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무지한 스승-지적 해방의 다섯 가지 교훈〉〈미학 안의 불편함〉
자크 랑시에르 번역서 2권 잇따라 출간
‘시인이자 철학자인 프롤레타리아’ 발견
스승-제자 구분하는 지적 불평등 전복
‘시인이자 철학자인 프롤레타리아’ 발견
스승-제자 구분하는 지적 불평등 전복
〈무지한 스승-지적 해방의 다섯 가지 교훈〉
자크 랑시에르 지음·양창렬 옮김/궁리·1만5000원 〈미학 안의 불편함〉
자크 랑시에르 지음·주형일 옮김/인간사랑·1만5000원 지난해 말 한국을 다녀간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에 관한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그의 또다른 책 두 권이 잇따라 번역돼 나왔다. 먼저 나온 <무지한 스승>은 1987년에 출간된 초기작이며, <미학 안의 불편함>은 미학이라는 틀을 통해 정치를 새롭게 이해하려 하는 랑시에르의 최근 관심을 반영한 2004년 저작이다. 두 책 사이의 시간상 간격은 크지만, 평등·민주주의·정치라는 정통적 주제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랑시에르의 문제의식이 일관성 있게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지한 스승>은 소재의 독특함 때문에 특히 눈에 띄는 책이다. 랑시에르는 1830~1850년대 프랑스 노동자 운동의 문서고를 뒤지는 고고학적 방법으로 자신의 문제틀을 세웠는데, 그 첫 성과물이 박사학위 논문인 <프롤레타리아의 밤>(1981)이었고, 그 고고학적 발굴의 성과에 기댄 또다른 작품이 <무지한 스승>이었다. 랑시에르가 발견한 것은 노동자들이 지적으로 각성함으로써 노동자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키운다는 전통 좌파의 가정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노동자상이었다. 낮의 노동이 끝난 밤 시간에 노동자들은 시를 쓰고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노동자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노동자가 아닌 한 명의 시인 또는 철학자로서 살아가는 인간들, 그들이 바로 프롤레타리아들이었다. 노동자들은 ‘사유하는 인간’과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전통적인 나눔(분할)을 가로질렀다. 그들이 보여준 것은 다른 인간들과 똑같이 읽고 쓰고 말하고 토론할 수 있는 ‘평등한 지적 능력’이었다. <무지한 스승>은 이 ‘지적 능력의 평등’이라는 문제를 파고든 작품이다. 이 책에서 랑시에르는 문서고 탐사를 통해 찾아낸 독특한 인물 조제프 자코토(1770~1840)를 등장시킨다. “1818년 루뱅 대학 불문학 담당 외국인 강사가 된 조제프 자코토는 어떤 지적 모험을 했다.” 자코토는 19살에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이른 나이에 에콜 폴리테크니크 교장 대리를 지내기도 한 수재였다. 1815년 부르봉 왕정이 복귀하자 그는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벨기에로 망명해 루뱅 대학의 강사 자리를 얻었다. 기이한 경험은 이때 이루어졌다. 불문학 강사였던 그는 네덜란드어를 몰랐고, 학생들은 프랑스어를 몰랐다. ‘무지한 스승’은 학생들에게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책의 프랑스어-네덜란드어 대역본을 교재로 삼아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네덜란드어 번역문을 사용해 프랑스어 텍스트를 익히라고 주문했다. 스승과 학생 사이에 서로 통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없는 상태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프랑스어를 기초부터 학습했다. 스승은 그 자기학습의 조건이자 계기로만 존재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그들은 단어들을 조합해 프랑스어 문장을 만들었고 철자법과 문법도 스스로 익혀 완성시켰다. “더구나 그들이 구사하는 문장은 초등학생 수준이 아니라 작가 수준이었다.”
이 우연한 경험을 통해 발견한 교수법을 자코토는 ‘보편적 가르침’이라고 명명했다. 그것은 전통적 교육을 넘어선 새로운 교육이었다. “자코토는 다른 선생들처럼 학생들에게 지식을 주입하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게 하는 것이 관건이 아님을 알았다.” 랑시에르는 자코토의 경우를 들어 통상의 교육을 ‘바보 만들기’ 교육이라고 말한다. 계몽주의자들의 진보적 교육조차 흔히 ‘바보 만들기’의 개선된 형태에 머무르고 만다. 랑시에르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사이에 놓인 불평등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스승이 학생보다 지적 능력에서 우월하다고 전제하고서, 우월한 스승이 열등한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관념으로는 영원히 불평등을 벗어날 수 없다. 랑시에르는 불평등을 출발점으로, 평등을 목표로 삼는 사고방식을 전복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우리의 문제는 지적 능력이 평등하다고 가정함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다.” 스승과 학생 사이의 나눔·분할을 거부하고 평등한 자들의 공동체를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식한 자가 지도하고 무지한 자는 지도를 받는다는 발상을 극복할 토대가 마련된다. 모르는 자가 모르는 자를 가르칠 수 있으며, 모르는 자가 스스로를 가르칠 수 있다. 이런 지적 능력의 평등은 기존 질서의 위계와 자리를 무효로 만들 수 있다. 지배의 작동 조건인 나눔과 분할의 선이 지워지는 것이다.
<미학 안의 불편함>은 이 ‘나눔을 통한 지배 질서의 작동’ 문제를 미학의 틀로 다시 사유하는 텍스트다. 랑시에르는 미학을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이라는 고전적인 정의에 가깝게 이해한다. 이때 감성적(감각적) 인식에 깊이 연루돼 있는 것이 정치다. “미학은 우연히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들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들리게 만드는 것이 정치다. 불평등의 구획 아래서 지배받거나 배제당한 자들이 그 구획을 거부하고 평등한 주체로 등장하는 것, 그것이 정치다. 그때 정치는 감성(감각)을 바꾸고, ‘감성의 분할’을 재구성하는 일이 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자크 랑시에르 지음·양창렬 옮김/궁리·1만5000원 〈미학 안의 불편함〉
자크 랑시에르 지음·주형일 옮김/인간사랑·1만5000원 지난해 말 한국을 다녀간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에 관한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그의 또다른 책 두 권이 잇따라 번역돼 나왔다. 먼저 나온 <무지한 스승>은 1987년에 출간된 초기작이며, <미학 안의 불편함>은 미학이라는 틀을 통해 정치를 새롭게 이해하려 하는 랑시에르의 최근 관심을 반영한 2004년 저작이다. 두 책 사이의 시간상 간격은 크지만, 평등·민주주의·정치라는 정통적 주제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랑시에르의 문제의식이 일관성 있게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지한 스승>은 소재의 독특함 때문에 특히 눈에 띄는 책이다. 랑시에르는 1830~1850년대 프랑스 노동자 운동의 문서고를 뒤지는 고고학적 방법으로 자신의 문제틀을 세웠는데, 그 첫 성과물이 박사학위 논문인 <프롤레타리아의 밤>(1981)이었고, 그 고고학적 발굴의 성과에 기댄 또다른 작품이 <무지한 스승>이었다. 랑시에르가 발견한 것은 노동자들이 지적으로 각성함으로써 노동자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키운다는 전통 좌파의 가정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노동자상이었다. 낮의 노동이 끝난 밤 시간에 노동자들은 시를 쓰고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노동자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노동자가 아닌 한 명의 시인 또는 철학자로서 살아가는 인간들, 그들이 바로 프롤레타리아들이었다. 노동자들은 ‘사유하는 인간’과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전통적인 나눔(분할)을 가로질렀다. 그들이 보여준 것은 다른 인간들과 똑같이 읽고 쓰고 말하고 토론할 수 있는 ‘평등한 지적 능력’이었다. <무지한 스승>은 이 ‘지적 능력의 평등’이라는 문제를 파고든 작품이다. 이 책에서 랑시에르는 문서고 탐사를 통해 찾아낸 독특한 인물 조제프 자코토(1770~1840)를 등장시킨다. “1818년 루뱅 대학 불문학 담당 외국인 강사가 된 조제프 자코토는 어떤 지적 모험을 했다.” 자코토는 19살에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이른 나이에 에콜 폴리테크니크 교장 대리를 지내기도 한 수재였다. 1815년 부르봉 왕정이 복귀하자 그는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벨기에로 망명해 루뱅 대학의 강사 자리를 얻었다. 기이한 경험은 이때 이루어졌다. 불문학 강사였던 그는 네덜란드어를 몰랐고, 학생들은 프랑스어를 몰랐다. ‘무지한 스승’은 학생들에게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책의 프랑스어-네덜란드어 대역본을 교재로 삼아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네덜란드어 번역문을 사용해 프랑스어 텍스트를 익히라고 주문했다. 스승과 학생 사이에 서로 통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없는 상태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프랑스어를 기초부터 학습했다. 스승은 그 자기학습의 조건이자 계기로만 존재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그들은 단어들을 조합해 프랑스어 문장을 만들었고 철자법과 문법도 스스로 익혀 완성시켰다. “더구나 그들이 구사하는 문장은 초등학생 수준이 아니라 작가 수준이었다.”
자크 랑시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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