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박물관〉
〈가족박물관〉
이사라 지음/문학동네·7500원 ‘박물관은 역사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다. 이문재 시인이 〈농업박물관〉 연작을 통해 강조했던 것도 농업이 한갓 박물관의 전시품으로 전락해 버린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이사라 시인의 시집 〈가족박물관〉에도 표제작을 비롯해 여러 박물관이 등장한다. 그 박물관들은 무겁고(〈겨울, 박물관〉), 조화처럼 생기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가족박물관〉). “끝내 살아야 하는 주검”(〈박물관에서 2-블라디보스토크〉)이 영원한 삶-죽음을 사는 박물관에서 시간은 화석으로 존재할 뿐 현재는 그곳에 없다. “다만 저장된 시간들이 넘쳐서/ 현재를 향해 역류하는데/ 박물관에서는 현재가 살지 못한다”(〈그날, 박물관에서〉 부분) 박물관은 언젠가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의 종착지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지레 움츠리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사람의 냄새로 당신이 다가간다면” “돋보기 쓴 사람 하나가/ 신의 이름을 빌려/ 시간을 늘리고 줄이고 꿰매고 있는 걸 알게 될 것”(〈함승현 옷 수선집〉)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시간을 신축성 있게 어루만지는 수선집 주인의 노동은 시간을 화석으로 굳혀 놓은 박물관의 딱딱한 전시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역시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숟가락 여인〉과 〈퀼트 여인〉에서도 화석화하는 시간과 전투를 벌이는가 하면 상처와 균열을 봉합하는 여성 노동의 위대함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숟가락으로 식구를 퍼나르는 여인/ 숟가락으로 우주를 퍼나르는 여인/ 시간과 교전을 하며/ 달력에 숟가락을 심는 여인”(〈숟가락 여인〉 부분) “그녀는 조각조각난 가슴을 한 땀 한 땀 이어/ 몸에 다시 집어넣는다/ 꿰매는 일은 용서야/ 조용히 집어넣는다”(〈퀼트 여인〉 부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이사라 지음/문학동네·7500원 ‘박물관은 역사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다. 이문재 시인이 〈농업박물관〉 연작을 통해 강조했던 것도 농업이 한갓 박물관의 전시품으로 전락해 버린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이사라 시인의 시집 〈가족박물관〉에도 표제작을 비롯해 여러 박물관이 등장한다. 그 박물관들은 무겁고(〈겨울, 박물관〉), 조화처럼 생기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가족박물관〉). “끝내 살아야 하는 주검”(〈박물관에서 2-블라디보스토크〉)이 영원한 삶-죽음을 사는 박물관에서 시간은 화석으로 존재할 뿐 현재는 그곳에 없다. “다만 저장된 시간들이 넘쳐서/ 현재를 향해 역류하는데/ 박물관에서는 현재가 살지 못한다”(〈그날, 박물관에서〉 부분) 박물관은 언젠가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의 종착지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지레 움츠리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사람의 냄새로 당신이 다가간다면” “돋보기 쓴 사람 하나가/ 신의 이름을 빌려/ 시간을 늘리고 줄이고 꿰매고 있는 걸 알게 될 것”(〈함승현 옷 수선집〉)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시간을 신축성 있게 어루만지는 수선집 주인의 노동은 시간을 화석으로 굳혀 놓은 박물관의 딱딱한 전시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역시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숟가락 여인〉과 〈퀼트 여인〉에서도 화석화하는 시간과 전투를 벌이는가 하면 상처와 균열을 봉합하는 여성 노동의 위대함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숟가락으로 식구를 퍼나르는 여인/ 숟가락으로 우주를 퍼나르는 여인/ 시간과 교전을 하며/ 달력에 숟가락을 심는 여인”(〈숟가락 여인〉 부분) “그녀는 조각조각난 가슴을 한 땀 한 땀 이어/ 몸에 다시 집어넣는다/ 꿰매는 일은 용서야/ 조용히 집어넣는다”(〈퀼트 여인〉 부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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