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펜 끝에서 문화재가 살아나다
〈김영택의 펜화 기행〉
김영택 지음/지식의숲·1만5000원 수십만번 선 작업 하는 펜화의 대가
그림으로 훼손된 문화재 바로잡기도
조급증 시대 ‘느림의 미학’ 일깨워 디지털 카메라가 눈과 기억을 대신하게 된 세상이다. 필름 카메라의 현상과 인화 과정조차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이 조급증의 시대에 수십만 번의 선을 그어야 완성되는 펜화를 그리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 <김영택의 펜화 기행>의 지은이 김영택씨는 15년째 펜화 작업에 매달려 오고 있다. 전국의 사찰과 정자, 궁궐과 고택 같은 전통문화재가 그의 펜끝에서 오롯이 되살아났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신문과 잡지에 연재도 했던 결과물이 이번 책에 담겼다. 건물의 기와와 기둥과 석축, 나무 줄기와 잎사귀 모양, 그리고 빛의 각도에 따른 명암과 그림자까지 섬세하게 잡아낸 그의 펜화들은 보는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런 결과물을 얻기까지 작가가 들이는 공력은 일반인의 상상을 넘어선다. “하루 온종일 그렸는데도 흰 종이의 십분의일을 채우지 못할 때”도 있고 “수만 장의 벽돌을 한 장 한 장 그려야 할 때면 펜을 들기도 전에 한숨부터 나오는 게 사실”이다. 하루 열여덟 시간씩 꼬박 닷새를 앉아 있어야 그림 한 장을 얻곤 한다. 그래도 “새벽 두세 시, 잡념이 끊긴 마음 끝에 종이를 스치는 철필의 소리는 마치 불경을 사경하는 소리처럼” 경건하다. 물소리, 바람소리가 배어나올 듯 생생한 봉암사 일주문 그림을 두고 “부처님 가피를 받아서 나온 작품”이라고 스님들이 품평한 것은 그린이의 지극한 마음이 보는이의 마음에 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의 대상으로 문화재만을 오로지하는 작가의 고집은 우리 문화재에 대한 다함없는 애정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은 다시 문화재를 보는 상당한 안목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봉화 청암정의 복원한 팔작지붕이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할 때, 최근 일반에 개방된 북악산 숙정문 성벽에 고증과 어긋나는 가로 총안(銃眼)이 들어선 것을 개탄하며 그림에서나마 바로잡을 때, 문화재를 대하는 그의 애정과 안목은 절로 드러난다. 통도사 대광명전을 가리고 선 목련 두 그루를 그림에서 빼 버리거나 충북 영동 강선대의 일본식 석축과 쇠 난간을 우리식 석축과 목조 난간으로 고쳐 그린 것, 그리고 관람객들의 발길에 닳아서 흐릿해진 경복궁 근정문 계단 답도의 봉황 문양을 선명하게 ‘복원’한 것 역시 못 말릴 애정의 소산일 게다. 그림의 주인공 격인 건축문화재는 물론 주변의 풀 한 포기와 돌 한 조각도 놓치지 않고 살뜰히 챙겨 넣은 그림들은 작가의 문화재 사랑이 이 땅과 자연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 것임을 알게 해 준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지식의숲 제공
김영택 지음/지식의숲·1만5000원 수십만번 선 작업 하는 펜화의 대가
그림으로 훼손된 문화재 바로잡기도
조급증 시대 ‘느림의 미학’ 일깨워 디지털 카메라가 눈과 기억을 대신하게 된 세상이다. 필름 카메라의 현상과 인화 과정조차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이 조급증의 시대에 수십만 번의 선을 그어야 완성되는 펜화를 그리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 <김영택의 펜화 기행>의 지은이 김영택씨는 15년째 펜화 작업에 매달려 오고 있다. 전국의 사찰과 정자, 궁궐과 고택 같은 전통문화재가 그의 펜끝에서 오롯이 되살아났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신문과 잡지에 연재도 했던 결과물이 이번 책에 담겼다. 건물의 기와와 기둥과 석축, 나무 줄기와 잎사귀 모양, 그리고 빛의 각도에 따른 명암과 그림자까지 섬세하게 잡아낸 그의 펜화들은 보는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런 결과물을 얻기까지 작가가 들이는 공력은 일반인의 상상을 넘어선다. “하루 온종일 그렸는데도 흰 종이의 십분의일을 채우지 못할 때”도 있고 “수만 장의 벽돌을 한 장 한 장 그려야 할 때면 펜을 들기도 전에 한숨부터 나오는 게 사실”이다. 하루 열여덟 시간씩 꼬박 닷새를 앉아 있어야 그림 한 장을 얻곤 한다. 그래도 “새벽 두세 시, 잡념이 끊긴 마음 끝에 종이를 스치는 철필의 소리는 마치 불경을 사경하는 소리처럼” 경건하다. 물소리, 바람소리가 배어나올 듯 생생한 봉암사 일주문 그림을 두고 “부처님 가피를 받아서 나온 작품”이라고 스님들이 품평한 것은 그린이의 지극한 마음이 보는이의 마음에 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택의 펜화 기행〉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지식의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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