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국제문학포럼 참가
칠레작가 세풀베다 ‘소외’ 번역 출간 다음주에 열리는 제2회 서울 국제문학포럼을 앞두고 포럼에 참가하는 외국 작가들의 작품이 잇따라 번역 출간되고 있다.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56)의 소설집 <소외>와 장편소설 <핫라인>(이상 권미선 옮김, 열린책들 펴냄),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65)의 장편 <아프리카인>(최애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미국 시인 게리 스나이더(75)의 생태 산문집 <지구, 우주의 한 마을>(이상화 옮김, 창비 펴냄), 동독 출신 작가 토마스 브루시히(40)의 성장소설 <존넨알레>(이미선 옮김, 유로 펴냄) 등이 그것들이다. 이 가운데 세풀베다의 <소외>는 단연 도드라진다. 35편의 짧은 이야기들을 묶은 책이다. 책의 맨 앞에 실린 <소외된 이야기들>은 이 소설집의 표제작에 해당한다. 안네 프랑크가 최후를 마친 베르겐 벨젠 유대인 수용소에서 접한 하나의 문장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여기에 있었고,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그곳에 있었음에도 ‘아무도’ 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그 낯 모를 유대인 수용자에게는 감당 못할 공포와 슬픔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파스칼이 무한한 우주 앞에 느꼈다는 공포를 그에 비할까. 어쨌든 작가는 이 짧은 문장에서 그 어느 미술품이나 문학작품에서보다도 더 큰 전율과 감동을 받았고, 그 감동이 그로 하여금 바로 이 책 <소외>를 쓰도록 이끌었다. 세상의 후미진 구석에서 남 모를 고통과 슬픔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삶의 패배자들이자 투사들’을 글로써나마 격려하고 찬미하자는 취지에서다. 표제작을 비롯해 나치 독일의 발톱에 할퀴인 유대인 희생자들, 조국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와 독재를 상대로 한 싸움에 나섰던 이들, 노동운동가들, 자연환경과 한몸이 되어 살아가는 남미 원주민들, 아마존에서 지중해와 북극 툰드라 지역까지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선 인물들, 그리고 크고 작은 개인적 아픔과 손실에 시달리는 이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니까 베르겐 벨젠 수용소의 낯 모를 유대인은 제 이름과 존재를 알리지 못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소외된 그의 ‘동지’들은 마침내 세풀베다의 글을 통해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수록된 이야기들이 대체로 콩트 길이에 해당하는 짧은 분량임에도 여느 단·장편소설들에 못지않은 먹먹한 울림을 주는 점은 인상적이다. 이야기 자체의 고통스러운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세풀베다의 시적인 문장이 그런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그 가운데, 피노체트 치하에서 끔찍한 고문을 겪으면서도 끝내 굴복하지 않은 두 여자를 기리는 <검은 머리 여인과 금발 여인>의 한 대목을 적어둔다.
“검은 머리 여자와 금발 여자. 카르멘과 마르시아. 그들은 모든 것을 걸었던 여자들답게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저쪽에서 걸어가고 있다. 사랑을 전한 몸들은 모든 패배자들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키스를 유혹하는 입술들은 신음은 토해 냈지만, 사람이나 나무, 강, 산, 숲, 꽃, 거리의 그 어느 이름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형 집행인들이 눈치 챌 만한 정보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눈부신 전등 아래서 고문당하던 눈들은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당당하게 눈물을 흘렸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칠레작가 세풀베다 ‘소외’ 번역 출간 다음주에 열리는 제2회 서울 국제문학포럼을 앞두고 포럼에 참가하는 외국 작가들의 작품이 잇따라 번역 출간되고 있다.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56)의 소설집 <소외>와 장편소설 <핫라인>(이상 권미선 옮김, 열린책들 펴냄),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65)의 장편 <아프리카인>(최애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미국 시인 게리 스나이더(75)의 생태 산문집 <지구, 우주의 한 마을>(이상화 옮김, 창비 펴냄), 동독 출신 작가 토마스 브루시히(40)의 성장소설 <존넨알레>(이미선 옮김, 유로 펴냄) 등이 그것들이다. 이 가운데 세풀베다의 <소외>는 단연 도드라진다. 35편의 짧은 이야기들을 묶은 책이다. 책의 맨 앞에 실린 <소외된 이야기들>은 이 소설집의 표제작에 해당한다. 안네 프랑크가 최후를 마친 베르겐 벨젠 유대인 수용소에서 접한 하나의 문장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여기에 있었고,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그곳에 있었음에도 ‘아무도’ 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그 낯 모를 유대인 수용자에게는 감당 못할 공포와 슬픔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파스칼이 무한한 우주 앞에 느꼈다는 공포를 그에 비할까. 어쨌든 작가는 이 짧은 문장에서 그 어느 미술품이나 문학작품에서보다도 더 큰 전율과 감동을 받았고, 그 감동이 그로 하여금 바로 이 책 <소외>를 쓰도록 이끌었다. 세상의 후미진 구석에서 남 모를 고통과 슬픔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삶의 패배자들이자 투사들’을 글로써나마 격려하고 찬미하자는 취지에서다. 표제작을 비롯해 나치 독일의 발톱에 할퀴인 유대인 희생자들, 조국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와 독재를 상대로 한 싸움에 나섰던 이들, 노동운동가들, 자연환경과 한몸이 되어 살아가는 남미 원주민들, 아마존에서 지중해와 북극 툰드라 지역까지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선 인물들, 그리고 크고 작은 개인적 아픔과 손실에 시달리는 이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니까 베르겐 벨젠 수용소의 낯 모를 유대인은 제 이름과 존재를 알리지 못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소외된 그의 ‘동지’들은 마침내 세풀베다의 글을 통해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수록된 이야기들이 대체로 콩트 길이에 해당하는 짧은 분량임에도 여느 단·장편소설들에 못지않은 먹먹한 울림을 주는 점은 인상적이다. 이야기 자체의 고통스러운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세풀베다의 시적인 문장이 그런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그 가운데, 피노체트 치하에서 끔찍한 고문을 겪으면서도 끝내 굴복하지 않은 두 여자를 기리는 <검은 머리 여인과 금발 여인>의 한 대목을 적어둔다.
“검은 머리 여자와 금발 여자. 카르멘과 마르시아. 그들은 모든 것을 걸었던 여자들답게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저쪽에서 걸어가고 있다. 사랑을 전한 몸들은 모든 패배자들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키스를 유혹하는 입술들은 신음은 토해 냈지만, 사람이나 나무, 강, 산, 숲, 꽃, 거리의 그 어느 이름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형 집행인들이 눈치 챌 만한 정보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눈부신 전등 아래서 고문당하던 눈들은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당당하게 눈물을 흘렸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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