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성태 소설집 ‘국경을 넘는 일’
<매향>의 작가 전성태(36)씨가 두 번째 소설집 <국경을 넘는 일>(창비)을 내놓았다.
1999년에 낸 첫 소설집 <매향>은 작가 전씨에게나 독자들에게나 인상적인 출발이라 할 만했다. 농촌을 주 무대로 삼으면서 토속적인 어휘와 해학적인 언변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낡은’ 특징으로써 그는 오히려 한국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으로서 주목받았다.
그로부터 6년 만에, 단편 여덟을 묶어 펴낸 두 번째 소설집은 첫 책의 성격을 일부 이어받으면서 동시에 적잖이 변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의 수록작 중 <소를 줍다>와 <환희>는 넓게 보아 기존 작품세계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제 몫의 소를 키우는 것이 소원인 가난한 소년의 집안에 우연히 굴러들어온 소 한마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아련한 슬픔의 정조를 자아낸다. 어미가 집을 나간 뒤 술 마시고 난동을 부리는 것으로 오로지하는 아비와 곱사등이 딸을 등장시킨 <환희>는 활로가 막힌 농촌 현실에 대한 극단적인 상징으로 읽힌다.
<퇴역 레슬러>와 <한국의 그림>은 각각 ‘박치기 왕’과 ‘걸개그림의 개척자’로 불리는 실존인물을 모델로 삼은 작품들로, 작가는 주인공들의 삶에 우리 역사의 아픔을 포개 놓음으로써 역사 속의 실존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한다. 이에 견주어 <사형(私刑)>과 <연이 생각>은 실존 모델이 없거나, 있더라도 앞의 두 경우보다는 좀 덜 알려진 사례를 통해 역사와 개인, 개별성과 집단성의 문제를 천착하고 있다. 특히 이른바 ‘시국 자살’이 줄을 잇던 90년대 초에 다분히 개인적인 까닭으로 학교 연못에 투신한 친구의 자살 동기를 캐묻는 <연이 생각>은 자칫 집단의 이름 아래 가려질 수도 있는 개인적 진실의 무게를 부각시킨 작품이다.
무대를 타이로 옮긴 표제작은 작가의 변신 의지가 가장 적극적으로 발현된 사례일 것이다. 캄보디아-타이 국경을 육로로 넘는 과정에서 발작 같은 공포에 사로잡히는 분단국 백성 ‘박’과, 아버지 뻘인 연인과 함께 여행하는 일본 여성 나오코 사이의 밑도 끝도 없는 끌림을 소설은 그리고 있는데, ‘박’이 몸으로써 구현하는 방황에는 작가 자신의 소설적 방황 역시 어느 정도는 얹혀 있어 보인다.
표제작이 질문과 모색의 소설이라면, 소설집 맨 앞에 배치된 <존재의 숲>은 답변과 다짐의 소설에 해당한다. 남을 웃기지 못하는 게 고민인 개그맨이란 명백히 작가 자신의 가탁이다. 그가 어느 산촌에 들어 사람들은 물론 “동네 개라든가 숲이라든가, 하다못해 바람이나 비까지도 거들어준 이야기”(9쪽)를 듣는다는 이 소설은 삶과 문학의 관계에 관한 웅숭깊은 울림으로 가득하다. 소설 속에는 “곧고 휘고 돌고 엎어지는 말의 묘미”(10쪽)라든가 “말이 입에 올랐으되 삶을 밟고 있지는 못한 형국”(11쪽)과 같은 구절들이 빈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소설 쓰기에 관한 하나의 정답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답이 불분명하고 사개가 잘 들어맞지 않아 보이는 대로 이 소설 <존재의 숲>은 문학의 본질과 역할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문학이란, 소설이란 대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글 최재봉 기자,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글 최재봉 기자,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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