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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태일아, 너의 간절한 꿈 아직 못이뤘구나”

등록 2008-12-05 19:18

기념사업회관서 만난 이소선씨 “없는 사람은 더 땅으로 꺼지는 세상”
“태일이가 살았으면 올해가 환갑인데, 친구들은 다 장가가서 아들도 낳고 손자도 보고 했는데, 살았으면 손자가 벌써 장가갈 때가 됐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지. 산(묘)에 가 보고 싶어서 생일날(음력 8월26일) 혼자 가서 앉아 있다가 왔어. 니가 간절히 부탁한 것 아직 이루지 못했구나, 하는 죄책감에 할 말이 없어.”

동대문 전철역 3번 출구 옆 골목으로 들어가니 곧 창신시장이었고, 완만한 시장 경사길을 따라 올라간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전태일기념사업회관이 서 있었다. 1985년부터 이곳에 자리잡은(1990년대 초 개축) 연건평 100여평의 3층 건물인 기념관 1층은 세를 내주었고 지하층은 교육실, 3층을 기념사업회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그리고 2층의 4~5평은 됨직한 ‘어머니 사랑방’이 이소선이 2년 전부터 기거해 오고 있는 곳이었다. 상근자는 박계현(51) 사무국장, 정정화 간사, 그리고 오도엽씨.

“찾아줘서 고맙다”며 함께 바닥에 앉은 ‘어머니’는 부쩍 늙어 보였다. 연신 담배를 피워 무는 그는 “골병이 들었다”며 “비가 오기 전엔 꼭 매를 맞은 것처럼 아프다”고 했다. “예전 닭장차에 끌려가고 했을 때 경찰관들이 팔꿈치로 목 뒤를 팍팍 찍었는데 그 때문에 뼈가 어긋났어. 젊었을 때는 괜찮았는데 이젠 목만이 아니라 다리까지 저려 부축받지 않고는 걷기 어려워.” 그는 180차례나 ‘범법자’가 됐고 세 차례 감옥에 갔다. 전부터 신경안정제로 버텨왔는데, 의사들이 한때 차라리 피우게 놔두는 게 낫다고 했던 담배도 요즘은 끊으라고 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 그런 중에도 촛불시위에도 참가했고 기륭전자 농성장에도 갔고, 기자회견 등 이런저런 모임에도 나가고 있지만 오래 버티긴 힘들어 이젠 슬그머니 빠져나오고 만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도 수치와 날짜 기억은 젊은이보다 낫다고 박 국장은 말했다.

기념관 상근자 3명의 연간 총 인건비가 4400만원 정도. 운영비는 회비 등으로 충당하는데, 매달 1만원 안팎(2천원에서 3만원까지)의 회비를 내는 사람이 400여명인데, 전태일문학상이나 추도행사 비용 등도 모두 회비로 충당한다. 바깥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사정이 어렵고 전태일마저 기억 속에나 남은 먼 존재가 돼 버렸다며, 그나마 “추모사업회 중에 독립적인 자체 기념관을 갖고 있는 데는 여기와 이한열 기념관 정도뿐”이라고 했다.

자녀 중 태삼(58)씨는 이주노동자 등을 상대로 선교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순옥(55)씨는 영국 유학을 다녀온 뒤 성공회대에서 강의하다가 오빠의 뜻을 잇겠다며 지금 창신시장 쪽에서 ‘참여성노동복지터’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창신시장 인근 주택가에는 이주노동자들을 많이 고용한 열악한 노동조건의 소규모 봉제공장이 3천여개나 된다. 그리고 막내 순덕(50)씨가 있는데, 쌍문동 집에는 태삼씨 가족들이 살고 있다.

이소선은 “있는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떼돈을 벌어 하늘을 날고, 없는 사람은 더 땅으로 꺼지는 세상”이라며 “현실이 너무 절망적이고 슬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했다. “없는 사람들 피눈물 나는 현실에서 아무리 외쳐봤자 정신병자 취급만 받는 세상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도려내는 것처럼 아프다,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언제나 올까, 내년엔 올까. 그러면서 (전태일 사건 이후) 38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그래도 1980년대엔 다 함께 싸웠는데…”라며 허탈해한 그는 “어렵더라도 죽지 말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올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하자”고 덧붙였다.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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