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움의 과학-미인 불패, 새로운 권력의 발견〉
정재승의 책으로 만난 과학 /
〈아름다움의 과학-미인 불패, 새로운 권력의 발견〉
울리히 렌츠 지음·박승재 옮김/프로네시스·1만5000원 홍콩의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아름다운 요리’(Beautiful Cooking)란 것이 있다. ‘대결 맛 대 맛’ 같은 우리나라 요리 프로그램에선 연예인들이 요리 달인들의 작품을 시식하는 데 그치지만, 이 프로그램에선 예쁜 여자 연예인들이 근사한 유람선 위에서 직접 요리 대결을 펼친다. 그들이 만든 요리의 맛을 평가하는 판정단은 인기 남성 연예인들. 여자 연예인들이 평소에 요리를 해 보긴 했을까? 이 프로그램의 재미는 여자 연예인들의 서투르기 짝이 없는 요리 솜씨와 이를 놀리는 남자 연예인 판정단들의 가학성에 있다. 간혹 생각보다 맛이 근사할라치면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웃음을 발산하는 그들의 아름다움을 온 나라가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요리를 잘 못하면 어떠랴. 예쁜 얼굴과 짧은 핫팬츠로 무장한 그들의 맛없는 요리는 프로그램이 끝나는 순간 홍콩 남자들로부터 용서받는다. 만약 뚱뚱하고 못생긴 여성이 이 프로그램에 나와, 요리마저 못한다면 그들은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 아마도 이 프로그램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조기 종영됐을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아름다운 사람은 자리도 쉽게 양보받고, 이성에게 손쉽게 배려를 이끌며, 어느 집단에서든 주목받는 존재가 된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외모만으로 상대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지만, 아름다운 외모가 만남의 초기에, 혹은 느슨한 인간관계에서 각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거부하기 어렵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 울리히 렌츠가 쓴 <아름다움의 과학>에는 ‘미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선호’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그리고 깊게 자리잡고 있는지 조목조목 지적한다. 얼굴이 예쁘면, 태어나자마자 엄마에게 키스 세례도 더 많이 받고, 학교에선 선생님께 덜 혼나며 숙제 점수도 더 높게 받는다. 텍사스 법원이 지난 수년 동안 판결했던 사건 2235건을 조사해 보니, 죄를 지어도 예쁜 여성은 형량이 반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단적인 예다. 험상궂은 남자가 사기나 성범죄를 지으면 형량은 훨씬 늘어난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사회적 프리미엄’이 된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렌츠의 책을 꼼꼼히 읽어야 하는 것은 이제 우리도 아름다움의 사회적 권력에 대해 정직하게 논의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외모의 아름다움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비현실적인 주장을 교과서처럼 반복하거나,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며 세상을 탓하는 태도 모두 볼썽사납다.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가 좀더 솔직해진다면, 최소한 ‘아름다운 외모가 그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높여줄 수는 있어도 인간적 가치마저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라는 정도에는 합의할 수 있지 않을까? 꽃미남 꽃미녀들이 우리보다 10배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은 이해한다고 쳐도, 우리가 그들보다 감옥에 더 오래 들어가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울리히 렌츠 지음·박승재 옮김/프로네시스·1만5000원 홍콩의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아름다운 요리’(Beautiful Cooking)란 것이 있다. ‘대결 맛 대 맛’ 같은 우리나라 요리 프로그램에선 연예인들이 요리 달인들의 작품을 시식하는 데 그치지만, 이 프로그램에선 예쁜 여자 연예인들이 근사한 유람선 위에서 직접 요리 대결을 펼친다. 그들이 만든 요리의 맛을 평가하는 판정단은 인기 남성 연예인들. 여자 연예인들이 평소에 요리를 해 보긴 했을까? 이 프로그램의 재미는 여자 연예인들의 서투르기 짝이 없는 요리 솜씨와 이를 놀리는 남자 연예인 판정단들의 가학성에 있다. 간혹 생각보다 맛이 근사할라치면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웃음을 발산하는 그들의 아름다움을 온 나라가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요리를 잘 못하면 어떠랴. 예쁜 얼굴과 짧은 핫팬츠로 무장한 그들의 맛없는 요리는 프로그램이 끝나는 순간 홍콩 남자들로부터 용서받는다. 만약 뚱뚱하고 못생긴 여성이 이 프로그램에 나와, 요리마저 못한다면 그들은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 아마도 이 프로그램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조기 종영됐을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아름다운 사람은 자리도 쉽게 양보받고, 이성에게 손쉽게 배려를 이끌며, 어느 집단에서든 주목받는 존재가 된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외모만으로 상대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지만, 아름다운 외모가 만남의 초기에, 혹은 느슨한 인간관계에서 각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거부하기 어렵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 울리히 렌츠가 쓴 <아름다움의 과학>에는 ‘미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선호’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그리고 깊게 자리잡고 있는지 조목조목 지적한다. 얼굴이 예쁘면, 태어나자마자 엄마에게 키스 세례도 더 많이 받고, 학교에선 선생님께 덜 혼나며 숙제 점수도 더 높게 받는다. 텍사스 법원이 지난 수년 동안 판결했던 사건 2235건을 조사해 보니, 죄를 지어도 예쁜 여성은 형량이 반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단적인 예다. 험상궂은 남자가 사기나 성범죄를 지으면 형량은 훨씬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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