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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소설의 시대’ 시 쓰는 소설가들

등록 2008-06-20 19:27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

소설가 한승원씨가 네 번째 시집 <달 긷는 집>을 펴냈다. 지난달 타계한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시집 <우리들의 시간>은 재판을 내놨다. 선생의 유고시들을 모은 새 시집도 49재(22일)에 맞추어 나온다는 소식이다. ‘소설가들이 웬 시?’라고는 하지 말기 바란다. 따져 보면 연원이 제법 오래됐다.

물론 지금은 ‘소설의 시대’다. 시인들이 다투어 소설을 쓰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시인으로 출발한 김정환과 장석주는 여러 권의 소설을 펴냈다. 이대흠도 지난해 장편 <청앵>을 선보였으며, 정철훈은 최근 두 번째 장편 <카인의 정원>을 내놨다. 김선우 역시 월북 무용수 최승희를 다룬 장편을 준비 중이다. 이들에 앞서 소설을 낸 시인들로는 고은·정호승·김승희·김신용·하재봉·김형수·유용주·박철·최영미 등이 있다. 윤후명과 성석제·장정일 등은 시인으로 출발했다가 소설로 ‘전향’한 경우들이다. 김형경·공지영·김연수·이명랑 같은 소설가들도 등단은 시로 먼저 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소설가들이 쓴 시에 더 주목하고 싶다. 문학사적으로는 이광수와 이상에서부터 황순원·김동리를 거쳐 박범신·송기원·김영현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다. 박경리와 한승원을 포함해서 이들은 한 권 이상의 시집을 낸 이들이지만, 시집으로 묶이지 않은 소설가들의 시도 있다. 가령 <녹색평론> 2007년 11-12월호에는 소설가 김성동씨의 산문 <염불처럼 서러워서>가 실렸는데, 그 안에 작가가 직접 쓴 시가 몇 편 포함되어 있다.

“천지를 삼킬 듯 눈은 내리고 개울물은 꽝꽝 얼어붙었다/ 배는 고프고 목은 타는데 눈보라는 또 휘몰아친다/(…)/ 배고픈 것보다 무서운 건 외로움이고 외로움보다 더 무서운 건 그리움이다/ 염불처럼 서러워서 나는 또 하늘을 본다 눈이 내린다”(<눈 오는 밤> 부분)

글 말미에 이 시를 소개하면서 작가 자신은 퍽 쑥스러워하고 있는데, 사실 김성동씨는 1998년에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그 무렵 설악산 백담사 요사채에서 3박4일을 술을 마시고는 쓰러져 잠들었다가 깨어났을 때 문득 ‘시마’가 찾아와서 신들린 듯 썼던 11편을 고은 시인이 <시와 함께>라는 잡지에 ‘추천’했던 것이다.

최인훈 소설 <광장>의 서두에 나오는, 주인공 이명준의 시 <아카시아가 있는 그림>은 작가가 직접 쓴 작품이다.

“아카시아/ 우거진 언덕을/ 우리는 단둘이/ 늘 걸어가곤 했다/ 푸른 싹이/ 향긋한 버러지처럼/ 움터나오는 철에”(<아카시아가 있는 그림> 앞부분)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제8권에는 지식인 출신 빨치산 손승호가 산속에서 연극 공연을 위해 쓴 시가 나오는데, 이 역시 작가 조정래씨의 창작이다.

“그대의 이름은 머슴/ 천하게 살아온 머슴/ 그대의 계급은 머슴/ 비굴하게 살아온 머슴//(…)// 이제/ 그대의 이름은 빨치산/ 인민을 위해 싸우는 빨치산/ 이제/ 그대의 계급은 인민유격대/ 인민을 위해 죽는 인민유격대//(…)”

시인들이 소설을 쓰는 데에는 대중성과 상업성이라는 유인이 어느 정도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소설에서 시로 나아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시는 말하자면 정서의 본향과 같은 것”이라는 김성동씨의 말을 새겨 보자. 일종의 근원적인 그리움 같은 것이 소설가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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