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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권력이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이유

등록 2007-11-23 17:54수정 2007-11-23 19:22

〈아가멤논의 딸〉
〈아가멤논의 딸〉
〈아가멤논의 딸〉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우종길 옮김/문학동네·9000원

<죽은 군대의 장군>과 <부서진 사월>로 잘 알려진 알바니아 출신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71)가 2003년 프랑스에서 출간한 소설 <아가멤논의 딸>에는 편집자 서문이 붙어 있다. 이 작품이 1985년 알바니아에서 집필되었으며 당국의 눈을 피해 원고를 비밀리에 몇 장씩 국경 밖으로 빼내어 프랑스 파리의 시 금고에 예치되었다가 나중에 출간하게 되었음을 설명하는 글이다.

<아가멤논의 딸>은 그만큼 과거 알바니아 공산 독재정권에 비판적인 작품이다. 이 길지 않은 소설이 그리는 것은 주인공 ‘나’가 노동절 기념대회장에 가서 기념 퍼레이드를 보고 나오는 몇 시간 동안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전체주의적 알바니아 사회의 공포스러우면서 동시에 어처구니없는 치부가 드러난다. 기념대회에 ‘초대’받은 사람들과 그러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차등의식, 초대받은 사람들끼리의 우스꽝스러운 연대의식, 전도 유망한 과학자였으나 스탈린 추도집회 때 웃음을 터뜨렸다는 이유로 가혹한 처벌을 받은 옆집 남자, 그리고 “서른두 가지나 되는 이념상의 오류가 들어 있는 작품”을 무대에 올린 죄로 좌천된 친구 등은 그 치부의 세목들이다.

그러나 제목과도 연결되는 소설의 가장 큰 ‘사건’은 주인공의 여자친구 수잔나의 갑작스러운 변심이다. 수잔나는 아버지가 지도자 동지의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된 것에 맞추어 ‘나’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아버지의 승진에 누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여자친구의 결별 통보를 듣고 ‘나’는 그리스 신화 속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의 희생을 떠올린다. 그리스군 사령관 아가멤논이 강풍을 가라앉히기 위해­사실은 흔들리는 병사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딸을 희생시켰던 것처럼, 알바니아 정권은 수잔나의 ‘희생’을 빌미로 알바니아 사람들의 삶을 메마르게 만들고자 하는 것임을 주인공은 깨닫는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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