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
〈채식주의자 〉 한강 지음 창비·9800원
채식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여성
남편·형부·언니의 시점 차례로 서술
‘몽고반점’등 연작 세 편 묶어 출간 지난 1일은 세계 채식주의자의 날이었다. 한강(37·사진)씨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가 그렇다고 해서 그에 맞추어 출간된 것은 아닐 터이다. 이 책은 채식주의자 영혜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작 세 편으로 이루어졌다. 동물과 식물의 생명체로서의 ‘등급’을 구분하고, 먹기 위한 동물 살해를 죄악시하는 종교적 관점에서부터 동물성 단백질 섭취의 비경제성과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을 근거로 드는 환경경제학적 견해, 그리고 소박한 건강상의 이유에 이르기까지 채식주의의 취지는 다양하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가 채식주의를 택한 것은 어린시절 자신을 문 개를 잔인하게 살해한 아버지의 행동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43쪽) 영혜의 남편 ‘나’의 시점으로 서술된 1부 〈채식주의자〉에서 영혜의 채식주의는 평화주의적 연원을 지닌 것으로 드러난다. 극단적인 채식주의로 나날이 야위어 가며 정신마저 무너지는 아내를 못 견뎌 ‘나’는 영혜와 결별하고, 영혜의 형부 시점으로 진행되는 2부 〈몽고반점〉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비디오아티스트인 형부는 아직 몽고반점이 남아 있는 영혜의 벗은 몸에 매료되어 그 몸에 꽃을 그려 넣고 자신의 몸에도 역시 꽃을 그려서는 두 사람이 교합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나 그의 아내이자 영혜의 언니인 인혜에게 이 사실을 들키면서 그 역시 자매 곁을 떠나게 되고, 3부 〈나무 불꽃〉에서는 훨씬 더 상태가 나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를 돌보는 인혜의 시점이 전면화한다.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180쪽) 3부에 오면 영혜는 육식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나무로 변신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고기는 물론 식물을 재료로 한 음식까지도 마다하고 물과 햇빛만으로 연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독한 환상이고 치명적인 믿음이다. 그렇게 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언니의 경고에 “…왜, 죽으면 안 되는 거야?”(191쪽)라고 대꾸하는 영혜에게서는, 지구 생태계 보호를 명분으로 인간 멸종을 주창하는 생태극단주의의 어떤 분파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모든 채식주의자가 영혜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영혜를 극단적 채식주의자라 한다면 방점은 ‘채식주의자’ 쪽이 아니라 ‘극단적’에 찍혀야 하리라. 그러므로 이 책은, 비록 채식주의자의 날에 즈음해 나왔지만, 채식주의에 관한 소설은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극단적 태도와 그 파멸적 결과를 다룬 소설이라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영혜는 물론 그에게 폭력적으로 육식을 강요했던 아버지와 식구들, 그리고 영혜를 미학과 욕망의 수단으로 삼았을 뿐인 형부 역시 극단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 극단주의자들 사이에 끼인 인혜의 고통이 새삼 부각되는 것은 이 지점에서다. 극단으로 치닫거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무너지지 않고 살아서 견디는 자의 고통을 감당한다는 점에서 인혜는 이 소설의 숨은 주인공이라 할 수도 있다.
“이 진창의 삶을 그녀에게 남겨두고 혼자서 경계 건너편으로 건너간 동생의 정신을, 그 무책임을 용서할 수 없었다”(173쪽)는 구절이 설득력을 지닌 채 다가오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남편·형부·언니의 시점 차례로 서술
‘몽고반점’등 연작 세 편 묶어 출간 지난 1일은 세계 채식주의자의 날이었다. 한강(37·사진)씨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가 그렇다고 해서 그에 맞추어 출간된 것은 아닐 터이다. 이 책은 채식주의자 영혜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작 세 편으로 이루어졌다. 동물과 식물의 생명체로서의 ‘등급’을 구분하고, 먹기 위한 동물 살해를 죄악시하는 종교적 관점에서부터 동물성 단백질 섭취의 비경제성과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을 근거로 드는 환경경제학적 견해, 그리고 소박한 건강상의 이유에 이르기까지 채식주의의 취지는 다양하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가 채식주의를 택한 것은 어린시절 자신을 문 개를 잔인하게 살해한 아버지의 행동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43쪽) 영혜의 남편 ‘나’의 시점으로 서술된 1부 〈채식주의자〉에서 영혜의 채식주의는 평화주의적 연원을 지닌 것으로 드러난다. 극단적인 채식주의로 나날이 야위어 가며 정신마저 무너지는 아내를 못 견뎌 ‘나’는 영혜와 결별하고, 영혜의 형부 시점으로 진행되는 2부 〈몽고반점〉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비디오아티스트인 형부는 아직 몽고반점이 남아 있는 영혜의 벗은 몸에 매료되어 그 몸에 꽃을 그려 넣고 자신의 몸에도 역시 꽃을 그려서는 두 사람이 교합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나 그의 아내이자 영혜의 언니인 인혜에게 이 사실을 들키면서 그 역시 자매 곁을 떠나게 되고, 3부 〈나무 불꽃〉에서는 훨씬 더 상태가 나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를 돌보는 인혜의 시점이 전면화한다.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180쪽) 3부에 오면 영혜는 육식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나무로 변신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고기는 물론 식물을 재료로 한 음식까지도 마다하고 물과 햇빛만으로 연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독한 환상이고 치명적인 믿음이다. 그렇게 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언니의 경고에 “…왜, 죽으면 안 되는 거야?”(191쪽)라고 대꾸하는 영혜에게서는, 지구 생태계 보호를 명분으로 인간 멸종을 주창하는 생태극단주의의 어떤 분파가 떠오르기도 한다.
작가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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