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세네카의 죽음>. 세네카는 폭군의 명령으로 자결하면서도 부동심을 잃지 않았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리처드 스코시 지음·정경란 옮김/문예출판사·1만3000원 그리스로마철학·힌두교 등 횡단
행복의 비밀열쇠 찾아나서
동서양 모두 핵심은 ‘내면의 평정’ “행복한 가족의 모습은 모두 비슷해 보인다”라고 레프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시작했지만,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의 지은이 리처드 스코시는 톨스토이의 진술이 꼭 맞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행복의 표정은 각양각색이며, 거기에 이르는 길도 여러 갈래라는 것이다. 영국 런던대 문화사 교수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을 비롯해 힌두교·불교·이슬람교·기독교·유대교의 가르침을 두루 횡단하며 행복의 얼굴과 행복의 기술을 찾아나간다. 위대한 종교·철학 속 주인공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행복에 이르는 길의 뚜렷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지은이는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닿으려 분투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돋을새김해 보여준다. 이 책에서 독자가 만나는 첫 번째 인물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다. 쾌락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진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라는 말 때문에 숱한 오해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그의 삶을 보면 차라리 비쾌락주의의 삶을 설교한 사람으로 이해해야 맞을 듯하다. 에피쿠로스가 ‘쾌락’이야말로 행복의 열쇠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쾌락의 성격이다. 그가 강조한 쾌락은 감각의 탐닉이 아니라 내면의 평정이었다. ‘욕망의 부재’ 상태가 곧 쾌락이었다. 우리가 욕망의 집착에서 떠난다면, 어떤 불행·재난·고통도 행복을 침해하지 못한다. 비유로써 표현하면, 최고의 쾌락은 갈증의 해소가 아니라 더는 목이 마르지 않는 상태다. 다시 말해, 갈증이라는 고통의 부재가 행복이다. 에피쿠로스는 이런 쾌락의 상태를 유지하려면, 번잡한 시민의 삶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가 아테네 외곽에 비밀스런 정원을 마련하고 거기에 거주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정원에는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노예·거지·여자들도 동참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여성들 가운데는 ‘아기 사자’ ‘작은 정복자’ ‘죽여주는 여자’ 같은 요상한 이름의 여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공동체에서 다소 밋밋하지만 어쨌거나 유쾌한 삶을 살았다.
에피쿠로스학파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스토아학파 또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숙고했다. 시민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면서도 괴로움에 빠지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이들은 쾌락에도 고통에도 무감각한 무관심과 부동심의 마음을 강조했다. 부동심의 마음을 지키면 격노한 폭풍우 속에서도 웃음을 지을 수 있다. 변화무쌍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소용돌이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분노·미움·슬픔 따위 감정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은이는 스토아학파의 삶을 모범적으로 보여준 사람으로 로마 제국 시대의 정치가 세네카를 꼽는다. 세네카는 행운과 불운, 명예와 치욕으로 만신창이가 된 삶을 살았다. 네로 황제의 스승이 된 그는 권력과 영광의 정점에 섰으나, 행운은 여기서 그쳤다. 그는 폭군 네로의 명령을 받아 네로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암살하는 ‘살인청부업자’가 돼야 했다. 그러고도 네로의 의심을 사 끝내 자결 명령을 받았다. 세네카는 팔목과 발목의 동맥을 자르고 이어 독배를 마셨다. 세네카는 이 모든 일을 그가 익힌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을 따라 마치 남의 일을 보듯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해냈다. 세네카는 행복의 비밀이 “자유롭고 공정하며, 공포나 욕망에 흔들리지도 않으며 이에 굴복당하지 않는 정신”에 있다고 말했다.
힌두교의 경전 <바가바드 기타>는 세네카의 경우와 유사한 평정심과 부동심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 경전의 주인공인 아르주나 왕자는 자신의 사촌들과 싸워야 할 전쟁 상황에 처한다. 아르주나는 싸우기를 거부한다. <바가바드 기타>는 인간으로 화한 비슈누 신과 아르주나의 기나긴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비슈누 신은 아르주나에게 왜 무기를 들어야 하는지 설득한다. “그대의 의무인 이 전쟁을 수행하지 않으려 한다면, 이는 의무와 동시에 그대의 명예를 저버리고 스스로 악행을 저지르는 꼴이다.” 아르주나는 전투를 결심하기까지 극심한 심리적 혼돈을 겪는다. 비슈누 신은 초연함이야말로 완전한 자유의 비밀이라고 말한다. 그는 언제나 무심하게, 결과에 연연하지도 않고, 다른 것을 회피하려고 절망적으로 애쓰지 않으면서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자신을 행동의 주체가 아닌 행동의 도구로 보아야 한다. 그 초연함의 정신으로 위대한 싸움을 벌인 사람이 마하트마 간디다. “아르주나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초연함의 정신 속에서 자신의 의무를 실천했다.” 개인의 삶에서든 집단의 삶에서든 우리는 옳은 것을 얻기 위해 분투해야 하지만, 그 결과에 얽매이지도 않고 감정의 사슬에 묶이지도 않고 언제나 할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요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보다 우리 자신이 더 강하다는 것도 배울 수 있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행복을 추구해가는 과정 그 자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리처드 스코시 지음·정경란 옮김/문예출판사·1만3000원 그리스로마철학·힌두교 등 횡단
행복의 비밀열쇠 찾아나서
동서양 모두 핵심은 ‘내면의 평정’ “행복한 가족의 모습은 모두 비슷해 보인다”라고 레프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시작했지만,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의 지은이 리처드 스코시는 톨스토이의 진술이 꼭 맞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행복의 표정은 각양각색이며, 거기에 이르는 길도 여러 갈래라는 것이다. 영국 런던대 문화사 교수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을 비롯해 힌두교·불교·이슬람교·기독교·유대교의 가르침을 두루 횡단하며 행복의 얼굴과 행복의 기술을 찾아나간다. 위대한 종교·철학 속 주인공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행복에 이르는 길의 뚜렷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지은이는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닿으려 분투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돋을새김해 보여준다. 이 책에서 독자가 만나는 첫 번째 인물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다. 쾌락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진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라는 말 때문에 숱한 오해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그의 삶을 보면 차라리 비쾌락주의의 삶을 설교한 사람으로 이해해야 맞을 듯하다. 에피쿠로스가 ‘쾌락’이야말로 행복의 열쇠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쾌락의 성격이다. 그가 강조한 쾌락은 감각의 탐닉이 아니라 내면의 평정이었다. ‘욕망의 부재’ 상태가 곧 쾌락이었다. 우리가 욕망의 집착에서 떠난다면, 어떤 불행·재난·고통도 행복을 침해하지 못한다. 비유로써 표현하면, 최고의 쾌락은 갈증의 해소가 아니라 더는 목이 마르지 않는 상태다. 다시 말해, 갈증이라는 고통의 부재가 행복이다. 에피쿠로스는 이런 쾌락의 상태를 유지하려면, 번잡한 시민의 삶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가 아테네 외곽에 비밀스런 정원을 마련하고 거기에 거주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정원에는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노예·거지·여자들도 동참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여성들 가운데는 ‘아기 사자’ ‘작은 정복자’ ‘죽여주는 여자’ 같은 요상한 이름의 여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공동체에서 다소 밋밋하지만 어쨌거나 유쾌한 삶을 살았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힌두교의 경전 <바가바드 기타>는 세네카의 경우와 유사한 평정심과 부동심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 경전의 주인공인 아르주나 왕자는 자신의 사촌들과 싸워야 할 전쟁 상황에 처한다. 아르주나는 싸우기를 거부한다. <바가바드 기타>는 인간으로 화한 비슈누 신과 아르주나의 기나긴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비슈누 신은 아르주나에게 왜 무기를 들어야 하는지 설득한다. “그대의 의무인 이 전쟁을 수행하지 않으려 한다면, 이는 의무와 동시에 그대의 명예를 저버리고 스스로 악행을 저지르는 꼴이다.” 아르주나는 전투를 결심하기까지 극심한 심리적 혼돈을 겪는다. 비슈누 신은 초연함이야말로 완전한 자유의 비밀이라고 말한다. 그는 언제나 무심하게, 결과에 연연하지도 않고, 다른 것을 회피하려고 절망적으로 애쓰지 않으면서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자신을 행동의 주체가 아닌 행동의 도구로 보아야 한다. 그 초연함의 정신으로 위대한 싸움을 벌인 사람이 마하트마 간디다. “아르주나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초연함의 정신 속에서 자신의 의무를 실천했다.” 개인의 삶에서든 집단의 삶에서든 우리는 옳은 것을 얻기 위해 분투해야 하지만, 그 결과에 얽매이지도 않고 감정의 사슬에 묶이지도 않고 언제나 할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요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보다 우리 자신이 더 강하다는 것도 배울 수 있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행복을 추구해가는 과정 그 자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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