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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치가 종말을 고했다고요?

등록 2008-10-17 20:10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68)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68)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 대표작
‘정치적인 것’에 대한 사유 통해
순수정치론-정치 종언론 비판
“정치는 ‘치안’에 맞선 해방행위”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자크 랑시에르 지음·양창렬 옮김/길·2만원

‘불화’ 개념으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68·사진)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가 양창렬(파리1대학 박사과정)씨의 번역으로 나왔다.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 <감성의 분할>에 이은 랑시에르 저서의 세 번째 번역본이다.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원본은 두 번에 걸쳐 출간됐는데, 초판본과 재판본의 차이가 크다. 1986~1988년 사이에 쓴 논문 세 편을 묶은 초판본(1990)은 1980년대 이전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적 사유가 압축돼 있다. 랑시에르는 1990년대에 쓴 논문 네 편을 덧붙여 1998년에 증보판을 다시 펴냈다. 특히 이 증보판에는 그의 대표작인 <불화>(1996)에서 전개한 사유가 ‘정치에 대한 10가지 테제’라는 이름으로 요약돼 실렸다. 이로써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는 랑시에르의 첫 번째 정치철학 저서로 태어나 그의 사유를 가장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저작이 됐다. 한국어판은 1998년의 증보판을 옮긴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논문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정치적 정황 속에서 태어난 것들이다. 마르크스주의의 혁명론이 패퇴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선언되던 때였다. 이 시기에 유행한 정치철학적 담론으로 랑시에르는 크게 두 가지를 거론한다. ‘정치의 종언’과 ‘정치의 회귀(귀환)’가 그것들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테제로 대표되는 ‘정치의 종언’은 계급투쟁으로서의 정치가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했다. 다른 한편에선 ‘진정한 정치로 회귀할 때가 됐다’라는 레오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적 선언이 떠돌았다. 경제적 이익을 둘러싼 갈등·조정으로서의 근대 정치를 뛰어넘어 고대 그리스의 ‘순수 정치’로 회귀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랑시에르는 언뜻 대립되는 이 두 담론이 실은 해방의 정치를 제거하는 똑같은 기능을 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이 두 담론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하면서 ‘정치’를 다시 사유하려고 한다. 그 사유가 응집된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이며, 이 책은 그 개념을 설명하는 여정들의 묶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랑시에르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드러내기 위해 구사하는 전략이 ‘치안’과 ‘정치’의 구분이다. 여기서 치안과 정치는 직접적으로 대립한다. 랑시에르는 우리가 흔히 정치라고 이르는 것을 두고 치안(police)이라고 지칭한다. 치안이란 간단히 말하면, 국가를 경영하는 기술이다. 치안은 통치 과정이다. 인간들을 공동체(국가)로 결집시켜 동의를 조직하고, 그들 각자에게 자리와 기능을 분배해 위계를 유지시키는 것이 치안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정치가 전형적인 치안에 해당한다. 랑시에르는 이 치안에 정치를 맞세운다. 정치란 평등 과정이며 해방 행위다. 그것은 치안의 질서를 가로질러 그 위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분배의 질서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정치적인 것’이란 바로 이 치안과 정치가 맞부딪치는 지점을 가리킨다. 치안과 정치가 부딪쳐 형성되는 선이 곧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 테두리, 경계인 셈이다.

랑시에르는 정치와 치안의 이 관계를 ‘도로’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그냥 지나 가시오! 여기에 아무것도 볼 것 없어!” 치안은 통행 공간이 통행 공간일 뿐이라고 말한다. 정치는 이 통행 공간을 주체들(인민·노동자·시민)의 시위 공간으로 바꿈으로써 성립한다. 정치의 출현과 함께 치안 질서는 순간적으로 와해되고 새로운 공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때 치안과 정치가 충돌하는 지점을 두고 그는 ‘정치적인 것’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정치와 치안의 관계는 랑시에르가 <감성의 분할>에서 상술한 ‘감각적인 것의 나눔’(감성의 분할)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정치든 치안이든 감각적인 것을 나누는 행위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치안은 ‘여기엔 아무것도 볼 것이 없어!’라고 말하는 데서 드러나듯이, 감각·지각하는 일에서 어떤 특정한 질서를 고집한다. 반면에 정치는 여기에 볼 것이 있고, 할 것이 있고, 명명할 것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감각·지각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다. 민주주의가 고대 그리스에서 성립하던 시기에 그 사회의 하층민이었던 데모스(인민)는 기존 지배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들리지 않는 존재였다. 인민의 말은 말이 아니라 소음이었다. 그들이 스스로 정치 주제가 됨으로써 보이고 들리고 말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정치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 소음으로만 들릴 뿐이었던 것을 말로써 듣게 만드는” 행위다. 그런 해방 과정으로서의 정치는 종말이 없다. 공동체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 치안을 불러들이지 않을 수 없고, 그 치안의 질서는 어떤 식으로든 배제와 차별과 위계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는 이 치안에 대한 항구적인 불화의 과정이다. 그 치안과 정치 사이에서 ‘정치적인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낸다고 랑시에르는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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