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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비바람치는 세상 서로 ‘등불’이 되어

등록 2005-04-15 18:08수정 2005-04-15 18:08

공지영 장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 세상에 비바람 치는 곳이 있으니, 소설가는 그리로 가라!’

벌써 10년도 지난 세월의 저쪽, 술에 취해 걷던 새벽의 인사동 골목에서 선배 평론가의 일갈이 젊은 소설가의 심장을 가격했다. 그로부터 10년 남짓, 앙금이 가라앉고, 발효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한 권의 소설이 빚어져 나왔다. 공지영(42)씨의 전작장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 얘기다.

“너무도 강력한 말씀이어서 내내 가슴에 새기고 있었어요. 처음으로 그 말씀에 대해 답을 한 게 이번 소설이 아닌가 싶어요. 앞으로도 비바람 치는 곳으로 가려 합니다.”

그렇다 해도 이번 소설은 ‘너무’ 나아간 게 아닐까. 소설은 사형수 얘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세 여자를 살해하고 그 중 한 사람은 강간까지 했다는 ‘흉악범’ 정윤수가 그 인물이다. 소설은 정윤수와는 대조적으로 유복하고 화려한 배경을 지닌 여자 문유정과 윤수의 1년여 에 걸친 만남을 축으로 진행된다. 유정이 그냥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었다면 두 사람의 만남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정은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세 번씩이나 제 목숨을 끊으려 했던 문제적 인물이다. 그는 30년째 사형수 교화에 매달려 온 고모 모니카 수녀의 권유로 구치소를 찾은 것.

“생각해보세요. 돈 많은 사람들이 왜 여기 들어오겠어요?”(75쪽)


20대 사형수와 한 여자 1년여 걸친 만남 통해 서로의 ‘상처’ 다독여
사형제도 논란 풀어놓고 페미니즘 꼬리표도 떼내

유정과 윤수의 만남에 입회한 교도관은 범죄와 가난의 함수관계를 이런 질문으로 요약한다. 유정 쪽에서 보자면 윤수와의 만남은 일종의 ‘가난의 발견’에 해당한다. 4천 명의 수감자 가운데 반 년 동안 영치금 한 푼 없는 이가 500명이고, 반 년에 천 원 미만인 이가 다시 500명이라는 교도관의 설명, 그리고 스물일곱 살 꽃다운 청년 윤수가 사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짧은 삶을 정리한 ‘블루노트’에서 그 가난은 유정의 치를 떨리게 하고 굳게 잠겼던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든다.

가난이 곧 범죄로 이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가난보다 치명적인 것은 사랑의 결핍, 또는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여건이다. 소설 속에서 사랑은 ‘어머니’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싫어서 어린 형제를 버려두고 집을 나간 윤수의 어머니, 사춘기 때 유정이 당한 성폭행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무라고 은폐하는 데 급급한 속물적인 유정의 어머니는 ‘부재’하다는 점에서 공통되다. 처지가 다른 두 사람이 첫 만남에서부터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유정이 처음의 거부감을 걷어내고 윤수를 이해하게 되며 사형제도 자체를 반성하는 데에까지 나아가는 과정에는 이런 공통성과 동질감이 바탕에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어울리지 않는 ‘커플’ 사이의 주고받음은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다. 유정 역시 윤수가 놓인 극단적인 상황, 그리고 옹색한 형편 속에서나마 한줄기 빛을 갈구하는 윤수의 몸부림에서 한없는 위안과 격려를 얻는다. ‘블루노트’를 뜯어 보면 윤수가 저질러 온 범죄의 목록이란 곧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몸부림의 기록임을 알게 된다. 윤수의 사형 집행을 막기 위해서라면 제 어미도 용서하겠다는 유정의 결심은 상처와 복수가 희생과 용서로 몸 바꾸는 ‘기적’을 보여준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공지영씨는 자신에게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페미니즘 또는 후일담이라는 꼬리표를 확실히 떼어 버렸다. 이 소설은 공씨의 전작인 장편 <봉순이 언니>나 단편 <부활 무렵>에 이어지는 ‘계급적 하방’ 계열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의 두 작품이 작가 주변 인물들에서 소재를 취했다면, 이번 소설은 미지의 영역을 치열하게 파고든 취재의 힘에 의존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를 지닌다. 범죄 발생의 사회적 맥락에 대한 탐구, 그리고 작죄와 구원에 관한 철학적·종교적 사유가 결합되어 소설은 묵직한 울림을 울린다. 그러나 동시에 작가 특유의 감성적인 필치는, 특히 작품 말미에서, 독자의 눈물샘을 사뭇 자극한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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