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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박물관에 번진 ‘고고학적 욕망 바이러스’

등록 2008-11-14 19:26수정 2008-11-14 19:30

방현희(44)씨
방현희(44)씨
애인·연구업적 가로채기
유물 암시장 내다팔기 등
‘삶의 축소판’ 박물관 묘사에
주인공들 가족비사까지 얽혀
〈달을 쫓는 스파이〉
방현희 지음/민음사·1만1000원

<달을 쫓는 스파이>는 방현희(44)씨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첫 장편 <달항아리 속 금동물고기>에 이어 제목에서부터 달을 드러내고 있는 점이 우선 눈에 뜨인다. 달은 흔히 여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여성인 홍주는 명확히 포착되지 않는 모호성과 몽환성을 달과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홍주의 연인이자 소설 주인공인 현중은 경주로 짐작되는 지방 소재 박물관의 학예관 신분이다. 소설은 현중과 동료들이 와당 특별전을 기획해서 구체적인 준비를 거쳐 개막하기까지의 과정을 큰 틀로 삼아 전개된다. 그런 만큼 포스터와 도록 제작, 전시물 확보와 배치, 문화재 발굴과 감정 등 학예관들의 세계가 실감나게 그려진다. 그런가 하면 고독과 상처 같은 인간적 특질들이 고고학적 표현을 얻는 것 역시 흥미롭다.

“오랜 고독은 그를 갑작스럽게 밀어붙였다. 그는 단지 5년 동안 고독했던 게 아니었다. 1000년쯤 깊은 참호 속에서 나무나 돌덩이를 대상으로 혼자 암호를 주고받으며 맴돌았던 것만 같았다.”(35쪽)

“(상처란) 한 사람의 삶과 그를 둘러싼 짧지 않은 역사가 묻혀 있는 곳이다. 섣불리 열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발굴의 기본이다. 한 번 열면 결코 열기 전으로 돌이킬 수 없다.”(82~3쪽)


〈달을 쫓는 스파이〉
〈달을 쫓는 스파이〉
고고학이란 인간의 지난 삶의 자취를 대상으로 삼는다. 연구 대상으로서 타인의 삶은 관조적 분석과 평가를 가능하게 하지만, 고고학이 삶의 방편인 사람에게 그 세계는 다른 어떤 분야에 못지않게 치열한 욕망과 투쟁의 장이 된다. 현중이 후배 학예관 승기의 연구 업적을 가로채 제 논문으로 발표한다든가, 광개토대왕릉으로 추정되는 만주의 고분에서 유물을 훔쳐 내온 것은 욕망으로서의 고고학의 일단을 보여준다. 그렇게 훔쳐 온 유물을 장인의 선거 자금 마련을 위해 암시장에 내다 팔고 그 대가로 직장에서 승진을 하거나, 그렇게 거듭된 범죄를 감추느라 멀쩡한 유물을 가짜로 감정하는 데에 이르면 고고학의 고고한 얼굴은 한갓 추하고 악한 본성을 감추기 위한 가면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나고 만다.

“형님, 형님은 내게서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아 갔어요.”(174쪽)


승기는 술의 힘을 빌려 현중에게 이렇게 항의한다. 그는 자신의 연구 업적을 도용당했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던 여자 홍주 역시 현중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물론 현중과 홍주의 관계에서 더 적극적이었던 것은 홍주 쪽이라 할 수 있다. 홍주가 현중에게 끌린 것은 그에게서 오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소설이 3분의 2 정도 진행된 뒤에야 드러나거니와, 고등학생 시절 홍주는 친오빠와의 근친애가 발각되어 함께 저수지에 투신했다가 오빠만 죽고 자신은 구조된 기억을 지니고 있다.

주목할 것은 현중의 아버지 역시 일찍이 밤낚시에 갔다가 스스로 물에 빠져 죽었다는 사실이다. 두 개의 익사가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고 있는 형국이다. 거울 관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버지가 자살을 택한 까닭은 자신이 개량한 볍씨 종자를 친구가 훔쳐 가서 진급에 진급을 거듭하는 데 대한 배신감과 절망에 있었다. 이것은 승기의 연구 업적을 앗아 간 현중의 처사를 되비추고 있지 않겠는가.

가슴에 난 상처로 상징되는 홍주의 아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현중의 모습은 아닌 게 아니라 고고학자다운 데가 있다. 그는 홍주가 밥 먹듯 하는 거짓말이 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몸 색깔과 무늬를 수시로 바꾸는 도마뱀의 보호색과 같은 것임을 알고 있다. 동시에 그는 유물 도난을 까발리겠노라는 승기의 협박 앞에 타협을 선택할 정도로 욕망과 계산에 충실한 직업인이기도 하다. <달을 쫓는 스파이>는 고고학의 욕망과 욕망의 고고학이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한바탕 곡두놀음으로 읽힌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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