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속에 길어올린 ‘망명자 정체성’
문학권력논쟁 탓 주류와 거리
침잠 들어가 홀로 ‘기획 비평’
지적 망명자로서 주체성 강조
침잠 들어가 홀로 ‘기획 비평’
지적 망명자로서 주체성 강조
〈낭만적 망명〉
권성우 지음/소명출판·2만원 문학평론가 권성우 교수(숙명여대 인문학부)가 새 비평집 <낭만적 망명>을 펴냈다. 책 제목은 역사학자 이 에이치 카의 <낭만적 망명자(The Romantic Exiles)>에서 따왔다. 낭만적 망명자란 알렉산드르 게르첸·니콜라이 오가료프·미하일 바쿠닌 등 차르 체제 아래에서 유럽으로 망명해 혁명운동을 벌였던, 그러나 생전에 혁명의 결실을 보지 못했던 러시아 지식인들을 가리킨다. 2000년대 초 문학권력논쟁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권 교수는 주류 문단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고독과 침잠 속에 글을 썼다. 그에게는 주요 문예지의 청탁도 아예 끊기다시피 해서, 실제로 이 책에 실린 글 중 반 이상은 청탁 받지 않고 스스로 기획해서 쓴 것이다. “초거대기업과 거대보수언론, 새로운 퇴행적 정치권력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강고하게 결합된 이 시대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는(…)현실의 모순에 눈뜨고 지배 이데올로기의 ‘흐름에 거슬러’ 새로운 이상과 대안을 찾아나서는(…)낭만적 망명자들의 존재가 절실하게 요청된다.”(‘책머리에’) 권 교수 자신의 아이디어였다는 책 표지는 가라타니 고진·에드워드 사이드·임화 등 비평가 세 사람과 재일동포 작가 서경식씨의 얼굴 사진으로 꾸며졌다. 그가 생각하는 낭만적 망명의 성격과 범주를 엿볼 수 있는 구성이다. 맨 앞에 실린 글 ‘망명의 비평’ 역시 세 사람의 비평가들을 다루고 있다.
임화에 관해서는 그에게 제19회 김환태평론문학상을 안겨 준 앞선 저작 <횡단과 경계>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진 바 있다. “역사성과 사회성을 상실하여 문학 내부로만 침잠하는 문단과 평단에 대한 단호한 문제의식”을 보였다는 점에서 임화는 “우리 시대 문학과 비평을 투사하는 거울”이라는 것이 권 교수의 판단이다.
“문학비평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행위”라고 본 사이드는 <망명에 대한 성찰>(1998)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그 사이드에 기대어 권 교수는 “우리 시대 비평가에게 요구되는 긴요한 자세가 바로 자신을 지적인 망명자라고 간주하는 독립성과 주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가라타니 고진에 대해서는 그의 ‘근대문학종언론’과 저서 <세계공화국으로>에 관한 별도의 글 두 편이 더 들어 있다. “문학비평 시스템을 규정하는 구조와 기원에 대한 제대로 된 성찰을 전개하지 못한 채, 미시적이며 관성적인 텍스트 분석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는 우리 비평의 현실이 가라타니의 근대문학 종언 주장에 설득력을 높여 준다고 그는 본다. 이와 함께 김현과 도정일의 비평을 다룬 메타비평 성격의 글들이 1부에 포함되었다. 최인훈·황석영·이문열·최인호·김애란 등의 소설을 다룬 2부, 그리고 서경식·고종석·박노자 등의 에세이를 다룬 3부는 실제 비평에 해당한다. 황석영 소설 <바리데기>에 대해 권 교수는 “영적인 장면의 지나친 남발과 초자연적인 장면에 대한 묘사가 현실적 정황과 긴밀하게 맞물리지 못하면서 따로 놀고 있다”면서 넓은 의미의 ‘리얼리즘’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애란 소설에 대해서는 “고시원이나 좁은 원룸의 세계를 벗어나 저 매혹적인 모더니티의 세계나 자본의 핵심, 세계화의 그늘, 유장한 역사의 흐름에 다가갈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번 책은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에 쓴 글들을 싣고 있어 그동안 낸 책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책입니다. 현실에 대한 치열한 성찰을 보여주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는 비평을 쓰고 싶습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권성우 지음/소명출판·2만원 문학평론가 권성우 교수(숙명여대 인문학부)가 새 비평집 <낭만적 망명>을 펴냈다. 책 제목은 역사학자 이 에이치 카의 <낭만적 망명자(The Romantic Exiles)>에서 따왔다. 낭만적 망명자란 알렉산드르 게르첸·니콜라이 오가료프·미하일 바쿠닌 등 차르 체제 아래에서 유럽으로 망명해 혁명운동을 벌였던, 그러나 생전에 혁명의 결실을 보지 못했던 러시아 지식인들을 가리킨다. 2000년대 초 문학권력논쟁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권 교수는 주류 문단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고독과 침잠 속에 글을 썼다. 그에게는 주요 문예지의 청탁도 아예 끊기다시피 해서, 실제로 이 책에 실린 글 중 반 이상은 청탁 받지 않고 스스로 기획해서 쓴 것이다. “초거대기업과 거대보수언론, 새로운 퇴행적 정치권력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강고하게 결합된 이 시대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는(…)현실의 모순에 눈뜨고 지배 이데올로기의 ‘흐름에 거슬러’ 새로운 이상과 대안을 찾아나서는(…)낭만적 망명자들의 존재가 절실하게 요청된다.”(‘책머리에’) 권 교수 자신의 아이디어였다는 책 표지는 가라타니 고진·에드워드 사이드·임화 등 비평가 세 사람과 재일동포 작가 서경식씨의 얼굴 사진으로 꾸며졌다. 그가 생각하는 낭만적 망명의 성격과 범주를 엿볼 수 있는 구성이다. 맨 앞에 실린 글 ‘망명의 비평’ 역시 세 사람의 비평가들을 다루고 있다.
〈낭만적 망명〉
가라타니 고진에 대해서는 그의 ‘근대문학종언론’과 저서 <세계공화국으로>에 관한 별도의 글 두 편이 더 들어 있다. “문학비평 시스템을 규정하는 구조와 기원에 대한 제대로 된 성찰을 전개하지 못한 채, 미시적이며 관성적인 텍스트 분석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는 우리 비평의 현실이 가라타니의 근대문학 종언 주장에 설득력을 높여 준다고 그는 본다. 이와 함께 김현과 도정일의 비평을 다룬 메타비평 성격의 글들이 1부에 포함되었다. 최인훈·황석영·이문열·최인호·김애란 등의 소설을 다룬 2부, 그리고 서경식·고종석·박노자 등의 에세이를 다룬 3부는 실제 비평에 해당한다. 황석영 소설 <바리데기>에 대해 권 교수는 “영적인 장면의 지나친 남발과 초자연적인 장면에 대한 묘사가 현실적 정황과 긴밀하게 맞물리지 못하면서 따로 놀고 있다”면서 넓은 의미의 ‘리얼리즘’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애란 소설에 대해서는 “고시원이나 좁은 원룸의 세계를 벗어나 저 매혹적인 모더니티의 세계나 자본의 핵심, 세계화의 그늘, 유장한 역사의 흐름에 다가갈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번 책은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에 쓴 글들을 싣고 있어 그동안 낸 책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책입니다. 현실에 대한 치열한 성찰을 보여주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는 비평을 쓰고 싶습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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