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장정일의 책 속 이슈 /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지음/레디앙·1만2000원
우석훈·박권일이 함께 쓴 〈88만원 세대〉는 10대의 성적 자율권이나 20대의 동거권이라는 ‘섹시’한 주제로 말문을 연다. 우리나라의 젊은이가 비정상적일 만큼 늦게까지 부모의 품에 얹혀 사는 것은, 동거나 독립에 필요한 자금이나 직장을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이고, 새로운 시민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이 없기 때문이다. ‘20대 독립’이 불가능한 사회는 그만큼 “경제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해 꽉 막혀 있고,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장치들을 갖추지 못한” 사회며, 젊은 세대의 독립을 지체시키는 비효율적인 사회는 급격한 출산율 저하와 퇴행적 성인의 등장이라는 부메랑을 맞게 된다.
세계 경제는 1990년대 초를 기점으로 그동안의 자본주의를 이끌어왔던 대량생산·대량소비 시스템에 의한 포디즘이 종언을 고하고, 다품종 소량생산의 포스트포디즘 시대로 진입한다. 이런 변동에 적응하자면 ‘공룡’이 아니라 중소기업·자영업·지방기업이 각개약진해야 했다. 바로 거기서 세계적인 명품이 나오고(즉 경쟁력이 생기고), 다원화가 조성한 사회 안전성이 생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중소기업을 육성했던 박정희나 ‘벤처기업’에 주력했던 김대중의 경제정책과는 달리, ‘선택과 집중’이라는 구조조정을 통해 대기업의 독과점을 부추겼다. 중소기업은 그 자체가 사회적 안전망이랄 수 있으며, 자영업은 자본주의의 비상탈출구다. 하지만 젊은이가 차지해야 할 새로운 일자리를 독과점과 프랜차이징이 치워버리고, 창업시장에 장벽을 설치함으로써 20대는 10%의 번듯한 직장을 꿰차기 위해 과잉경쟁으로 내몰리는 한편, 나머지 90%는 비정규직을 감수하거나 실업자가 되었다. ‘20대 독립’은 요원한 꿈이 된 것이다.
이 책은 현재의 20대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묻지만, 혁명을 요청하거나 ‘짱돌’을 들라고 선동하지는 않는다. 대신 당장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징 업소에 발길을 끊으라고 촉구한다. “만약 20대 인구 1만 정도가 스타벅스에 가기를 거부하고 20대 사장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와 차를 마시겠다는 선언”을 한다면 “100명의 20대가 자신의 카페를 가지고 경제적 삶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무력하고 순진해 보이지만, 반프랜차이징 운동은 4·19세대(60년대)·긴급조치세대(70년대)·광주세대(80년대)와 같은 정치사회적 동질의식 없이 살아온 현재의 파편화된 세대에게 사회적 연대감을 마련해 준다.
용도가 아주 다양한 이 책은 어쩌면 한국의 어두운 미래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승자 독식’이 기정사실화된 현재의 경제정책이 계속된다면, 10% 안에 들 수 있는 선택받은 소수를 제외한 20대들의 대부분은 평생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평균 88만원의 임금으로 살아야 한다.
지은이들은 마치 1세기 전에 유럽에서 벌어졌던 두 번의 전쟁 직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 사회가 파시즘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나타나는 과열된 민족주의 정서와 우경 보수화는 그것의 전조인가?
장정일 소설가
장정일의 책 속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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