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아들의 연인〉
〈내 아들의 연인〉
정미경 지음/문학동네·1만원 정미경씨의 세 번째 소설집 <내 아들의 연인>에는 표제작과 200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밤이여, 나뉘어라>를 비롯해 일곱 단편이 묶였다. <내 아들의 연인>은 가난한 집 출신인 아들의 여자친구를 대하는 중산층 주부를 내세워 심연처럼 파인 계급 사이의 간극, 그리고 풋풋한 생명력과 양심의 울림을 애써 거부하는 속물적 허위의식을 고발한다. 컨테이너로 만든 가건물에 사는 아들의 여자친구 도란이는 외모와 성격과 재능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어 보이지만, 당사자인 아들과 어미인 화자는 아무래도 이물감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화자의 눈에 가난한 도란이의 입술은 “생생한 점막으로 갓 빚어낸 듯 주름 하나 없이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비치지만, 그런 생명력으로도 두 계급 사이에 가로 놓인 허방을 넘어설 수는 없었던 것. 도란이와의 길지 않은 만남을 화자는 “그걸 만나기 이전과 이후의 나는 달라져 버린, 미확인 비행물체”에 비유하지만, 그렇게 생겨난 차이가 근본적으로 삶의 방식과 가치를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 소설에서 도란이는 시종 부르주아 모자의 관찰 및 보고 대상으로만 취급되는데, 이것이 장편이었다면 도란이 자신의 목소리를 살리는 한편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도란이 쪽의 욕망과 한계 역시 묘사되면서 한결 다층적인 울림을 줄 수 있었을 듯하다. 자신들의 청춘과 사랑을 돈 많은 노인과의 거래를 위해 희생하는 커플을 등장시킨 <너를 사랑해>에서 돈으로 대표되는 욕망과 허위의식은 극단적인 표현을 얻는다. 뒤늦게 훼손된 관계를 정상 궤도로 돌려놓으려는 남자는 “너를 사랑해”라고 안쓰러이 말하는 것인데, 그에 대한 여자의 대답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린 자신들의 인간성에 대한 조종처럼 들린다. “…우린 꽤나 멀리 왔어.…지금은 돌아설 수가 없어. 돌아갈 곳은 다 무너져 버렸고, 그냥, 앞만 보고 걸어야 되는 거야.” 최재봉 기자
정미경 지음/문학동네·1만원 정미경씨의 세 번째 소설집 <내 아들의 연인>에는 표제작과 200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밤이여, 나뉘어라>를 비롯해 일곱 단편이 묶였다. <내 아들의 연인>은 가난한 집 출신인 아들의 여자친구를 대하는 중산층 주부를 내세워 심연처럼 파인 계급 사이의 간극, 그리고 풋풋한 생명력과 양심의 울림을 애써 거부하는 속물적 허위의식을 고발한다. 컨테이너로 만든 가건물에 사는 아들의 여자친구 도란이는 외모와 성격과 재능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어 보이지만, 당사자인 아들과 어미인 화자는 아무래도 이물감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화자의 눈에 가난한 도란이의 입술은 “생생한 점막으로 갓 빚어낸 듯 주름 하나 없이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비치지만, 그런 생명력으로도 두 계급 사이에 가로 놓인 허방을 넘어설 수는 없었던 것. 도란이와의 길지 않은 만남을 화자는 “그걸 만나기 이전과 이후의 나는 달라져 버린, 미확인 비행물체”에 비유하지만, 그렇게 생겨난 차이가 근본적으로 삶의 방식과 가치를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 소설에서 도란이는 시종 부르주아 모자의 관찰 및 보고 대상으로만 취급되는데, 이것이 장편이었다면 도란이 자신의 목소리를 살리는 한편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도란이 쪽의 욕망과 한계 역시 묘사되면서 한결 다층적인 울림을 줄 수 있었을 듯하다. 자신들의 청춘과 사랑을 돈 많은 노인과의 거래를 위해 희생하는 커플을 등장시킨 <너를 사랑해>에서 돈으로 대표되는 욕망과 허위의식은 극단적인 표현을 얻는다. 뒤늦게 훼손된 관계를 정상 궤도로 돌려놓으려는 남자는 “너를 사랑해”라고 안쓰러이 말하는 것인데, 그에 대한 여자의 대답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린 자신들의 인간성에 대한 조종처럼 들린다. “…우린 꽤나 멀리 왔어.…지금은 돌아설 수가 없어. 돌아갈 곳은 다 무너져 버렸고, 그냥, 앞만 보고 걸어야 되는 거야.” 최재봉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