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언어학 강의노트 출간…‘발화’
사후 발견 일반언어학 강의노트 출간…‘발화’ 사유 눈길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이자 기호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의 육필 원고를 모은 책이 나왔다. <일반언어학 노트>(김현권·최용호 옮김, 인간사랑). 소쉬르가 직접 쓴 원고가 국내 출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소쉬르 하면 떠오르는 책은 <일반언어학 강의>다. 하지만 이 책은 소쉬르 사후 3년이 지난 1916년 소쉬르 제자이자 대학 동료인 발리와 세쉬예가 소쉬르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노트를 토대로 저술했다. 소쉬르는 말년 제네바 대학에서 일반언어학 강의를 했을 때, 강의 내용을 직접 출판하지 못하는 이유를 밝힌 바 있다. 많은 강의 자료들을 잃어버렸다고 그는 토로했다. 이 분실 자료가 뒤늦게 빛을 본 게 지난 1996년이다. 제네바의 소쉬르 가문 저택의 개축 공사를 하면서 인부들이 두툼한 종이뭉치를 발견한 것이다. 이 자료에는 ‘언어의 이중적 본질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이 자료를 포함해 소쉬르의 육필 원고는 2002년 프랑스에서 한 권의 책으로 나왔고 이 책이 6년만에 우리말로 완역된 것이다. 소쉬르의 노트를 모았기 때문에 체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언어에는 차이만이 존재한다”는 그의 일반언어학 강의의 핵심 사유를 뒷받침하는 성찰이 분절된 메모의 형태로 이어진다. 역자들은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로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등장하지 않고 생략된 ‘발화(parole)’와 ‘의미론’의 영역에 대한 소쉬르의 사유를 단편적으로나마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역자인 최용호 한국외대 불어과 교수는 “소쉬르는 언어의 구조에만 천착하지 언어의 사용이라는 발화의 맥락은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육필 원고에는 발화의 영역인 담화(discourse)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꽤 나온다”고 밝혔다. 그는 또 “소쉬르는 육필 원고에서 시간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다”면서 ”이는 언어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것으로 소쉬르의 사고는 비역사적이라는 기존 평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소쉬르가 밝힌 ‘가치’ 개념이 18세기 ‘동의어주의자’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가설이 확인된 것도 성과로 꼽혔다. 소쉬르 이전의 가치 개념은 “A의 가치는 A의 속성을 통해 정의된다”였으나, 소쉬르는 “A의 가치는 ‘A가 아닌 것’의 가치를 통해 정의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소쉬르 연구자들은 이런 가치 개념이 뉘앙스의 차이 때문에 어떤 동의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18세기 ‘동의어주의자’들의 사유에 터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해왔다. 이런 가설이 이 책을 통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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