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존재를 걸고, 치열하게 고민하라”

등록 2009-04-17 22:22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서경식 지음/철수와영희·1만4000원

살다보면 누구나 삶의 고비를 맞이하게 된다. 대응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일 터. 고비를 넘지 못하고 주저앉거나, 미봉책으로 만족하고 고비를 우회하거나, 존재를 건 고민으로 고비를 힘겹게 넘어서는 경우다. 우리가 깊이 공감하고 새로운 도전의식으로 충만해지는 경우는, 고민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았던 사람의 증언을 읽을 때다.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이 뜨거운 반응을 얻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서경식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도 고민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부제대로 ‘국가, 국민, 고향, 죽음, 희망, 예술에 대한 서경식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각 주제에 대한 타협 없는 고민의 결과물이 오롯이 실려 있다. 그의 고민이 얼마나 치열하고 문제의 본질에 바투 다가섰던지, 브니엘에서 밤새 씨름하던 야곱을 떠올렸다. 재일 조선인의 삶은 다른 무엇보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강요한다. 더욱이 분단된 조국의 현실은 그에게 특별한 고민거리를 안겼다. 형들이 당한 고통에서 비롯된 가족사적 비극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니까, 이 책은 서경식이 뱉은 정신적 사리에 해당한다. 디아스포라의 운명이라는 해일에 맞서고, 우리 현대사가 강요한 비극이라는 폭풍에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고민의 힘이 응축되어 있으니 말이다.

내가 가장 눈여겨본 장은 “생명은 선이고 죽음이 악이다?”와 “희망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다. 앞의 것은, 말하자면 서경식의 자살론이다. 삶의 시작이 주체적인 선택이지 못했다는 점, 자살을 금기시한 이유가 착취를 위해서였다는 점, 죽음을 주체의 결단과 관련해 보지 못하면 국가나 권력의 노예라는 점은 논쟁적이면서도 문제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의도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는 어느 시점부터는, 우리 자신이 부조리하게 얻게 된 생명의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말은 설득력 높다. 뒤의 것은 루쉰에 빗대어 본 희망에 대한 전복적 사유다. 그는 헛된 희망을 퍼트려 유화적인 해결을 서두르는 분위기에 일침을 놓는다. 그가 보기에 루쉰은 “희망, 소망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의 없다. 그래도 걸어 갈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러기에 “길이란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차차 생긴 것”이라 말할 수 있었다.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서경식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두 낱말을 남겨놓았다. 먼저 시라케. 정치적 냉소주의를 이르는 말로,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말을 많이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자기 정당화를 잘하는 세대”를 시라케 세대라 한단다. 두 번째는 마케구미. “조금이라도 그 중심에 다가가지 않으면 이 사회의 낙오자가 된다는 강박”을 뜻한다. 우리의 진보세력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더 굴려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두 낱말에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강상중이나 서경식이나 존재를 걸고, 치열하게 이 문제를 고민해보라 귀띔해준다.


이권우 도서평론가·안양대 강의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