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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일상을 내면으로 퍼올린 ‘문장의 힘 40년’

등록 2007-11-16 21:29수정 2007-11-16 21:40

〈오정희 깊이 읽기〉
〈오정희 깊이 읽기〉
〈오정희 깊이 읽기〉
우찬제 엮음.문학과지성사·2만5000원.

데뷔부터 지금까지 여정 기념문집
평론가들 작품 해설·대담 등 묶어
고교 때 발표한 처녀소설도 수록

“오정희에 사로잡힌 적이 없이 문학을 한다는 것은 가능한가? 한국에서 문학에 대한 치명적인 열정에 붙들린다는 것은 ‘오정희’의 세계에 매혹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정희’라는 이름은 ‘문학’ 그 자체와 동의어이다.”(이광호)

과연 그러하다. 1980년대 이후에 등단한 작가들, 특히 대부분의 여성 작가들에게 오정희씨의 소설은 믿음직한 길라잡이이자 숨 막히는 장벽으로 작용했을 터이다. 그들은 의도했든 안 했든 오정희 소설을 흉내 내는 것으로 습작을 시작했고, 마침내 작가가 되어서는 오정희라는 벽을 넘어서고자 부단히 애쓰다가 숱한 좌절을 맛보아야 했을 것이다.

1947년 11월 9일에 태어나 1968년에 신춘문예를 통과한 오정희씨의 문학 인생 40년을 갈무리한 〈오정희 깊이 읽기〉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왔다. 회갑에 즈음한 지난 15일 저녁에는 서울 홍익대 앞 한 음식점에서 갑년 잔치를 겸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분홍색 고운 한복을 차려 입은 작가 오씨는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문학에 빚지고 있다”며 “문학인으로서의 내 운명에 감사하며 살아왔다”고 발언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축사에서 “‘실존적 소설가로서의 오정희’와 ‘일상의 인간으로서의 오정희’를 절묘하게 양립시켜 온 작가의 균형감각에 경의와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서라벌예대 동급생인 소설가 이경자씨는 “나한테는 큰 재산 같은 친구”라는 말로 깊은 우애와 신뢰를 표했다.


회갑과 등단 40년을 맞은 소설가 오정희씨가 15일 저녁 서울 홍익대 앞에서 열린 〈오정희 깊이 읽기〉 출간 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회갑과 등단 40년을 맞은 소설가 오정희씨가 15일 저녁 서울 홍익대 앞에서 열린 〈오정희 깊이 읽기〉 출간 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정희 깊이 읽기〉에는 그의 첫 소설집 〈불의 강〉에 쓴 김현의 해설 ‘살의의 섬뜩한 아름다움’에서부터 김화영·성민엽·임우기씨 등의 평론과 전상국·이동하·송기원·조은씨 등 동료 문인 및 지인들이 쓴 인물 소묘, 작가의 자술 연보와 자전 에세이, 그리고 평론가 우찬제씨와 나눈 대담 등이 묶였다. 작가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발표한 처녀소설 〈노래기〉도 처음으로 실렸다.

후배 소설가 강영숙씨는 작가의 단편 〈중국인 거리〉의 무대인 인천 차이나타운을 찾아 쓴 글에서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초조(初潮)였다”를 두고 “모든 문학청년들이 바이블의 한 구절처럼 숭배한 즉물감 넘치는 이 불편한 문장”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정작 작가 자신은 후배 문인들의 이런 태도가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대담에서 그는 “제게서 영향을 받았다거나 내 작품을 필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솔직히 좀 당혹스럽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제가 보기에 제 작품은 빈 구멍투성이로 허술하기 짝이 없거든요.” 등단 전후 무렵을 소개한 자술 연보에서도 작가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에 대한 극심한 회의와 불안에 사로잡혔음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주로 여성들을 주인공 삼은 오정희씨의 소설들은 가정과 일상의 울타리를 여간해서는 넘어서지 않는다. 시·공간적으로 한껏 뻗어나가는 일은 좀처럼 없다. 대신 밀도를 높였다. 그러다 보니 작업량이 많지는 못하다. 자기 소설의 그런 특징에 대해 작가는 대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활달한 공간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용기와 상상력의 부족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단조롭게 작은 일상적 공간이라도 제 나름대로는 바닷물을 끌어당기는 달의 인력처럼 강력한 흡인력으로 내면화시키지 않으면 글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내 안과 밖의 공간이 끊임없이 삼투작용을 하면서 한 줄의 문장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문학과지성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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