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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랑의 전환없이 국경을 넘어갈 권리

등록 2008-05-30 19:59

사랑의 전환없이 국경을 넘어갈 권리
사랑의 전환없이 국경을 넘어갈 권리
낯선 여행지서 길어올린 사유
현실보다 완고한 ‘내면의 국경’
민족과 국가라는 틀 넘기 강조
〈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창비·1만2000원

여행이란 무엇인가. 낯선 대상과 만나는 일이다. 처음 보는 풍경을 접하고 색다른 얼굴에 생경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 섞이는 것이다. 낯선 것은 새로운 동시에 불편하고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설렘과 긴장 속에서 여행자는 존재의 부피가 한층 빵빵해짐을 느낀다.

그렇게 여행은 또한 여행하는 사람 자체를 바꾼다. 여행은 객관 세계와 주체가 함께 변화하는 체험이다. 여행지에서 나그네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 권위와 체면을 훌훌 털어 버리고 여권 한 장뿐인 알몸의 존재로 새롭게 태어난다. 그것은 홀가분하면서도 조금은 부담스러운 상황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연수(38)씨의 산문집 <여행할 권리>는 우리에게 바로 그런 여행을 권유한다. 1999년 일본 도쿄에서 2007년 미국 버클리까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여행하면서 건져 올린 생각들이 담겼다.

“오래 전부터 나는 국경을 꿈꿨다.”


〈여행할 권리〉
〈여행할 권리〉
책의 첫 문장을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작가가 꿈꾼 국경은 가로막는 장벽으로서의 국경이 아니라 넘나드는 통로로서의 국경이니까.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국경의 체험을 보장하지 않는다. 동·서·남방으로는 바다가 놓여 있고, 북으로는 휴전선이 가로막는 탓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살다 해방 뒤 조국으로 돌아왔으나 갈수록 일본에 대한 ‘향수’에 시달리는 아버지, 그리고 이념의 조국을 찾아 월북한 작은아버지의 존재는 국경 넘기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웅변한다.

“그런 점에서 내게는 국경이 필요했다. 국경에 가서 아무런 사랑의 전환 없이도, 혹은 어떤 권리도 포기하지 않은 채, 내 다리로 월경(越境)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비겁자가 아닌 몸으로도 얼마든지 국경을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14쪽)


깐두부만 먹는 훈춘 사람 이춘대씨, 아버지의 중학 동창 도야마, 루마니아 작가 세자르, 연변대생 조선족 김려화, 아이돌 그룹 신화의 멤버 민우를 숭배하는 버클리대생 애나, 재일동포 작가 겐게쓰(현월), 한국 입양아 출신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트롯지 …. <여행할 권리>에서 작가가 국경을 넘어가 만난 이들이다.

지금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지갑이 허락하는 한, 비행기와 배와 차량으로 얼마든지 국경을 넘을 수 있다. 그러면 된 것일까? 이제 우리는 국경으로 대표되는 제약과 억압에서 자유로운 것일까? 작가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현실의 국경보다 더 완고하고 강력한 국경이 우리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 또는 국가가 그 국경의 이름이다. 작가는 책 전편에서 바로 그 국경을 넘어서자고 역설한다.

“한 인간을 민족의 이름으로 부르는 건 무자비하다.”(214쪽) 더구나 “문학이 국경수비대의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고”(222쪽) 그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문학이란 가장 멀리까지 가 본 자들만이 하는 행위”(275쪽)이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 신과 인간과 짐승의 경계를 문학은 가볍게 넘곤 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땅 위의 경계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니, 한국문학은 민족과 국가와 언어의 경계 안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다른 누구보다 먼저 작가인 자기 자신에게 강조한다.

“신화 바깥이 없고, 동방신기 바깥이 없다면, 한국문학 바깥도 없다는 소리일 테니까. 정말 한국문학 바깥이 없다면, 네가 써야만 할 건 한국문학이 아니라 문학인 거야 ….”(135쪽)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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