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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야만에 저항하라, 읽고 쓰고 사유하며

등록 2008-06-13 20:24

〈저항의 인문학:인문주의와 민주적 비판〉
〈저항의 인문학:인문주의와 민주적 비판〉
인문주의 폭력·착취 도구화 맞서
지식인 현실이해와 참여 강조
언어로 비판하고 예술로 싸워라
〈저항의 인문학:인문주의와 민주적 비판〉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김정하 옮김/마티·1만5000원

“인간에 관한 어떤 문제도 남의 일이 아니다.” 로마의 희곡작가 테렌티우스가 남긴 이 문장을 카를 마르크스는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왜 인간이 문제인가, 더구나 유일한. 인간이 만든 것을 인간은 이해할 수 있다는, 18세기 이탈리아 철학자 비코의 신념에 동의하게 되면 인간 행위의 구성물인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만난다.

발터 베냐민이 “모든 문명의 역사는 야만의 역사”라는 형용모순의 어법으로 지식인의 폐부를 날카롭게 찔렀을 때, 앞의 물음은 ‘왜 인간 역사는 그리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탄식에서부터 ‘반복의 질긴 타래에서 역사의 비극, 아니 인간의 참혹을 구원하는 길은 없는가’라는 물음도 피할 수 없다. 이것들은 불가피하다. 때문에 답변해야 한다.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사진) 역시 아팠다. 자신이 태어난 땅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눈물과 통곡의 현실을 어떤 형태로든 이해해야 한다는 당위는, 1980년 광주의 상처 앞에 선 한국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로서의 역사는 결국 지식인에게 자기 이해를 거쳐 자기 실현의 소명을 부과한다. 사이드가 걸어간 인문주의, 그 자신 ‘곤경의 기술’이라 불렀던 ‘고통과 저항의 사유’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는 자기 이해와 자기 실현의 과정임을, 그리고 이것이 백인, 남성, 유럽인이자 미국인인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인문주의의 본질임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실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셈입니다.” 여기에다 그는 틈날 때마다 ‘세속적’(worldly)이라는 낱말로 이론-실제의 분리 불가능성과, 지식인의 현실 참여를 강조했으며 이와 같은 책임을 실천하지 않는 이들을 “치욕도 없고 명예도 없이 살아온 사람들”(단테)이라고 비판했다.


야만에 저항하라, 읽고 쓰고 사유하며
야만에 저항하라, 읽고 쓰고 사유하며
<저항의 인문학>은 2000년과 2003년 사이드가 컬럼비아와 캠브리지 대학에서 했던 강연을 묶은 책이다. 2001년 터진 9·11 테러에다 전지구적으로 심화하는 불평등 속에서 인문주의마저 폭력과 착취의 은밀한 도구로 이용되는 현실에 그는 경악했다. 백혈병이 그의 육체를 무너뜨리는 가운데서도 피할 수 없었던 사유의 결과물이 이 책인 것이다. 사이드가 제출한 답변의 핵심은 비판-언어-저항의 세 갈래로 나뉜다. 비판 정신은 해방과 계몽에 쏟은 인간 노동의 산물, 곧 집합적 과거와 현재에 대한 오독·오해를 교정·개선·전복하여 여집합의 공간으로 밀어내는 것을 가리킨다.

비판은 곧 반성에서 연유하므로 과거를 현재에 재현하는 행위가 뒤따르게 되며, 사이드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 바로 재현의 비순수성이다. 사이드가 보기에 모든 재현은 본성상 흠결을 갖게 마련이고 경험을 표현으로 전환하는 어떤 과정도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권력, 지위, 이해관계와 얽히기” 때문이다. 그의 출세작 <오리엔탈리즘>(1978)의 주제가 바로 이 문제였다.

둘째 논지에선 이와 같은 비판 정신의 도구로 언어를 불러낸다. 무엇보다 사이드는 상호의존적 독해와 명쾌한 의미 전달을 강조한다. 그것의 압축적 표현을 그는 두 문장에 담았다. “그의 언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가 왜 특별히 그러한 방식으로 해야만 했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이 만들어진 방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인문주의는 드러냄의 형태여야 하지, 비밀 또는 종교적 계시의 형태여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 체험인 독해가 시대적 요구와 만나면 책임을 빚어내게 되며 이러한 책임을 의무로 받아들이며 읽고 사유하고 쓰는 행위를 사이드는 저항이라 말한다. 이라크를 대규모 공습으로 초토화함으로써 숱한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한 뒤에 “우리는 이 제재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미국 관리들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사이드는 이를 두고 ‘집합적 강도짓’이라며 사납게 비판하지만 저항 수단은 무력하다. “이러한 집합적 강도짓으로의 비약을 깨뜨리는 유일한 말은 ‘인간적인’이라는 단어입니다.” 문학 전공자이며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사이드의 내면은 ‘예술(음악)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는 사르트르 또는 아도르노의 신념과 비슷한 경로를 걸었다. 인문주의적 실천의 극적인 예로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를 든 점이 이를 시사한다.

임시로 머물 수밖에 없으며 불안정한 추방의 장소이기 때문에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비타협적인 예술의 영역에서 ‘포착될 수 없는 것의 어려움을 진정으로 먼저 포착할 수 있다’는 희망을 사이드는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또다른 대안은 없는가, 독자의 물음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지난 1월 출간된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 이은 ‘에드워드 사이드 선집’ 둘째 권이며, 앞으로 세 권이 더 나올 예정이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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