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출판전망대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
단행본 출판사 가운데 선두를 달리는 한 출판사가 2007년에 지출한 마케팅 비용의 90%가 교보문고ㆍ예스24ㆍ인터파크ㆍ알라딘 등 대형 온라인서점 네 곳에 집중됐다고 한다. 광고ㆍ홍보 등 마케팅 툴의 효과가 격감하자 출판사들은 판매가 기대되는 신간을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시키는 데 주력했고 그 결과 대형 온라인서점으로 비용이 몰린 것이다. 오늘날 온라인서점 초기화면은 미디어 기능까지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한 온라인서점의 초기화면에 책을 노출하는 데에만 1500만원 가량을 투입하는 출판사도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인문사회과학서는 고사상태로 빠져드는 반면 자기계발서는 넘쳐난다.
물론 이런 노력의 효과를 높이려고 책을 만든 편집자는 블로그 마케팅, 서평단 운영 등 입소문을 낼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만 한다. ‘사재기’는 가장 직접적인 효과를 낼 수 있기에 늘 문제가 되곤 한다. 이제 편집자는 책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토털 마케팅을 수행해야 하는 처지다. 그 결과 책 만드는 일은 대부분 아웃소싱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책의 질이 전반적으로 저하되고 있다는 비판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최대 피해자는 물론 독자다.
일부 대형 온라인서점의 과점 현상은 광고뿐이 아니다. 매출의 집중화도 극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4대 온라인서점의 매출은 교보문고(오프라인 포함) 3700억원, 예스24 2300억원, 인터파크 1960억원, 알라딘 1400억원 등 모두 9360억원으로 2006년 7097억원에 비해 무려 31.9%나 늘어났다. 여기에 매출 5위인 리브로까지 합하면 1조원에 가깝다.
보통 전체 단행본 출판시장 규모를 2조5000억원으로 본다. 따라서 다섯 서점의 매출을 합하면 전체의 40%에 육박한다. 대학교재 등의 온라인서점 매출이 약세임을 계산하면 단행본 출판사 매출의 절반 이상은 이 서점들에서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출판사 담당자들은 실제 체감 매출비중은 80% 가까이 되므로 온라인서점에 외면당한다는 것은 거의 공포 수준이라고 말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올해 초 출판사 수는 3만개를 넘어섰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2만9977개사가 집계됐는데 지난해에만 신생출판사는 2874개사나 새로 생겼다. 물론 이 중에서 1년 동안 한 권이라도 신간을 펴내는 출판사는 10%도 되지 않는다. 지난해에 한 권 이상 신간을 펴낸 출판사가 2771개사(9.2%)에 불과하니 말이다. 11권 이상 신간을 펴낸 출판사는 894개사에 불과하다.
이런 악순환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려면 매출이 몇 서점으로 과점되는 것부터 막아야 한다. 죽어가는 오프라인서점, 특히 다양한 전문서점의 재등장을 촉발하는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 그 시발점이 모든 서점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완전도서정가제라는 원칙임은 새삼스럽지도 않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온라인서점은 올해 1월20일 발효된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 규정한 최소한의 원칙마저 무시하고 다시 과잉경쟁을 시작할 태세다. 이렇게 스스로 법을 어기다가 중견 출판사들까지 도산해 책의 다양성이 죽어버린다면 온라인서점의 앞날도 결코 장담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정해진 원칙이라도 제발 지켜주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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