이루고 싶다. 그때까진 죽을 수도 없다. 오늘 하루가 마지막 날이라는 각오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최근의 북-미 교섭 “빅딜”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하는 그는 “요즘엔 좀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며 “극물필반(極物必反)이라, 세상사는 때가 차면 반전이 시작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보안법 위반 20여년 옥고로 집안 풍비박산
“실현 여부는 민중의 선택…희망이 보인다” “실현 여부야 민중의 선택에 달린 것이지만, 일단 구체적인 통일구상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이젠 통일일정을 제시할 때가 됐다.” 1942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나서 5살 때 부모와 함께 월남한 최씨는 피난지 부산에서 학비가 없어 중학교 2학년 때 퇴학당하고 자갈치 시장에서 리어카를 끌다가 59년 영남상업학교 주간 2년생으로 편입했다. 60년 직선제 학생회장이 됐고 4.19혁명 시위에 가담했다. 최씨는 동아대 법정대학을 1년만에 중퇴하고 통일운동 결사체 사회민주주의통일청년연합 대표 자격으로 일본에 밀항한 뒤 평양으로 가서 통일문화부(지금의 통일전선부) 김중린 부장을 만났다. 7개월을 머문 뒤 다시 일본을 거쳐 68년에 귀국,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1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자신도 희생자가 될 뻔했던 대전교도소 특별사(좌익수 사방)의 잔혹했던 전향공작을 폭로하는 책을 썼다가 86년에 또 붙잡혀 들어가 다시 10여년을 살았다. “3남2녀 중 장남이었는데, 나와 보니 부모님과 누님, 남동생이 세상을 떠났고, 남은 동생들은 연좌제로 너무 고생한 나머지 나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최씨는 넝마주이 움막생활을 하며 항상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극빈에 시달렸다. “감방이 오히려 더 편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죽는 날까지 이 짐을 지고 가는 수밖에 없다. 아플 틈도 없다. 통일을 꼭 내 손으로 이루고 싶다. 그때까진 죽을 수도 없다. 오늘 하루가 마지막 날이라는 각오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최근의 북-미 교섭 “빅딜”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하는 그는 “요즘엔 좀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며 “극물필반(極物必反)이라, 세상사는 때가 차면 반전이 시작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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