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우연의 작용인지, ‘창녀’를 제목으로 내세운 번역소설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되었다.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77)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송병선 옮김, 민음사 펴냄)과 캐나다의 불어권 작가 넬리 아르캉(30)의 처녀작 <창녀>(성귀수 옮김, 문학동네 펴냄)가 그것이다. 아르캉의 작품이 2001년작인 데 비해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것은 지난해에 나왔기 때문에 두 작품의 ‘동시 출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두 소설은, 우연찮게 한국 출판시장에서 ‘파트너’가 된 상대방의 존재에 굳이 의존하지 않더라도, 각자가 충분히 문제적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은 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전작인 <사랑과 다른 악마들>에 이어 무려 10년 만에 선보인 신작인데다, 90살 노인과 열네 살 소녀의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선 눈길을 끈다. 아르캉의 경우에는 이 도발적인 작가가 실제로 5년 동안 매춘에 종사한 체험의 소유자라는 점, 그리고 발표 직후 언론의 찬사와 대중의 뜨거운 호응을 함께 받은 화제작이라는 점이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두 소설은 똑같이 창녀를 소재로 삼지만, 소재를 다루는 시선은 반대 극에 놓여 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돈을 주고 창녀를 사는 ‘고객’의 처지에서 여자를 그리며, 아르캉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몸을 파는 여자의 눈으로 사태를 바라본다. 가르시아 마르케스 역시 젊은 시절부터 사창가를 즐겨 드나들었다는 점에서는 두 작품이 공히 자전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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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녀’를 소재로 삼은 번역소설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되었다. 사진은 노르웨이의 거리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매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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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구순의 나이에도 몸과 마음이 두루 건강하여 신문에 칼럼을 정기적으로 기고하는가 하면,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수시로 여자를 사서 욕망을 해결하는 노인을 등장시킨다. “아흔 살이 되는 날, 나는 풋풋한 처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사랑의 밤을 나 자신에게 선사하고 싶었다”는 첫 문장은 소설의 방향을 명백히 보여준다. 단골 포주를 통해 적임자를 소개받은 주인공은 소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지만, 소녀는 낮 동안의 노동(공장에서 200개의 단추를 달아야 하는)에 지쳐 곯아 떨어져 있다. 노인은 발가벗은 채 잠든 소녀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돌아오고 만다. 소설은 비슷한 상황이 거듭되면서 노인의 욕정이 그야말로 순수한 사랑의 감정으로 바뀌는 과정을 그려 나간다. 쉰 살이 되기 전에 이미 500명이 넘는 여자와 잠자리를 했다는 이 정력가가 “섹스란 사랑을 얻지 못할 때 가지는 위안에 불과하다”고 말하게 될 정도로 아흔 살의 첫사랑은 근본적이다.
아르캉의 <창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주인공은 “세상에 가장 오래 된 직업, 가장 유서 깊은 사회적 기능에 대한 존중의 예”를 담아 ‘섹스 노동자’라 부르는 일에 자발적으로 종사하는 20살 젊은 여성이다. 그는 자신이 창녀로 운명지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좋아하거나 즐기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그의 ‘섹스 노동’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세상 전부를 향한 거부와 반항의 표시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전체가 자유연상들로 축조되어 있으며, 그로부터 어떤 스토리의 진전도 없는 되새김질이 비롯”된다는 구절처럼 소설은 주인공 여자의 분노와 조롱을 실어 나르는 장광설로 일관한다. “단 한 명의 남자와만 매춘을 한 셈”인 어머니에 대한 경멸, “나를 향해 발기하는 모든 아버지들”에게서 보이는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이 소설을 시종 격한 어조로 이끈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시그마(SYG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